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누가 말을 잘하면 “오늘 뇌에서 와이파이 터지는데”라고 말하고, “좋은 일좀 해”라는 걸 “천당에 로그인좀 해봐. 천사될 거야”라고 표현한다. 인터넷에 대해 물어보면 “내가 스티브 잡스야? 왜 그래”라고 반응한다.
정화되지는 않았지만 자신감 있는 개그로 자기비하에서도 벗어나 있는 지상렬은 고정 프로그램이 없는 듯 하지만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방송 출연을 이어가며 장기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나는 가수다’ ‘세바퀴’ 등에 출연하고 있는 지상렬을 최근 인터뷰했다. 인터뷰가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토크로, 그리고 수다로 바뀌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인터뷰를 한 기분이었다.
-지상렬 개그는 뭔가.
“자립개그, 나만의 집이다. 저 펜션은 뭐야, 과연 잘 수 있을까 하고 사람들이 처음에는 적응이 안됐는데 이틀을 자고 나면 괜찮네 할 수 있는 개그다. 옛날에는 거의 다 통편집됐지만 이제는 승률이 높다.”
-하지만 당신의 개그도 쉽지 않은 것 같다.
“건전지를 다쓰면 버릴 수 있는데 이를 깨물어서 활용하는 게 박명수다. 나도 비슷하다. 박명수나 나는 살아나야 한다. 바닥까지 떨어져봤다. 나는 완전히 스타는 아니지만 빨주노초파남보 중 한 가지 색깔은 보여주었다. 한 색만을 제대로 보여주어도 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곤란하다. 야구로 치면 3할 정도 노린다.”
-엉성한 콧수염과 뒤엉킨 머리카락, 후줄근한 옷차림이 트레이드마크였는데, 면도도 하고 깔끔해졌다.
“머리는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 형이 그만둘 때 도원결의하는 의미에서 잘랐다. 건모 형이 예능이라 재미있어야 한다며 립스틱을 사오라고 했다. 건모 형이 자진하차하며 제작진에 나의 잔류를 요청했지만 나도 하차하겠다고 했다.”
-버라이어티 예능에 적응하는 데 힘들지 않았나.
“고생이라면 고생이랄 수도 있다. 내가 내비게이션을 찍은 거니까, 그 선택에 고민은 덜했다. 나는 작은 콜럼버스다. 내가 섬을 찾아간 거니까. 다른 사람 때문에 비바람을 맞은 게 아니다. 이제 이런 것도 웃음으로 승화되더라. 박명수가 던지면 한이 있다. 나는 뼈가 있다. ‘니가 내 인생에 왜 깜박이 켜고 들어와’ 이런 것이다. 술 먹을 때 ‘간에다 저금 좀 많이 하세요’라고 했을 때 뭐야 했던 사람들도 요즘은 나를 이해해줘 감사하다. 누구를 해치려는 마음이 없어 이해해주는 것 같다.”
-살아가는 스타일은.
“제 스타일대로 하나하나 벽을 쌓아왔다. 내 나름대로 성을 왜 쌓았는지 설명해드리고 싶다. 지금은 반 정도 쌓았다. 편하고 솔직하게 살면 좋다. 나는 품바다. 인천 송도에는 집이 한 채 있지만, 서울에서는 천(천만원)에 오십 산다(월세가 50만원이라는 뜻). 마음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거다. 사람들은 스스로 쇠고랑을 채웠다 풀었다 한다. 후배와 술자리를 즐긴다. 개를 좋아하고 낚시를 즐겼다. 나이가 들면서 무서워 회를 못 뜨겠다. 꿈에 나타난다.”
- ‘나가수’에선 김건모ㆍ임재범ㆍ장혜진 매니저다. 그 얘기좀 해달라.
“(임)재범 형은 처음 보면 친해지지 쉽지 않다. 허들 하나만 넘으면 순수하고 아이같음을 알 수 있다.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가 이해된다. 그런데 그 하나를 넘기는 매우 어렵다. 재범 형은 30만원 벌 때도 마찬가지고, 3억 벌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더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데, 못 보여줄까봐 걱정된다. 재범 형이 나에게는 잘해주었다. 나도 최선을 다했다. 나도 가지고 있는 총알을 다 쏘았다. 연예인이 아닌 형이라고 생각하고 모셨다.”
-장혜진은 어떤가.
“깔끔한 사람이다. 도시적이고 차가울 것 같은데 빈 틈이 있다. 그 게 매력이다. 여권의 과거 사진을 든 채 미스코리아처럼 돌아보라고 하면 한다. 그런 게 매력이다. 계산하지 않는다.”
-장혜진 무대는 항상 지상렬과의 포옹으로 끝나는데.
“첫 무대서 누나가 거의 쓰러질 뻔하며 휘청했는데 그걸 잡았다. 따뜻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다.”
-장혜진 남편(강승호)의 반응은.
“승호 형이 아무 말도 안 했다. 형이 그걸 얘기하면 형이 더 이상해진다.”
- ‘나가수’에서 매니저의 역할이 적지 않나.
“연예인이 아닌 형이나 누나로 생각했다. 혜진 누나는 순위가 안 좋아 떨어질 뻔했던 고비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누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불안해하는 누나에게 ‘걱정마라. 내가 어제 금수저와 금밥그릇에 대통령이랑 밥먹는 꿈꿨다’고. 방송에 안 나가도 상관없었다. 내 말만 믿고 무대에 올라가 즐기라는 뜻이다. 내가 건모ㆍ재범 형과 혜진 누나를 모시는데 별로더라는 소리를 들으면 안된다. 그런데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예민해지지 않게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다. 그래도 개그맨 매니저가 빠지면 ‘나가수’가 ‘열린음악회’가 된다.”
- ‘세바퀴’에서의 역할은.
“MC 3명이 놓치는 부분, 훅 지나가는 부분을 집어준다. 반듯하게 생긴 게스트면 ‘보건소 위생과에 근무하는 것 같아’하는 식이다. 개그우먼 이경애가 치렁처렁 하고 나오면 ‘누나, 필리핀 영부인이야’라고 한다.”
-조카가 ‘세바퀴’에 나와 당신의 단점을 얘기한 것은 불편하지 않았나.
“더 재미있었다. 큰 형의 딸이 예능작가인데 잘 말한 것 같다. 포장하고 홍보 안 한다. 나는 그런 것 싫어한다.”
-터프한 외모와 달리 인간적이다.
“내 멘트 자체를 남자들은 좋아한다. 여자들은 어우, 더러워 그런다. 여자들과 돼지껍데기집에 갔는데,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더러운 것을 보고 더럽다 하는데, 기분 나쁘지 않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든데, 성장 과정좀.
“인천에서 셋째아들로 태어났고, 부친은 돌아가셨고 모친은 계신다. 아버지가 나를 방목해서 키웠다. 공부는 못해도 된다, 남에게 해코지는 말아라, 의리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에게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tvN ‘리얼 키즈 스토리 레인보우’의 선생님으로 잘 어울린다. 본래 아이들을 좋아하나.
“아이들을 안 좋아하면 할 수 없다. 10명을 데리고 10시간 촬영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딴생각 하면 다 흩어진다. 내 삶의 필터 역할을 해준다. 좀더 잘살아야겠다, 효도해야겠다 등 아이들에게 배울 게 많더라. 어른들에게는 오히려 무뎌지더라. 아이들에게는 순간순간 밀려오는 게 있다. 9개월 돼 아이들과 정이 들었다. 이제 아이들도 학교도 가야할텐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은.
“내 고향 인천 신포동, 이 동네가 죽었다. 30~70대는 추억이 있다. 이곳에 놀이터를 만들겠다. 추억을 살리고 싶다.”
서병기 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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