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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 뜬 밤에 짙은 그림자? 근대 일본 미술의 비밀
‘근대 일본이 본 서양’ 展



전통적인 동양화를 들여다보면 놀라운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낮인데도 하나같이 그림자가 없다는 것.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들어 서구 미술과 과학이 유입되면서 동양 미술은 엄청난 격변을 겪게 된다.

그 격변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미분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대 미술관이 다음달 29일까지 여는 ‘근대 일본이 본 서양’전. 일본 고베시립박물관에 소장 중인 일본 근대미술(18~19세기)의 대표 작품과 유럽ㆍ중국 서적 등 총 80점이 빼곡하다. 모두 한국에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전통적인 일본 미술이 서구 문명에서 받은 충격과 함께 어떻게 접목되고 변화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동양화도 서양화도 아닌 듯 묘한 화풍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관심 있게 보면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의 뿌리까지 엿볼 수 있다.

일본 미술의 변화는 독특한 개항 방식에서 비롯됐다. 1639년 에도 막부는 서구 국가 중 유일하게 네덜란드와만 나가사키 항을 통해 교역하겠다고 선언한다. 네덜란드인은 신교도들이라서 기독교 포교보다는 상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 막부는 나가사키 항에 데지마라는 인공섬을 만들어 네덜란드인 특구로 삼는다. 네덜란드는 마침 당시 유럽 내 인쇄의 중심지였다. 서구 기술과 문화의 정수가 일본에 전해지게 된 연유다.

서구 문물 유입에 목말라 있던 막부와 학자들은 화가와의 협업을 통해 이를 흡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술가들은 그들의 서적에 나타난 사실적이고 정교한 그림들에 흠뻑 매료됐다.

18세기 화가 소 시세키의 ‘매화나무에 앉아 있는 긴꼬리까치 한 쌍’은 문인의 기개를 은유하는 대신 선명한 색채와 장면 자체의 정취에 천착했다.

오진이 학예연구사는 “‘포도도’에서도 가지와 열매의 수분 차이를 표현하는 등 종전과 달리 감각(시각) 자체에 치중한 그림이 탄생한 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타가와 구니요시가 그린 ‘24명의 효자 이야기’처럼 일본 전통의 스토리를 도구로 삼아 서양화의 갖가지 화법을 실험해본 작품들도 흥미롭다. 

우타가와 히로시게가 그린 ‘사루와카 거리의 밤 풍경’(1857ㆍ종이에 목판 채색인쇄). 야경임에도 그림자가 지나치게 강조돼 있어 다소 어색하다.

당시 부유한 상인들을 위해 성행한 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畵ㆍ부세화)의 주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것도 이번 전시의 장점이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동판화 기술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 최초의 동판화인 시바 고칸의 ‘미메구리 풍경’에서는 소실점을 두고 원근법을 펼쳐내 서구 회화의 영향력을 실감케 한다.

야경임에도 그림자를 지나치게 강조한 ‘사루와카 거리의 밤 풍경’(1857ㆍ우타가와 히로시게) 같은 작품도 눈길을 끈다. 그림 설명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카페’(1888)를 비교해놓았다. 18세기에 일본 미술이 서구화됐다면 19세기에는 일본 미술이 역으로 서구 회화에 영향을 끼쳤다. 반 고흐, 고갱, 마네, 모네 등이 일본 회화의 평면성에 오히려 빠져든 것. 이 시기에 동양화와 서양화가 서로 근접하며 예기치 않은 접점을 공유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 밖에 오다노 나오타케, 가쓰시카 호쿠사이 등 18~19세기 일본 대표작가 37명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임희윤 기자/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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