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허건식의 도의상마] 택견과 씨름의 2019년 新대쾌도
이미지중앙

대쾌도.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을 표현한 그림을 풍속화라고 한다. 인간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풍속화는 다른 장르의 회화보다 일상의 삶의 표정과 해학적 요소가 작품에 많이 가미되어 있다. 해학은 익살스러우면서 풍자적인 것으로 조선후기 풍속화에 잘 나타나는 웃음의 미학(美學)이다.

조선시대의 풍속화는 실학사상(實學思想)과 밀접하다. 임진왜란 이후 문화적 자존의식이 영향을 미쳤고, 우리의 정체성을 자각한 일부 화가들이 우리의 자연과 현실에 입각한 사조(思潮)를 만들어냈다. 경제적인 부흥에 따른 서민신분의 변화, 백성의 삶을 그려서 왕이 깨달음을 얻도록 하기 위한 그림, 그리고 문인사대부(文人士大夫)들이 풍류(風流)를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지배층보다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쾌도’는 조선사회의 태평성대 기원

이 중에서 풍속화가 유숙의 대쾌도(大快圖)는 ‘크게 상쾌하고 즐거운 그림’이라는 제목만큼이나 흥이 난다. 그림 속 가마 행렬, 씨름과 택견을 구경하는 무리, 그 아래 술판이 벌어져 잔을 권하는 사람들이 웃음을 보이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어렵던 조선말에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희망을 나타낸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 조선사회는 당파싸움과 자연재해로 인해 가뭄과 전염병이 돌아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시기에 나들이를 하고, 스포츠를 즐기고, 술잔을 기울이는 필남필녀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그 희망을 더 강하게 표출한다. 그런데 이 대쾌도의 바람은 2019년 새해 벽두, 우리가 바라는 희망과 다르지 않다.

택견과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한국은 어려운 경제 상황과 주변국의 긴장감, 그리고 정치적인 갈등 속에서 기해년(己亥年) 새해를 맞았다. 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도 당연히 많은 희망이 얘기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대쾌도의 택견과 씨름이다. 조선시대 태평성대를 희망하는 대쾌도가 택한 놀이가 택견과 씨름이었다. 그리고 이 둘은 약 150년이 지난 지금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 성과를 얻어내며, 우리네 무예진흥을 위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택견은 2011년 11월 2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무예로는 세계 최초로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공격성이 강한 다른 무예와는 차별화된 가치가 깃들어있는 점이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이어 7년 후인 지난해 11월 26일 남북이 함께 등재를 신청한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남북이 동일한 유산을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개별적으로 등재한 적은 있지만, 공동등재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씨름의 남북한 공동등재는 24개 위원국의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는 남북의 씨름이 그 연행과 전승양상,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의미에 공통점이 있고, 평가기구가 남북 씨름을 모두 등재를 권고한 점을 고려해 전례에 없는 ‘개별 신청 유산의 공동등재’를 결정했다.

이미지중앙

지난해 12월 20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씨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남북 공동등재 기념식에서 남북씨름대결이 펼쳐졌다


안타까운 것은 택견과 씨름의 국내 상황이다. 세계가 인정한 인류의 자산이지만 실상은 초라하기만 하다. 택견의 경우 이미 1983년 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지만 대중화는 요원하다. 다른 무형문화재와 마찬가지로 예능보유자와 전수자체계에서 기술의 다변화를 이뤄지지 않았고, 보급도 시원치 않았다.

씨름은 대한체육회 종목으로서 전통스포츠로 발전해왔다. 씨름은 스포츠로 정착이 이루어지면서 1980년대 민속씨름이 큰 인기를 누리던 시절도 있었고, 각급 학교와 실업팀에 이르기까지 전문체육영역에서도 활발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현재는 인기저하, 저변축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국내 택견계는 택견의 스포츠화와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문화재로서 택견의 유산을 지키고자 한다. 씨름계도 씨름부활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씨름 세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가장 한국적인 전통스포츠로 인정을 받는 두 무예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적 관심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新대쾌도의 꿈

문화는 삶의 양식이기 때문에,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진정한 무형문화유산의 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현대 문화와의 소통과 융합을 통해 ‘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으로 역사적인 창조와 발전을 거듭해나가야 한다.

택견과 씨름의 경우는 전통스포츠이자 민속스포츠로서의 생명력을 강화하기 위해 먼저, 경기화를 통해 가치를 높여야 한다. 여기서 경기화를 기존 올림픽스타일의 스포츠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대중이 다가서고, 함께 할 수 있는 즐길거리가 되면 충분하다.

택견과 씨름의 역사를 보면, 현대 스포츠의 어떤 경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경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대쾌도에서 많은 이들이 즐기는 모습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면 문화유산의 개념을 확장해 보호의 범위를 확대하고 현대사회에 부합되는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창조적 발전이다. 기존 무형문화재들이 교조적인 원형보존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택견과 씨름은 민간에서 몸으로 전승된 기술이라는 점에서 활성화를 위해서는 원형보존주의와 현대사회에 맞는 경기화(세계화)라는 양면성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택견과 씨름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와 위상이 제고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통해 새로운 대쾌도를 그릴 때가 된 것이다.

최근 씨름계는 공동등재를 기념하기 위해 남북한 공동 씨름대회와 축제이벤트를 고민하고 있다. 굳이 씨름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한반도평화와 경제안정,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광화문광장이나 서울광장에서 택견과 씨름이 신명나는 한판을 펼치는, 2019년 ‘신(新)대쾌도’를 상상해본다.

* 허건식 박사는 용인대에서 무예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 국립태권도박물관, 예원예술대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