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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적과의 동침 (9)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어이쿠!’

유민 회장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머리카락이 고슴도치처럼 솟구쳤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지겟작대기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다리를 만져보았다.

“어험, 어험! 아이고 목이야. 사래 들었어요. 어허엄!”

유민 회장은 억지로 사래 든 행세를 하며 테이블에서 벗어났다. 다리를 만져보니 현성애의 다리임에 분명했다. 손에 붙은 감각의 눈도 머리에 붙은 실제 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법이다. 특히 여체의 감각을 기억하고, 복제하는 능력은 오히려 실제 눈보다 손가락 끝에 붙은 감각의 눈이 더 예민할 수도 있다.

“이걸 어찌해야 좋을꼬?”



유민 회장은 공연히 화장실 쪽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고민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매끈하게 느껴지던 감촉으로 보아 스타킹도 신지 않은 현성애의 짓이 분명했다. 하긴 현성애는 평소에도 스타킹을 신지 않은 맨 다리일 경우가 많았다. 어찌 그뿐이랴? 한 뼘에 쏙 들어올 것만 같이 가느다란 발목이며, 육상선수처럼 바닥중간이 오목하게 들어간 발바닥에서 찰라의 순간에도 낯익은 느낌이 물씬 풍겨오지 않았던가.

“죽느냐, 사느냐… 머리통에 쥐 나는구먼!”

이를테면 협박을 당한 셈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협박. 바로 옆 자리에 아내 신희영이 앉아있는 상황에서 발을 길게 뻗어 유민 회장의 사타구니를 지그시 누른다는 것은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까불면 죽여버린다’며 협박하는 것보다도 더욱 끔찍한 일이었다. 그건 ‘모든 것을 아내에게 폭로 하겠다’는 의미였으므로…

“이게 전복이고 그 아래에 겹쳐 있는 것이 돼지 목살을 양파에 졸인 것이에요. 돼지고기를 구울 때 마늘과 로즈메리를 넣어서 전혀 누린내가 나지 않을 겁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은 유민 회장은 마침 새로 바뀌어 나온 전복요리에 대해 설명하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그러나 이건 또 뭐람, 또다시 사타구니에 압박이 가해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아예 발가락까지 꼬물거리지 않겠는가.

‘아멘! 나무 관세음보살, 살라무 알라쿰!’

이토록 절대 절명의 위기 순간을 맞은 후에야 사람들은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가? 유민 회장은 더 이상 자신의 의지로 이 난관을 넘길 수 없다고 여겼다. 이 자리에서 자동차 레이싱 팀을 포기한다면? 아마도 현성애는 나와의 부적절한 애정관계를 폭로할 지도 몰라…

“어쨌든 결정을 내립시다. 내 생각엔 아무래도 골프보다는…”

유민 회장이 더듬거리며 여기까지 말을 이었을 때, 이번에 태클을 걸고 나선 사람은 역시 강유리였다.

“회장님, 하다못해 몽고! 몽고에서도 클럽 회원권 값이 부쩍 오를 만큼 골프는 대중 스포츠가 되었어요. 스포츠마케팅의 필수요건이 대중성 아닐까요?”

이런, 이런… 유민 회장은 졸도할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하필이면 몽고의 예를 드는 것부터가 역시 협박이었다. 한쪽에서는 다리를 걷어붙인 채로 육탄 협박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낭랑한 목소리로 범죄현장을 들춰내며 말 협박을 하니 이제는 어느 쪽에 의해서든 살아남을 수 없을 터였다.

“둘 다 합시다. 골프 팀도 꾸리고, 자동차 랠리 팀도 꾸려봅시다. 돈이 얼마가 깨지든… 모두 다 하자고요.”

모든 것을 다 이루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한 마음과 다름없다. 유민 회장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있는 강유리나 현성애의 진정한 목표는 유호성이었다. 재벌가의 황태자인 유호성을 누가 차지하느냐? 따지고 보면 유호성이야말로 계란의 노른자였다는 말이다.

노른자가 아까와서 일까? 현성애의 발가락이 더욱 요란하게 사타구니를 헤집는 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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