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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싱] 이흑산과 함께 탈영한 '또 한 명의 난민복서' 에뚜빌

지난 7월, 카메룬 출신의 난민 복서 이흑산(34 본명 압둘라이 아싼)의 이야기가 지상파 방송에 소개됐다.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에서 태어나 생계유지를 위해 복싱을 시작했던 이흑산은 군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입대해 12년간 혹독한 생활을 견뎌냈다. 그러다 2015년 문경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출전했다가 탈출해 난민 지위 신청을 했고, 결국 2년 만에 그 지위를 인정받았다.

워낙 우여곡절이 많은지라 여러 언론이 이흑산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다뤘다. '난민복서' 이흑산은 올해 3차례 공식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한국 슈퍼웰터급 챔피언 자리에 올랐고, 내년 세계복싱협회(WBA) 아시아 타이틀매치를 앞두고 있다(이흑산은 현재 WBA 아시아 랭킹 8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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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에 있던 시절 이흑산(가운데)과 에뚜빌(오른쪽). [사진=이흑산 제공]


이런 그와 함께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동료가 있다. 에뚜빌(30). 그 또한 카메룬 군에서 잦은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뎌야 했고, 이흑산을 따라 문경에서 같이 도망쳤다. 파란만장한 새 삶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천안에 머물던 에뚜빌은 난민 신청자였기에 6개월마다 체류 허가를 연장 받아야 했는데, 서류를 사흘 늦게 제출해 강제추방 명령을 받고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됐다.

에뚜빌의 운명은 안개속이나 다름없었다. 강제 추방을 당해 본국으로 돌아가면 최소 5년 이상의 징역에서 최고 사형까지 당할 수 있기에 잠을 청하기 힘들었다. 이런 그에게 이일 변호사가 손을 내밀었다. 국내에 체류 중인 난민들을 돕는 단체인 '난민지원 네트워크'에서 의장을 맡고 있는 이 변호사는 에뚜빌을 만나 수차례 상담했다.

"제가 도운 건 별로 없었어요. 직접 대면해서 상담하는 과정을 많이 거쳤을 뿐이에요. 사실 에뚜빌이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어요. 이흑산은 보호소에 수감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었고, 시합에서도 이겨 이슈화가 많이 된 편인데, 에뚜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이흑산보다 나이도 어리고 힘도 좋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운동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경과를 설명하던 이 변호사는 "에뚜빌은 굉장히 긍정적인 사고를 지녔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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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친 후 다정한 포즈를 부탁했다. 왼쪽부터 이흑산, 이경훈 관장, 에뚜빌. [사진=유태원 기자]


천신만고 끝에 난민지위를 획득하고 11월 중순 보호소에서 석방된 에뚜빌은 이흑산을 좇아 춘천으로 향했다. 하지만 현실은 팍팍했다.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으로 정부에서 매달 48만 원을 보조받고 있지만 한국에서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더군다나 국내 프로복싱 사정이 열악한 탓에 4라운드 경기 대전료가 고작 10만~20만 원 수준이었다. 이렇다보니 운동에만 전념하기가 어렵다.

먹고 사는 문제가 눈앞에 닥치니 에뚜빌도 여간 혼란스러운 게 아니다. 현재 심정을 묻자 그는 "stressful"이라는 짧은 영어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 보호소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었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본인이 짊어져야하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내겐 시간이 필요하다. 복싱만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해 12월부터 근 1년간 보호소에 있었기에 몸 상태나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1월 말 시작하는 프로복싱 신인 최강전 '배틀로얄' 출전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운동을 하겠다는 확신이 서면 출전하겠다는 생각에서다. 국내에서 공식전을 단 한 차례도 치르지 않았지만 실력만큼은 이흑산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이다. 이흑산과 에뚜빌의 매니저인 이경훈 관장(춘천 아트복싱체육관)은 "이 친구(에뚜빌)는 힘이 장사예요. 파괴력만 놓고 보면 오히려 이흑산보다 나아서 시합 뛰면 분명 좋은 성적 낼 겁니다. 그럼에도 마냥 권유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죠. 결국 돈이 문제입니다"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는데, 한 고비를 넘으니 더 큰 고비가 버티고 있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형(이흑산)이 택한 복서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복싱을 접고 안정적인 삶을 택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인생에 있어 중차대한 결정이기에 차일피일 미룰 수 없다. 에뚜빌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태원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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