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12일 “오늘 보수 삭제 논란을 종식시키겠다”며 당 정강에서 보수 삭제를 안하겠다는 뜻을 직접 밝혔다. 전대 돈봉투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와중에, 한나라당 정체성 논란과 당내 분란을 격화시킬 수 있는 ‘보수 삭제’ 논란이 불거지자 박 위원장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이다.

박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최근 당의 정강정책 ‘보수 삭제’ 논란이 있는데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결론을 지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날(11일) 권영진 의원이 “정강정책개정 소위에서 당분간 보수 삭제 논의를 유보하겠다”고 밝힌 뒤 반 나절만에 박 위원장이 논란의 종지부를 찍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는 “물론 당이 추구해야할 핵심 가치를 시대의 변화에 맞게 다시 다듬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책쇄신 작업 진행되는 과정에 보수 관련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그것보다는 실질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책 쇄신과 관련해서 이 점 염두해 두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현 시점에서 보수 삭제 논란은 타이밍상 적절치 못하며, 사실상 수정할 필요성도 높지 않음을 피력한 것이다. 비대위원들에게는 ‘보수 삭제’ 논의를 중단하고, 보다 실질적인 정책 쇄신에 매진해달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위원장이 이렇게 발빠르게 진화하고 나선 것은, 현재 보수 삭제 논란이 불필요한 소모전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전날 박 위원장은 춘천 한우 농가를 방문해 관련 내용을 듣고, 매우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박 위원장은 비대위 정책쇄신분과 위원장인 김종인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보수 삭제’ 초안이 존재한다는 보도에 김종인 비대위원도 매우 당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권영진 의원은 브리핑을 갖고 “김종인 비대위원도 저에게 전화해 ‘어떻게 된 일이냐’ 물었다”면서 “‘(정강·정책 개정)소위원회에선 현재 논란되고 있는 ‘보수 삭제’를 논의하면, 본질 흐릴 수 있어서 뒤로 유보하겠다’했더니 ‘잘 결정하셨다. 현명하게 판단하셨다’고 했다”고 전했다.

당내에는 한나라당이 ‘전대 돈봉투’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는 판국에 이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그런 것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 논의 자체만으로 당내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친박계 이한구 의원은 “한나라당이 보수의 가치를 버렸다는 말이 나오면서 난리가 날 것”이라고 했고, 정옥임 의원도 트위터에 “옹색하게 남의 옷 빌려 입듯 급조한 정책은 설득력 없다”고 적었다.

한편 보수삭제를 주장했던 김 위원은 회의직후 "당에서 생각하는 것과 내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민선ㆍ손미정 기자/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