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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 선임기자의 대중문화비평> ‘시월드<시댁>’ 웃으며 흔드는 김남주…며느리들이 웃고 있다
드라마 ‘넝쿨당’서 차윤희역
능청맞고 시크하게 연기

불합리한 시집살이 지적해도
욕먹지 않게 합리적으로
전세대 공감 불러 일으켜


배우 김남주(41)가 요즘 ‘국민 며느리’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KBS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일하면서 시집과의 문제도 풀어가는 차윤희 역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며느리’라는 타이틀에는 다소 보수적인 냄새가 난다. 어른들을 공경하고 남편에게 내조 잘하면서 자기 주장은 다소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소곳하게 지내야 ‘국민 며느리’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차윤희는 그런 며느리는 아니다. 할 이야기는 다 한다. 불합리한 시집살이 관계를 하나하나 따진다. 그러면서도 욕을 먹기는커녕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나이 든 세대까지 공감하게 한다. 그래서 김남주의 ‘국민 며느리’라는 타이틀 앞에 ‘세련된’이라는 수식어를 하나 추가하고 싶다.

자신을 괴롭히는 시누이 방말숙(오연서)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써야 하는 관습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며 12살 아래의 시누이에게 “말숙아”라며 반말로 부른다. 시누이 말숙은 이를 시집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집안 전체 문제로 확대시키려 하지만 이미 전세는 ‘차윤희 승’으로 기울었다.

차윤희가 사랑받는 것은 시집살이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는 방식, 다시 말해 시댁을 향한 반격의 수위가 적절하기 때문이다. 김남주는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차윤희의 시집살이 반격의 수위가 딱 적당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반격은 너무 약해서는 효과를 가져올 수 없고, 급진적으로 과하게 밀어붙이다가는 오히려 반감과 역습에 직면할 수 있다.

김남주는 KBS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일하면서 시집과의 문제도 풀어가는 차윤희 역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다.

가족제도란 합리성보다는 권력관계가 더 크게 작용하는 공간임을 기존 가족극들이 보여왔다. 차윤희에게도 시어머니가 수시로 찾아오는 건 기본이고, 아예 아들 부부의 집 문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하고, 목욕을 같이 하러 가자고 찾아오고, 계획에도 없는 아기를 가지라는 시할머니의 성화를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차윤희는 이를 비교적 합리적이고 슬기롭게 해결한다. 혁명의 방식을 통하지 않고도 혁명의 결과를 이뤄내는 게 차윤희의 방식이다.

차윤희는 임신하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시월드’의 오랜 규율을 깨뜨린다. 임신 중에도 일을 계속할지 말지에 대한 가족 투표를 하기로 하고 가족 개개인을 설득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

차윤희는 직장 때문에 제사 준비에 참석하지 못하는 데 대해서도 다각도로 대비했다. 먼저 시숙모에게는 카드를 주며 “제사상에 필요한 음식을 마음껏 사세요”라며 불만을 원천봉쇄했다. 시어머니에게는 “생각보다 많이 썼더라고요. 70만원 좀 넘었어요”라고 말하고, 시할머니에게는 “늦어서 너무 죄송해요”라고 애교를 부리며 위기를 벗어났다.

지금까지의 주말가족극은 삼대가 모여사는 대가족제하에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가족이 소중하다는 사실만 강조한다. 그런데 가족문제를 정리하거나 해결하는 건 시부모나 조부모 같은 어른들이 중심이 됐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다. 하지만 ‘넝굴당’은 어른의 시선 못지않게 며느리의 관점이 많이 들어가 있다. 고부(姑婦)관계에서 ‘고’의 입장과 ‘부’의 입장을 똑같이 보여주며 어떤 게 합리적인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니 나이 든 부모도 공감할 부분이 생긴다. 뒤떨어진 시어머니가 되지 않으려면 이 드라마를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가족제도에 대한 의식은 깨어 있지만 행동이 이를 따라오지 못해 의식과 행동의 괴리를 겪고 있는 어른들의 심리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사실 이 힘든 시기에 돈을 벌어다주는 며느리를 마구 부려먹어서야 되겠는가.

김남주는 현대적이면서 시집 가족들과 공존할 수 있는 며느리 차윤희를 능청맞고 시크하게 연기하고 있다. 40대 여배우로는 드물게 패셔니스타면서 생활감까지 지니고 있는 김남주가 차윤희를 맡고 있어 더욱더 자연스럽게 보인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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