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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이 매우 진지한 행위라고?
단순한 성욕의 대상이 아닌
어릴때부터 충족 안된 욕구
새 만남 통해 채워지는 관계

상처주는 파국 피하려면
자랑하거나 과시하지 말아야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나 그때 알았어. 이 사람 남자다. 나 여자다. 십수년 만에 처음으로 나, 여자 윤서래, 기쁘더라. 또 떨리고, 좋았어.”

현재 대치동 엄마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한 케이블 TV에서 방영 중인 ‘불륜 드라마’의 명대사 중 하나다. 굳이 이 드라마가 아니라도 아침, 저녁 TV 드라마는 온통 바람난 가족들 얘기다.

불륜에 관대한 사회가 됐거나 대리만족이거나다. 흔히 불륜에 대한 시각은 도덕적 비난을 넘지 않는다. 학문적 논의는 입에 올리지도 못한다. 30년 전, 미국 브라운대와 로체스터대 철학교수를 지낸 리처드 테일러가 “불륜도 인간 삶의 중요한 일”이라며, 불륜이 그렇게 부도덕한 건 아니라고 얘기할 때 종교학자,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2003년 작고한 테일러 교수의 화제의 책이 ‘결혼하면 사랑일까’(부키)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82년 처음 출간돼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으며 30년 넘게 인간의 욕구와 결혼이라는 제도 사이의 갈등을 다룬 독보적인 책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의 논지는 분명하다. 한 번도 제대로 논의된 적 없는 불륜의 실체를 바로 보자는 것이다. 불륜이 왜, 어떻게 시작돼 종국에는 파멸로 끝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고 불륜이 지닌 엄청난 파괴력을 완화시켜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먼저 진정한 결혼이란 무엇인가부터 출발한다. 진정한 결혼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지속적인 사랑과 헌신이며, 사랑이 끝나고 더 이상 헌신하는 마음도 없다면 이미 끝난 결혼이라는 것이다.

지속적인 사랑은 단순한 법적 정당성보다 훨씬 고결한 개념이라는 것. 신뢰를 깨뜨리는 배신행위는 윤리적인 개념이며, 법적인 개념은 그다음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낭만적 사랑과 부부애를 구분하며 결혼의 실체를 보여준다. 깨진 생활, 무덤덤한 가정, 서로 다른 관심사, 다른 대용품을 찾아나선 부부 얘기들은 적나라하다. 

“결혼의 성공 여부를 결혼생활의 지속이나 부부간의 정조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외도라는 뚜렷한 흔적이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부부가 더 이상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모습이 일반적인 결혼생활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결혼의 진정한 의미로 보자면 이것이야말로 실패한 결혼이다.”(본문 중)

그렇다면 불륜은 어떻게 시작될까.

저자는 불륜 때문에 결혼생활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임을 강조한다. 불륜의 원인은 가정에서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데 있으며, 그것은 일상적인 것들이라고 말한다.

채워지지 않은 욕구의 실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성은 일년에 100명의 자녀를 볼 수 있는 충동과 신체적 조건 등 생물학적 조건이 여성과 다르다. 즉, 일부다처제적 충동을 억누르고 사는 존재이다. 남자들이 우스울 정도로 성적 능력에 집착하는 건 쾌락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분 좋은 만족감을 얻고 싶은 자부심이다. 남자의 자부심에 상응하는 여자의 것은 바로 허영심이다. 한마디로 여자는 남자가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성적 유혹은 신체적 아름다움으로 가장 확실하게 표현된다. 칭찬과 관심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불륜을 단순한 일탈이나 성적 호기심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맞지 않다. 성관계는 불륜의 한 요소일 뿐이다. 애정을 원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존중감과 단순한 우정을 필요로 하고,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을 원한다. 이런 욕구 중 어떤 것이든 불륜의 강력한 토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불륜은 매우 진지한 행위이다. 흔히 불륜을 말할 때 ‘놀아난다’는 말은 폄훼하기 위한 표현일 뿐이다. 저자는 인간관계의 하나인 불륜도 잘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족과 주위에 깊은 상처를 주는 파국을 불러와선 안 된다는 것. 상대의 욕구,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이해하고 둘만으로 이뤄진 관계이므로 정직해야 한다는 것. 두 사람의 관계를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말아야 하며 최후통첩을 날려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다.

이런 저자의 태도는 불륜을 조장하고 옹호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지만 그의 관심은 결혼이 주는, 무엇에 비할 수 없는 최고의 행복을 어떻게 지켜내느냐다.

결혼과 불륜이라는 일상의 일을 다루고 있지만 한발 나아가면 저자가 드러내고 싶어 하는 속내는 윤리의 문제다. 현대의 결혼은 법의 테두리 안에 갇힘으로써 윤리는 합법성의 문제로 축소된다. 법과 윤리 사이에서 법에 더 밀착돼 가는 현대인의 삶에 책은 균형추 역할을 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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