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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워서 우주를 감상? 정연희 ‘저 멀리,그리고 가까이’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너른 전시장에 편안히 누워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전시가 열린다.

천장에는 광활한 우주를 그린 대형 천 캔버스가 부드럽게 드리워져 있고, 바닥에도 우주의 무수한 별들이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관람객들은 작가가 제작한 폭신한 매트에 누워, 잠시 우주의 품에 안기면 된다. 스르르 잠이 오면 잠깐 졸아도 무방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오가며 활동 중인 화가 정연희(Younhee Chung Paik, 67)가 25~5월 1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 타이틀은 ‘저 멀리, 그리고 가까이’. 수십, 수백 광년 거리의 우주의 별과 빅뱅을 그려온 작가는 이번에도 원대하고 숭고한 공간인 우주를 그린 작품 등 근작 5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천장과 바닥에 설치한 작품은 우주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작품을 천장에 매단 것은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뜬 어머니를 위한 것이다. 작가는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시고,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작품을 달아드리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실현하지 못했다"며 그 아쉬움을 씻기 위해 대형 설치작업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난 정연희는 다섯살 때 6·25전쟁을 겪었다. 비행기 소리만 나면 방공호에 숨었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비행기를 타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고 한다. 서울대 회화과를 마친 후 미국으로 떠난 그는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사회의 정신적 빈곤과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 ‘우주’를 택했다.

작가는 "우주는 자연의 모체이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공간"이라며 "최근에는 교회 설계도와 배, 물고기, 계단 등의 이미지를 우주에 곁들이고 있다"고 했다. 

장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설계도를 우주 공간에 떠있도록 묘사한 근작에 대해 작가는 "신(神)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위해 만들어진 교회 설계도는 인간이 만든 도판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도판"이라며 "그 아름다운 설계도 이미지를 신이 만든 우주에 놓음으로써 현대인에게 치유와 안식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즉 작품에 등장하는 교회는 종교적 도상이라기 보다는, 불완전한 인간을 감싸는 건축적 공간이자, 안식처를 의미한다는 것.

우주, 빛, 물고기, 자연의 신비 같은 동양 철학에 기반을 둔 정연희의 치유적 작품은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신비로운 천상세계의 숨은 이미지를 다층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주’는 정연희에게 자연의 모체, 탄생의 시작, 죽음 후 우리가 머무는 곳이자 어머니이기도 하다. 작가는 원대하고 숭고한 공간인 우주에 어둠과 빛을 공존시키고, 죽음과 삶을 밀도있게 담아낸다.

미술평론가 마크 얀 프로옌(Mark Van Proyen)은 "정연희의 ‘느림’의 추구, 치유적 작품들은 그것을 시대의 사치품으로 여기며 살아가야하는 이 시대 관객들에게 큰 선물이다"고 평했다. 02)519-0800



<이영란 선임기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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