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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임협 무분규 타결 사업장 작년의 2배

국내 대기업 노무담당인 H모 부장은 올 임단협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회사 실적이 좋아 노조 요구가 거셀 것이 뻔한 데다 이달 초부터 복수노조 허용이라는 변수까지 겹쳐 협상이 난항을 거듭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막상 뚜껑을 열자 회사는 실적에 걸맞은 통 큰 보상을 약속했고, 실리를 중시하는 현장직원들도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노조 지도부가 흔쾌히 사측 제안을 수용했다. H 부장은 “며칠 밤샘을 각오했는데 오히려 협상이 예년보다 순조롭게 끝나 놀라울 따름”이라고 웃었다. 그의 말처럼 올 들어 6월 말로 이미 37%의 사업장에서 임금협상이 타결되는 등 무분규 타결이 유난히 빠른 속도로 줄을 잇고 있다.   


위기속 신뢰

옥쇄파업이 되레 생존권 위협


反투쟁 실리

강성 쌍용차·기아차 노조 속속 변신


통 큰 보상

실적호전 임금·복지 대폭개선



▶전화위복…위기가 화합, 신뢰의 계기로
=쌍용차는 올해도 분규 없이 국내 완성차업체 중 가장 빨리 협상을 마무리했다. 지난 2009년 노조의 생산라인 점거 파업으로 회사가 존폐의 기로에 섰던 것을 감안하면 ‘상전벽해’다.

쌍용차가 속전속결로 협상을 타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전 파업 덕이다. 앞날을 생각하지 않은 옥쇄파업으로 전 임직원의 생존권이 심각한 위협을 받은 경험이 화합의 계기가 됐다. 김규한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노조가 회사에 요구를 하려면 회사부터 살려놓고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는 말로 현장 분위기를 대신했다.

10년 이상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이뤄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공통점도 과거 투쟁지향적 노동운동의 쓰사린 경험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파업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실제 90년대 초반 파업으로 인한 경영악화로 산업합리화 대상 업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역시 회사 능력과 상관없이 노조가 자기 몫만 요구하면서 매년 파업과 직장폐쇄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러자 현장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회사도 경영안정에 최선을 다했다. 이후 노사가 신뢰와 상생의 길을 모색하면서 지금은 가장 모범적인 사업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장은 반(反)투쟁 실리 중시, 회사는 통 큰 보상=2011년 임단협의 최대 이슈는 기아차의 2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다. 현대차와 더불어 강성으로 꼽히던 기아차는 협상 보름 만에 잠정 합의안을 이끌어내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배경은 다름 아닌 실리를 중시하는 현장 분위기와 회사 실적에 걸맞은 사측의 보상이었다.

2009년 기아차는 임금협상을 타결하지 못하고 파업을 벌였다. 반면 현대차는 매년 이어지던 파업의 고리를 끊고 분규 없이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그 덕에 현대차 직원은 무분규 격려금으로 무상주 40주를 받았지만 기아차는 없었다. 작년에는 두 회사 모두 600만원에 달하는 무상주를 무분규 격려금으로 받았다.



기아차는 사상 최대 실적에 따른 보상으로 올해 역대 최고 수준의 기본급 인상과 성과ㆍ격려금 지급 및 무상주 80주를 주기로 약속했다. 그 결과 1인당 2000만원 이상 보상을 받아낸다는 노조의 목표가 충족돼 최단기간 임협 타결로 이어졌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도 마찬가지다. 강성이었던 노조가 상생을 위한 공동 노력에 나서자 회사 실적이 좋아졌고, 여유가 생긴 사측은 임금인상과 사원복지 개선으로 화답했다. 그 덕에 현대중공업은 17년 연속, 대우조선해양은 21년 연속 무분규 협상 타결 행진을 잇고 있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상생을 위한 노조의 노력과 이에 대한 사측의 합리적인 보상이 이뤄지면서 무분규 타결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어려울 때에도 통할 수 있는 노사 신뢰가 쌓인다면 무분규 타결은 임단협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희ㆍ신소연 기자/hamle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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