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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를 먹어도 남자는 남자…가슴속 욕망은 사위지 않는다
영화 ‘은교’바라보는 또다른 시각
영화 ‘은교’는 서로 갖지 못한 것을 탐하는 질투와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세 사람이 등장하지만 노시인 이적요(박해일)의 관점에서 느낌을 풀어간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도 욕망과 질투는 젊은 사람 못지않다.

하지만 이런 리비도를 풀 수 없다. 이적요가 열일곱 소녀 은교(김고은)와 몸을 더듬는 행위는 오로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늙은 남자가 어린 여자아이를 탐하는 성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젊음으로, 청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체념의 이야기라 쓸쓸하고 비통하다. 하지만 영화는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대사로 나이듦을 위로한다.

평생 오로지 시만 써왔던 국민시인 이적요에게 싱그러운 여교생 은교가 들어온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외톨이 은교는 비 맞은 자신을 맞아주는 노시인 이적요의 집에서 온기를 느꼈을 것이다. 노시인은 욕망이 고개를 들지만 늙은 자신의 모습에 절망감을 느낀다.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제자 서지우(김무열)와 함께 있는 은교를 볼수록 깊어가는 절망감은 인간 감정과 심리의 근원에 닿아 있다.


지우와 은교가 이적요의 서재에서 격정적인 정사를 벌이는 장면은 한국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은교의 체모를 제법 긴 시간 노출시켰다. 이적요가 사다리를 놓고 창문으로 그 장면을 들여다볼 때는 이성을 잃을 정도로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을 것이다.

이 감정은 이중관점 전환으로 시청자에게도 극대화돼 전달된다. 마치 샤론 스톤이 샤워하는 장면을 목욕탕 열쇠구멍을 통해 훔쳐보던 한 남자를 관객이 영화관에서 볼 때 감정이 배가되듯.

늙은 이적요의 질투가 어떤 파국으로 치닫는지도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야심은 있지만 재능이 미치지 못하는 지우는 스승의 천재적인 재능을 질투했다. 스승에 대한 존경은 은교가 스승 앞에 나타나자 증오로 바뀌면서 어린 은교의 몸을 탐함으로써 열등감을 씻으려 한다. 인간은 이런 존재인가.

하기야 세상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이적요도 제자의 수입을 위해 써줬다고는 하지만 통속소설 ‘심장’을 쓸 수 있는 정신을 지녔고, 어린 은교를 만나 생긴 내밀한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옮길 줄 알지 않는가. 은교를 마주 볼 수 없는 마지막 이적요의 8분 롱테이크는 마치 내가 늙어 흘리게 될 눈물 같았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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