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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자경 회장이 퇴계 동상을 세웠다?
서울 곳곳 우뚝 선 53개의 동상들…그 표석에 대기업 총수들의 이름이 새겨진 사연은
원효대사-故조중훈 회장, 김유신 장군-故김성곤 회장

이이·신사임당 동상엔 故이양구·故이학수씨 각인

광화문 이순신 동상은 박정희 前 대통령 직접 헌납


군사정권이 창설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5·16 쿠데타 정당화 위해 위인 동상 다수 건립 분석

막대한 제작비용 충당 대기업 총수 동원한 결과물







서울 효창공원 내 우뚝선 원효대사 동상. 좌대를 포함해 10m인 이 동상 구조물 기단 표석에는 의외의 인물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바로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 표석에는 조각가와 글쓴이, 건립 주체의 이름과 함께 ‘조중훈 바침’이라고 새겨져 있다. 한눈에 고 조 회장이 동상 건립 비용을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서울 곳곳에 있는 위인의 동상 기단에는 저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벌 총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 뒤에는 ‘바침’ 또는 ‘헌납(獻納)’이라는 글자가 뚜렷이 아로새겨져 있어 동상 탄생 과정의 비화를 어렴풋이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구자경 회장과 이황 선생은 무슨 연고가 있길래=서울 남산공원에 있는 퇴계 이황 선생 동상의 기단에는 ‘구자경(LG그룹 명예회장) 바침’, 김유신 장군 동상에는 ‘김성곤(쌍용양회 전 회장) 바침’, 남산의 장충동 자락에 있는 유관순 열사 동상에는 ‘최준문(동아그룹 전 회장) 바침’이라고 새겨져 있다. 

광화문을 지키는 이순신 장군상, 동상 기단 후면부에는‘ 朴正熙 獻納(박정희 헌납)’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런 동상은 더 있다.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후문 구석에는 살수대첩에 빛나는 을지문덕 장군 동상이 쓸쓸히 서 있다. 동상과 기단의 자태는 웅장하다. 담과 숲에 가려 평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드러나는 그 웅장함은 소련연방 시절 스탈린의 동상이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위엄이 넘친다. 이곳 기단 후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김창원 신진자동차 사장의 이름이 ‘바침’이라는 글자와 함께 새겨져 역사를 증언한다. 남산과 어린이대공원 말고도 이런 동상은 서울 전역에 널려 있다.

▶혁명의 정통성을 정당화?=고 조중훈 회장이 원효대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구자경 회장, 고 김성곤 회장은 이황 선생, 김유신 장군과 무슨 연고가 있을까. 그 해답은 동상 기단 표석에 들어가 있은 한 단체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표석에는 하나같이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다. 이 위원회는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씨가 만든 조직. 위원장은 김종필 씨가 맡았다.

1971년부터 75년까지 국무총리에 오르는 등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세도가’였던 김종필 위원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동상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5ㆍ16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위인의 동상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조선시대 성역이었던 사직단을 품고 있는 사직공원에는 율곡 이이와 그 어머니 신사임당의 동상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역시 애국선열조상건립위가 건립한 이 두 개의 동상은 다른 동상과 마찬가지로 중후하고 거대한 돌기단을 바탕으로 생동감 있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율곡 이이 동상 기단 뒤에는 ‘이양구 바침’(동양제과 창업주), 신사임당 동상 기단 뒤에는 ‘이학수 바침’(고려원양 사장)이라고 각인돼 있다. 애초 고려서적 사장이던 고 이학수 사장은 박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로 5ㆍ16 군사정변의 혁명공약을 인쇄하는 위험을 무릅쓴 뒤 박 대통령의 배려로 고려원양을 세워 수산업에 진출, 큰 돈을 번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남산 유관순 동상에 새겨진 표석에는 고 최준문 동아그룹 전 회장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동상은 다른 동상과는 달리 배경과 무척 어울리지 않는다. 나란히 서서 사직단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그 아들의 모습은 ‘생뚱맞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이 ‘생뚱맞음’은 총력전을 펼쳐 동상은 제작했지만 정작 이 동상을 어디다 둘지, 진지한 고민이 결여돼 나타난 후유증은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당시 위원회는 일단 동상을 만들기 위해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기업 총수를 끌어들였을 것”이라며 “그 계획은 꽤 성공적이었고, 동상을 어디에 둘지에 대한 고민은 그 다음 단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충무공 뒤에선 세종대왕, 거기에도 비화가=위원회가 세운 동상 중 건립 당시부터 명백하게 ‘안치’할 장소가 정해진 동상은 단 하나였다. 바로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조선시대에 광화문은 남대문을 정방향으로 바라보게 지어졌지만, 일제시대 때 옮겨지며 각도가 뒤틀려 남산에 세워진 일제의 신사를 바라보게 됐다.

일설에 의하면 박 대통령이 차마 광화문을 뜯어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이러한 일제의 기운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것이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다른 동상은 몰라도 이순신 장군 동상만큼은 광화문에 세워지는 것을 전제로 제작되었다는 얘기다.

현재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기단 후면부에는 다른 동상과 달리 금빛 활자로 ‘朴正熙 獻納(박정희 헌납)’이라고 새겨져 있다.

기업 총수와 대통령에 이어 김종필 위원장도 동상을 하나 헌납했다. 지금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이다. 이 밖에 동국대 입구의 사명대사상, 후암동 측 남산공원 초입의 정약용 선생상, 양화대교 녹지대의 정몽주 선생상 등 위원회는 60년대 말~70년대 초 이런 식으로 12개의 동상을 건립한 뒤 해체됐고, 이후 다양한 건립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41개의 동상을 더 세워 현재 서울에 있는 동상은 53개에 이른다. 

김수한 기자/ soohan@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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