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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여름, 역사소설에 빠지다
고 김성한 작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역사적 사실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역사소설의 묘미는 무엇보다 강력한 유인력인 사실성과 소설이 닿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여기에는 작가의 역사관, 세계관이 중요한 매개변수로 작용한다. 취사선택과 해석에 따라 역사의 변형이 이뤄질 수 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수많은 작품이 새롭게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다.

국내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임진왜란과 프랑스혁명을 다룬 역사소설, ‘7년전쟁’(전 5권ㆍ김성한 지음/산천재)과 소설 ‘프랑스혁명’(전 12권ㆍ사토 겐이치 지음/한길사)이 각각 출간돼 올여름 장르시장을 달군다.

고(故) 김성한의 ‘7년전쟁’은 90년 ‘임진왜란’(전 7권)으로 출간, 절판됐다가 22년 만에 복간됐다. ‘선조실록’을 따라가듯 써내려간 듯 한 현장감과 16~17세기 중국과 일본 측 전쟁 기록 및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각종 기록, 문서를 섭렵한 디테일과 폭넓은 시야가 압권이다.

임진왜란 연구자인 한명기 명지대 교수는 “16세기 후반 17세기까지 엄청난 파장을 남긴 임진왜란에 대해 동아시아에서 나온 책 가운데 이만한 게 없다”고 평가했다. 객관적 사실과 실증에 충실한 역사소설의 전범이란 설명이다. 


이 소설은 90년 ‘임진왜란’(행림)이란 제목으로 출간됐지만 1984년 동아일보 연재 당시 원제는 ‘7년전쟁’이었다.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이 소설은 독자들의 반발로 1년 만에 임진왜란으로 제목이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임진왜란을 중국과 일본 동아시아의 전쟁이란 시각에서 바라본 김성한의 관점은 ‘왜놈이 일으킨 난’으로 인식해온 당시 일반적 정서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시대정신과 어긋났지만 복간 ‘7년전쟁’은 한반도 정세를 동북아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 현 시점에 오히려 잘 맞아떨어진다.

소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시카가 요시아키 왕을 쫓아내고 영웅으로 등극,조선에 사신을 파견한 걸 두고 선조가 신하들과 대책을 강구하는 대목에서 시작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에 일본 내 많은 세력이 전쟁을 막고자 노심초사한 사연과 진의를 알지 못해 우왕좌왕한 조선 내부의 사정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왜구의 본거지였던 쓰시마 섬의 지배자들이 히데요시와 조선의 사이에서 생존을 도모하고자 이런저런 술수를 쓰지만 역효과만 불러오는 과정은 전쟁과 역사의 본질을 넓은 눈으로 보게 한다.

이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관점이다. 작가는 악과 선을 가르지 않고 가치판단을 유보한 채 잘못을 저지른 인간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가령 일본에 건너가 사정을 살펴보고 돌아와 전쟁은 없다고 단언한 김성일과 유성룡에 대해 많은 이들이 비난하지만 작가는 누구나 지닌 인간적 결함으로 본다.


장경현 서울대 강사교수는 “장르시각에서 볼 때 ‘7년전쟁’은 오히려 현 시점에 잘 맞는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확한 사실과 조총의 사정거리 같은 디테일이 요즘 시뮬레이션게임 세대들에게 통한다는 것이다.

일본 역사소설의 대가 사토 겐이치는 학자들의 연구대상에 머물러 있던 프랑스혁명을 소설 ‘프랑스혁명사’로 재구성해 새롭게 보여준다. 사토의 탁월함은 인물의 전형성을 만들어낸 데 있다.

제1권에서 4권까지 실질적인 주인공인 미라보는 40세까지 불륜, 도박, 소송 등으로 점철된 삶을 살지만 삼부회가 열리자 귀족출신인데도 제3신분 대표가 돼 일명, ‘사자의 포효’로 파리 시민들의 지지를 끌어낸다. 국민의회에서 500회 이상 활발한 의정활동을 하며 이상론을 펼친 정치가 로베스피에르, “무기를 들자”고 호소하며 바스티유 함락의 물꼬를 튼 팔레-루아얄 봉기를 이끈 무명의 변호사 데물랭, 혁명초기 급진적 정치가였으나 전반적인 삶은 기회주의적이었던 프랑스혁명기부터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7월 왕정에 이르기까지 요직을 두루 거친 탈레랑 등 역사 속 인물들이 살아 숨쉬듯 선명하다. 특히 작가의 탁월한 심리묘사, 치밀한 배경설명은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 입체감을 부여한다.

전 12권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김석희 씨가 번역을 맡았으며, 1차분으로 4권이 먼저 나왔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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