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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나브로, 흐르는 강물처럼
플라이 낚시 명소 강원도 평창 기화천…앞만보고 달린 시간 위에 50㎝ 송어와 씨름하며 ‘쉼표’ 하나를 찍는다
시나브로.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피곤만이 괸 깊은 주름살이 그나마 남겨진 시간의 흔적이다. 시나브로. 이 낯선 단어가 불쑥 떠올라 흐르는 시간 위에 작은 점 하나 찍지 못했다는 회한이 들 때, 사람들은 낚시를 한다. 강물 속에 툭, 작은 낚싯바늘 하나 던지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그 가운데서도 강 한가운데서 날렵하게 낚싯대를 휘두르는 플라이 낚시는 구태여 무얼 낚겠다는 욕심이 없어도 가라 앉은 마음을 일렁인다.

강원도 평창의 기화천은 플라이 낚시의 명소다. 청옥산에서 발원해 동강으로 흘러드는 기화천은 얕은 곳은 무릎 정도밖에 오지 않지만 깊은 곳은 어른 키를 훌쩍 넘는다. 산이 내준 길을 굽이쳐 흐르는 계곡엔 팔뚝만한 송어가 심심치 않다. 플라이 낚시 경력 10년차인 박상현(44ㆍ자영업) 씨는 “평창지역은 석회질 지대라 송어가 굵다”며 “50㎝짜리 송어가 미끼를 물면 30분은 족히 씨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플라이 낚시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원제ㆍA River Runs Throug It)을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미국 몬타 주 강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진한 가족애는 낚시와 인생이 하나로 묶여 있음을 깨우친다.

그러나 브래드 피트처럼 플라이 낚시를 멋지게 즐기려면 그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플라이 낚싯대는 20만원대부터 100만원이 넘는 것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큰 물고기를 잡을 땐 무겁고 단단한 낚싯대가 좋다. 비교적 움직임이 덜해 초보자에게도 적합하다. 그러나 플라이 낚시 특유의 손맛을 느끼고 싶다면 부드럽고 가벼운 낚싯대가 제격이다. 

플라이 낚싯대를 휘두르는 박상현 씨. 플라이 낚시는 큰 퍼즐의 한 조각처럼, 자연을 침범하지 않고 그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강물에 들어가야 하는 만큼 바지장화인 웨이드 등 전문장비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각종 훅(미끼)과 비즈(구슬) 등을 달고 다닐 조끼와 모자, 그물망까지 갖춰야 비로소 플라이 낚시꾼다운 행색이 갖춰진다.

장비만 갖췄다고 당장 플라이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물고기가 머무는 지점에 정확히 미끼를 던지는 ‘캐스팅(casting)’부터 제대로 익혀야 한다. 초보자는 급한 마음에 손목 힘을 이용해 크게 휘두르기 십상인데 자칫 낚싯줄이 꼬여 낭패를 볼 수 있다. 박 씨는 “손목은 고정하고 팔을 8시에서 12시 방향으로, 낚싯줄이 일자가 되도록 안정되게 흔들어야 한다”며 “낚싯대가 머리 뒤로 넘어가지 않는 ‘오버헤드 캐스팅(overhead casting)’부터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플라이 낚시를 어느 정도 즐기려면 적어도 2~3개월은 연습해야 하며 능숙하게 솜씨를 뽐내기까진 1년 정도 족히 공을 들여야 한다.

이 모든 수고를 마다않고 플라이 낚시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박 씨는 한 마디로 ‘자기 만족’이라고 답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얼마나 철저히 준비를 했느냐에 따라 낚시의 즐거움이 달라지며 그 준비과정조차 또 다른 즐거움이란 것이다. 플라이 낚시는 잡고자 하는 물고기에 따라 미끼가 다 다르고 철마다, 물 흐름마다 또 다르다. 낚시 기술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 바로 플라이 낚시다. 때문에 플라이 낚시꾼들은 스스로 미끼를 만든다. 박 씨의 미끼통에도 형형색색 갖가지 털들이 붙은 미끼가 어림잡아도 10개가 넘는다.

멋으로 시작해 스스로 멋이 된다는 점도 플라이 낚시의 매력이다. 강 한가운데서 강변을 바라보는 경치는 플라이 낚시꾼에게만 제공되는 특별대우다. 강 한가운데서는 오로지 물결소리만이 고요할 뿐이다. 강의 색깔, 냄새도 나만의 것이 된다. 박 씨는 잡은 물고기는 그대로 놓아준다고 한다. 물고기를 낚는 대신 플라이 낚시꾼은 추억을 담아 간다. 또 끊임없이 물고기가 모여 있을 만한 곳을 찾아 험한 물살을 헤쳐야 하는 역동성도 다른 낚시와 차별화된 플라이 낚시만의 멋이다.

기화천에서 플라이 낚시를 즐기기 알맞은 때는 3~5월과 장마철이 지나고 나서 최대 10월까지다. 그 이후엔 송어가 산란기에 접어들어 입질을 하지 않는다. 평창에는 기화천 외에도 봉평면 흥정계곡이 플라이 낚시를 하기에 알맞다. 그 외에 삼척의 오십천과 덕풍계곡, 강릉의 연곡천과 양양 법수치 계곡 등도 송어나 산천어를 멋들어지게 낚을 수 있는 플라이 낚시의 명소로 꼽힌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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