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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적 詩·사진…삶의 여백을 노래하다
민병문 본지 고문·박용성 대한체육회장 시화집‘ 새벽에 만난 달’펴내
퇴임앞둔 노년의 절절한 심경
언론인 본연의 비판 번뜩여
청춘의 뜨거움·격정적 패기도

50년 지기 박용성 회장
60여편 사진작품 함께 실어
시와는 또 다른 깊은 울림이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새에겐 둥지가 있고, 거미에겐 거미줄이 있듯, 사람에겐 우정(友情)이 있다”고 했다. 우정은 존재의 집인 것이다. 동아일보를 거쳐 헤럴드경제 주필로 반세기 가까이 현역언론인으로 활동해 온 ‘평생글쟁이’ 민병문 시인(73)의 두 번째 시집 ‘새벽에 만난 달’(온북스)은 이런 노년의 우정이 맺어낸 결실이어서 더욱 빛난다.

입소문이 난 아마추어 사진작가이자 시인의 대학동기로 53년 지기인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사진작품과 시가 서로 어울렸다. 둘은 주거니 받거니 스미고 녹아들며 또 다른 세계로 이끈다. 이번 시집은 노년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풍경을 담고 있다. 퇴임을 앞둔 마음, 수술 등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이를 뛰어넘는 지혜와 용기를 보여준다. 때로 청춘의 뜨거움과 패기도 펄떡인다.

“슬퍼말라, 겨울 인생들아, 그대들 화려한 젊은 날에/많이 오만하지 않았던가.//이제 엷은 추억을 남긴 채/소멸의 서러움에 젖어도/이미 겪은 무수한 풍상이/보석이 되어 위로한다.”(‘위로’)

“너를 내 밖으로 밀어내고 나서/내가 도리어 자유를 만끽한다.”(‘동행’)

“바람아, 아 바람아,/우리 함께 광야로 가자/길 없는 길 만들어 가면/거기 빛과 소금이 있어라.”(‘바람아, 아 바람아’)

뒤늦게 찾아온 시인의 시혼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든다. 사물과 자연에 예민하게 열린 감각들은 그들이 걸어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사념적이기 되기 쉬운 노년의 글쓰기와 달리 생동하는 시어들은 그래서 귀를 즐겁게 한다.

“오늘은 일식 맞은 햇님에게/달님이 살짝 프러포즈하는 날/화 풀고 힘겨운 달님 품어주어요.”(‘일식’)

“빗소리 들리는 휴일 아침/아내는 교회가고 빈집에 남아/FM방송 클래식에 몸을 맡긴 채/섹시한 노교수의 글을 읽는다.”(‘작은 행복’)

언론인으로서 반세기 가까이 활동해 온 민병문(오른쪽) 시인과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이 우정을 담은 시집,‘ 새벽에 만난 달’을 펴냈다. 언론인과 기업인으로서 각각 다른 길을 걸어온 둘의 제2의 인생이 문학과 사진예술로 만났다.

벗들의 실명이 등장하는 시들은 새로운 발견이다. 병실에서 만난 진념 전 장관, 눈이 작아 행복한 뚝심이 박용성 회장 등 시의 그물에 삐죽 얼굴을 내민 모습이 낯설다. 노년의 허전한 속을 보여주는 시들도 많지만 소위 ‘땡돌이’의 당참과 여유 때문에 한숨은 길지 않다.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도 시인의 시세계를 이루는 또 한 축인 언론인으로서 다져진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움이 번뜩인다.

“변호사, 시민운동가, 언론인 등/벼슬길에 줄 선 어릿광대들/한세월 잘살자고 아등바등/뻔한 죄 지어놓고도 아닌 양/저마다 발뺌이 천리를 간다.”(‘무죄 선언’)

“자본의 정글 속에서/햇볕을 조금만 더 달라는/가냘픈 호소를/허공 중에 날려 온 나날.”(‘참회록’)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서리풀 공원’은 구호나 외침이 아닌 시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막가파식 도로 개발 때문에 둘로 갈라진 서초동 사람과 동물, 곤충의 이산의 아픔을 담아낸 이 시집은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1년 후 예쁜 ‘누에다리’를 탄생시켰다. 서초구청이 8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남의 다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자연과 사물이 지닌 진면목을 보여 주려는 60편에 이르는 사진작품들을 보는 즐거움도 크다. 관습처럼 굳어진 노년의 세계가 새로워지는 느낌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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