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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할 수 있다”는 과잉긍정, 과연 긍정적인가.
“폭력은 부정성에서 뿐만 아니라 긍정성에서도 나올 수 있다. 이질적인 것, 낯선 것뿐만 아니라 같은 것도 폭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현대 철학의 본산인 독일 철학계 최전선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재독철학자 한병철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교수가 2010년 현지서 펴낸 ‘피로사회’가 일으킨 반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와 착취의 작동원리를 명쾌하게 제시, 역사적 맥락 속에 자리매김시킨 데서 나아가 자본주의 모순의 동양사상적 해결 방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한국어판 출간에 때 맞춰 고국을 찾은 한 교수는 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현대 자본주의는 “금지, 명령을 통한 착취가 아니라 자유를 통한 착취”라며 “타인이 착취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착취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착취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지 못하며 주인과 노예가 일치된 상태, 모두가 노예가 된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기존의 ‘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된다’는 강요와 부정성의 사회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넘어서려면 ‘너는 할 수 있다’는 긍정성과 자유를 줘야 한다는 것. 더 큰 성과를 올려서 더 큰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부추킴으로써 생산성은 극대화하지만 개인은 망가진다. 한 교수는 이를 일종의 착취로 본다. 



자기 자신을 끝없이 소모시키는 과잉 긍정성, 자기 착취는 우울ㆍ신경증과 같은 현대심리장애를 낳게 마련이다.

한 교수는 이런 성과사회의 개인은 나르시스트와 같다고 말한다. 자기 속에 빠져 남을 볼 수 없다. 갯벌에 갇혀 허우적대는 모습이다. 한 교수는 “피로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나에게 해를 끼치고 있구나 하는 인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이다”고 말한다.

그런 뒤 자신만 생각하는 피로를 다른 세계, 타자(他者) 속으로 들어가는 명상적 피로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논리다. 모순처럼 들리는 그의 이론 근저엔 장자의 무용지용론이 자리잡고 있다.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은 그의 사상의 핵이다.

한 교수는 성과사회의 과잉활동, 과잉자극에 맞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휴식의 가치를 역설한다.

‘능력=성공’이라는 공식을 떠받드는 성과사회,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흔들리는 와중에 한 교수의 철학적 전개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고려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철학으로 다시 전공을 바꿔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교수는, ’권력이란 무엇인가’ ‘폭력의 위상학’ ‘우울사회’ 등 현실을 철학의 이론으로 해석해 내는 철학자로 독일사회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현실 비판에 입을 닫고 있는 독일 철학자들과 달리 현실을 이론적으로 비판하는 글로 그는 유명하다. 얼마 전엔 투명성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최근 독일 사회문화 풍조에 대한 비판적인 글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피로사회’는 스페인어, 덴마크어, 네덜란드어, 이태리어 등 전 유럽권에 번역ㆍ 출판됐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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