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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은 왜 빈티지 가구에 꽂혔나?
다양한 경력의 컬렉터 12人 금호미술관서‘디자인 컬렉션 플리마켓’展…간판 스타 2人의 삶과 가구 이야기
가구 컬렉션계 ‘대부’ 김명한 씨

정서적 안정감·조형미에 매료
어떤 사람은 산이 부른다는데
저는 생활용품이 자꾸 불러요


철제가구 한 우물 판 구자영 씨

레스토랑 디자인 고민하다
유럽 여행서 톨릭스 의자 만나
10년째 멋진 카페로 소문자자


열두 명의 직업은 매우 다양했다. 무역업 종사자, 일러스트레이터, 식당 운영자, 디자이너 등. 그러나 모두 낡고 오래된(빈티지) 디자인가구에 꽂혀(?) 짧게는 10년, 길게는 30~40년을 컬렉션에 매진해온 디자인 마니아들이다. 화려하고 멋진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타인의 손때가 잔뜩 묻은 낡은 것에 빠져 사는 이유는 뭘까. 서울 사간동의 금호미술관이 기획한 ‘디자인 컬렉션 플리마켓’전에 참여한 12명의 컬렉터 중 ‘간판스타’인 김명한, 구자영 씨를 만나 그 감춰진 이유를 들어봤다.

▶가구 컬렉션계의 ‘대부’ 김명한 대표, “물건이 절 자꾸 불러요”= 래 된 디자인 가구를 모으는 국내 컬렉터 중 ‘1세대’로 꼽히는 김명한 aA 디자인뮤지엄(design museum) 대표는 뼛속, 실핏줄까지 빈티지 디자인으로 채워진 사람이다. 내공이 깊은 나머지, 자문을 구하려는 이들이 늘 그를 에워싼다. 특색 있는 컬렉션을 바탕으로 홍대앞과 삼청동에서 aA 디자인뮤지엄을 운영 중인 김 대표는 “저 같은 경우 물건이 자꾸 절 불러요. 어떤 사람은 음악이, 어떤 사람은 산(山)이 자꾸 부른다죠? 전 가구와 생활용품이 그랬어요. 사람마다 ‘촉’이 다른 거죠”라고 했다.

지난 1980년대 중반 빈티지 가구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빨려들어갔던 그는 자신이 수집한 가구와 생활용품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과 조형미에 매혹돼 30여년을 황홀(?)하게 살았다고 토로했다. 그의 첫 수집품은 토넷(Thonet) No.14 의자였다. 외국잡지나 영화에서 많이 봤기에 정확한 이름도 모른 채 토넷을 사들였다는 것. 1980년대 중반 충무로에는 쓸 만한 물건이 꽤 많았지만 사람들이 조선목기 등에만 눈길을 줘 좋은 물건들을 거의 줍다시피 수집했다고 한다.

오늘날 김 대표가 ‘눈 밝은 컬렉터’가 된 배경에는 부친이 있다. 아버지가 달력 속 명화로 액자를 만들고, 정원을 꾸미는 걸 보며 아름다움에 눈 뜬 그는 성인이 되어선 벽지, 페인트, 의자 중 하나라도 맘에 안 들면 바꿔야 할 정도로 까다로워졌다.

“2000년 초 홍대 앞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세계적인 디자이너 임스(Charles & Ray Eames)의 빈티지 의자를 100개쯤 들여놨는데 손님들이 ‘왜 이렇게 낡고 변변찮은 의자를 설치했느냐’고 눈살을 찌푸렸죠. 그런데 2002월드컵이 끝나고, 빈티지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자 ‘그때 그 의자 좀 구해달라’는 부탁이 줄을 이었어요.”

1990년 말까지도 임스의 빈티지 의자는 10만원 안팎이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근래엔 해외에서도 50만~60만원을 호가한다. 100만원짜리도 많다. 물론 국내에선 이보다 더 비싸다. 10년 사이에 가격이 5, 6배 이상 오른 셈이다.

그는 산업용 가구, 가정용 가구, 프로방스(南프랑스) 가구까지 두루 좋아한다. 그 시대의 조형성에서 그 시대 문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빅뱅의 ‘블루’를 즐겨 듣는다는 김 대표는 “아이폰은 기기이지만 그 안의 콘텐츠는 이 시대 문화잖아요. 전 그걸 받아들이는 거죠”라고 했다.

한국의 컬렉터들은 명품지향형이라 유명 디자이너에 쏠리는 편이다. 허나 유럽에 가보면 핀 율(Finn Juhl), 한스 베그너(Hans J. Wegner) 같은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는 그 나라에서도 극히 일부층만 사용한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초보자들에게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가치를 두되, 남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중심을 잡으라고 조언했다. 또 수집품을 되팔 생각부터 하면 자꾸 꼬이게 된다며 우선은 즐길 것을 강조했다. 아울러 기본 조형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어느 시대에, 어떤 조형이 나왔는지 그 인문학적 예술적 기초를 섭렵하라고 조언했다. 

<왼쪽 위>어려서부터 벼룩시장을 즐겨 다녔던 배상필 씨가 수집한 조명들. 1910년대 미국 버지니아에서 쓰이던 대형 샹들리에를 바닥에 눕혀 꽃처럼 연출했다. 1967년 비틀즈의 BBC 공연 때 사용됐던 조명도 나왔다. <왼쪽 아래>디자이너 마영범은 오디오 컬렉션을 선보였다. 조선목기 반닫이 위에, 1970년대 영국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도자기 스피커를 장식했다.
<오른쪽>독일과 한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임상봉 씨가 컬렉션한 빈티지 가구. 상큼한 선과 면으로 이뤄진 벽장과 테이블 세트는 모두 데니시(덴마크) 가구들이다.

▶철제가구로 한 우물 판 구자영 대표, “중국인들이 몰려와요”= 무역업자 출신인 구자영 카페톨릭스(Cafe Tolix) 대표는 많고 많은 빈티지 가구 중에서도 1920~30년대 프랑스의 톨릭스 의자를 집중적으로 모으는 수집가다. 매끄러운 디자인보다 거칠고 소박한 디자인에 더 끌리기 때문이다.

그가 톨릭스 의자를 다량 구입했던 3~4년 전만 해도 가장 일반적인 모델이 150~180유로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250~300유로(한화 약 45만원)로 올랐다. 게다가 물량도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이는 중국 컬렉터들이 슬슬 움직이기 때문이다.

구 대표가 컬렉션을 시작한 것은 생업때문이었다. 식당을 운영하며 인테리어는 해야겠고, 맘에 드는 물건은 비싸 빈티지 소품들(선박용 시계, 태엽시계, 작은 조각)을 모아 장식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장충동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안’)을 오픈하며 값비싼 이탈리아제 ‘까시나’ 테이블과 의자로 실내를 꾸몄다. 의자 값만 무려 1억원이 들었는데 너무 럭셔리해서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고급주택에나 어울릴 것 같았고, 보수비도 많이 들어 탐탁지 않았다는 것.

이를 계기로 의자와 테이블에 주목하게 된 그는 유럽 여행길에서 쇠로 된 톨릭스 의자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래서 레스토랑 ‘그안’의 2호점(도곡동 타워팰리스)은 톨릭스로 ‘쫙’ 깔아버렸다. 낡은 철제의자가 세련된 레스토랑과 안 어울릴 법하지만 톨릭스가 뿜어내는 디자인파워 때문에 10년째 멋진 식당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제 아내(광고 카피라이터)의 명(名)카피 ‘10년이 돼도 1년 같고, 1년이 돼도 10년 같고’(신사복 캠브리지멤버스 카피)처럼 톨릭스의 빈티지 의자는 늘 새롭죠”라는 그는 이태원 등지에서 톨릭스 의자를 계속 사 모았으나 성에 안차 프랑스로 날아가 의자 및 탁자 사냥(?)에 뛰어들었다.

“저는 출신이 무역쟁이어서 컨테이너 베이스로 의자들을 많이 사 모았어요. ‘톨릭스’에 대해 공부해가면서요. 톨릭스는 1920년대 한 양철공의 아들이 아연도금 방식을 독학해가며 만들었어요. 그가 42살에 아연중독으로 죽자, 두 아들이 이어받아 대박을 냈죠. 1938년 파리박람회 때는 정부에 1만5000개를 납품했는데 쓸모있고 아름답다는 소문이 나며 공장, 병원, 야외로 퍼졌어요.”

구 대표는 톨릭스는 쌓거나 늘어놓기가 쉽고, 디자인이 간결해 어떤 공간에도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는 레스토랑과 카페에 쓸 목적으로 톨릭스 빈티지 의자를 자그마치 6000개나 모았다. ‘프로젝트 300(300개의 톨릭스 카페를 만드는 것)’을 위해서였는데 주위에선 ‘미친 짓’이라며 말렸다. 그러나 이제 빈티지 의자는 그의 큰 자산이 됐다.

구 대표는 미국의 정보기술(IT)업계 사람들, 일례로 스티브 잡스 같은 이는 매끈한 현대가구보다 빈티지 가구를 더 좋아했다며 “저들이 낡은 가구로 실내를 꾸미는 걸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그는 유럽의 딜러들과 친해져 창고에 쌓인 수집품을 몽땅 사올 때도 있는데, 간혹 뜻밖의 횡재도 한다고 귀띔했다. 구 대표는 언젠간 자신의 컬렉션을 중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아울러 공간과 음식, 문화가 어우러지게 하고, 이를 대중과 공유하는 일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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