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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섭의 링사이드 산책] 국보급 트레이너 김진길 관장과 무서운 아이들

얼마전 신문 사설을 탐독하다가 대한역도연맹 이원성 회장이 ‘천자춘추’라는 컬럼을 통해 한국 스포츠계의 위대한 지도자 세 분을 선정한 글을 접했습니다. 마라톤 지도자 정봉수 감독과 축구의 히딩크 감독, 복싱의 김진길 관장이 선정되었는데요. 필자의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고, 김 관장이 이번 링사이드 산책의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되는 단초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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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계에서 국보급 트레이너로 불리는 김진길 관장.


한국 스포츠의 3대 지도자

김진길 관장은 1940년 경남 합천 태생이죠. 역사적으로 합천은 신라시대 대야성으로 불리던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장군 윤충에 의해 신라 김춘추의 사위인 품석과 딸인 고타소가 죽임을 당한 역사의 현장이었죠. 김 관장은 1961년 신인왕전 라이트급 우승자 출신으로 한국 주니어라이트급 챔피언인 라이온산(44년생,본명 송배영)을 한 차례 꺽는 등 유망주였습니다. 하지만 뜻한 바가 있어 1965년부터 일찌감치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무려 52년 동안 외길 인생을 걸으면서 김철호, 유명우, 지인진 등 걸출한 3명의 세계 챔피언을 키워냈습니다. 김 관장은 이들을 도합 5차례에 걸쳐 챔피언에 등극시킴으로서 국위를 선양했죠.

당연히 김진길 관장은 ‘챔피언 제조기’라는 명성을 얻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할 최고의 지도자 반열에 우뚝 섭니다. 이에 대한 공로로 1986년 대통령 표창을 시작으로, 1991년 WBA 멘도사 회장으로부터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았고, 2005년엔 WBA 제84차 총회에서 또 다시 세계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습니다. 수제자인 유명우(64년생,서울) 또한 1989년 마이크 타이슨과 함께 WBA 최고의 복서로 선정됐을 뿐만 아니라 2013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얻습니다. 말 그대로 호부호자(虎父虎子), 즉, 호랑이 아버지에 호랑이 아들이었죠.

김진길 관장의 지도자 서곡은 필리핀에서 울려 퍼졌죠. 1975년 김현치(23전승9KO승)를 조련해 적지에서 WBA 주니어라이트급 세계챔피언인 벤 빌라폴로에게 도전한 것인데 비록 고배를 마셨지만 인상깊은 경기를 펼쳐 갈채를 받았죠. 1977년 봉천동에 대원체육관을 차린 김 관장은 이듬해 17세 천재복서 양일(61년생,천호상전)을 발굴합니다. 양일은 1978년 서울 신인, 전국 신인, MBC 신인왕 등 3개 대회에서 페더급 싹슬이 우승을 달성했으며, 3개 대회에서 모두 MVP에 선정됐죠.

1979년 3월 벌어진 그 유명한 라이트급 4강전에서 김광민이 김태호와 오영호를 연달아 꺽고 최후의 승자가 됐는데 그를 지도한 트레이너도 바로 명장 김진길이었죠. 이듬해인 80년 1월 김 관장은 홍안의 소년 김철호(61년생, 화성)를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인 라파엘 오로노에게 도전시켜 극적인 9희 KO승을 연출함으로써 10대 소년 김철호를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만들었고 이 타이틀을 5차까지 지켜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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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유명우 챔프(왼쪽)와 김진길 관장.


전설의 등장

그 무렵 인천체고에 재학중인 유명우(64년생, 서울)라는 차세대 에이스가 소리소문없이 기량을 연마했습니다. 그리고 1982년 3월 프로에 입문함과 동시에 연승가도를 질주함으로써 김 관장의 복싱 인생은 최절정기에 이룹니다. 1985년 12월 세계 정상에 등극한 유명우는 이 타이틀을 6년 9일 동안 지키며 17차 방어전까지 끌고 가면서 무수히 많은 기록을 양산했죠. 국내 최다연승인 36연승 기록을 필두로, 세계타이틀 최다승(20승)과 최다 방어(17차), 최다 KO승(10회), 동체급 최단기록 KO승(대 투논 전. 1회 2분46초) 등 수많은 기록을 쏟아냈죠.

한 가지 인상적인 장면은 타이틀 상실 후 필자가 트레이너로 근무하던 88체육관에 김진길 관장과 함께 9개월 만에 나타난 유명우의 모습이었습니다. 유명우는 씨름선수처럼 몸집이 불어있어 이오카와의 리턴매치에서 체중조절이란 높은 산맥을 넘기 힘들 것이라 여겼습니다. 실제로 당시 진윤언(67년생, 함평)이란 복서와 스파링을 했는데 예전에 보여준 탄력있고 생동감 넘치는 몸짓을 전혀 보이지 못한 채 무기력한 상태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지켜본 사람들은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제 유명우시대는 끝이 났다고 느꼈죠.

그때 유명우의 체중은 65kg을 상회했죠. 하지만 유명우는 지옥훈련을 통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김 관장과 호흡을 맞춰 18차 방어전에서 이오까에게 상실한 타이틀을 337일 만에 되찾아오는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했죠. 한 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한 가슴 짜릿한 스릴을 만끽한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 복싱사상 풀었던 벨트를 다시 찾아온 것은 유명우가 최초였죠.

리턴매치에서 승리했을 때 <일간스포츠> 1면 톱기사 제목이 ‘아! 유명우’였습니다. 그 중심엔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없다는 수사불패(雖死不敗)의 강한 신념을 지닌 해병대 출신 김진길 관장이 있었던 것입니다. 명장 밑에 약졸 없는 법이죠. 유명우는 선수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다운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계체에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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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현치 회장, 유명우, 김진길 관장.


유명우의 정문입설(程門立雪)

39전(38승<14KO>패)을 싸우면서 창출한 숱한 기록만큼 돋보이는 유명우의 휴머니즘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김진길 관장에 대한 배려입니다. 김 관장은 유명우가 챔피언시절 책정된 트레이너비 10%를 전부 수령 하지 못했죠. 왜냐하면 프로모터였던 김현치 회장과 조율해 같이 근무했던 동료 코치들에게 3%를 나눴기 때문이죠. 이를 인지한 유명우는 본인의 파이트머니에서 스승의 부족한 3%를 채웠죠. 이건 프로복싱계에선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유명우의 파이트머니가 통상 1억 원이라 가정할 때 300만원은 당시 체육관 사범 1년 연봉과 맞먹는 큰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진길 관장이 노량진 상도터널 근처에 트레이너비를 모아 집을 짓기 시작하자, 유명우는 현장을 방문해 인부들에게 “수고하신다”는 인사말과 함께 용돈과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노태우 대통령이 유명우를 청와대로 초청했을 때 “나를 챔피언으로 만들어주신 관장님과 동행하지 않을 자리라면 차라리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청와대에 전했고, 관철되지 않자 일정을 단호하게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챔피언 시절엔 받은 파이트머니로 부모형제들에게 집을 한 채씩 사줬던 이러한 행동이야말로 복싱을 넘어 인생의 챔피언으로 불릴 만한 유명우의 미담입니다.

투타임 페더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지인진(73년생, 서울)도 김진길 관장의 빼놓을 수 없는 보배입니다. 2001년 7월 LA에서 벌어진 WBC 페더급 타이틀전은 명승부였습니다. 당시 40전전승(31KO)의 챔피언 에릭 모랄레스(멕시코)와 24승(14KO승)1패를 기록 중인 도전자 지인진은 일진일퇴의 접전을 펼쳤고, 지인진은 근소한 판정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지만 이 명승부가 괜한 것이 아님을 입증하듯 이후 두 차례나 세계정상에 등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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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애제자 윤석현(왼쪽)과 지인진 챔프(오른쪽)의 선수시절, 대원체육관에서 이들과 포즈를 취한 김진길 관장.


김진길을 거치면 성공한다

중요한 것은 김철호 유명우 지인진은 모두 중1때부터 김진길 관장이 직접 발떼기부터 시작해 세계 정상까지 끌어 올렸다는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이들의 기승전결은 김 관장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복싱 사상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2연패를 이룩하고 올림픽에서 메달까지 획득한 선수가 단 한명 존재하는데 그 선수가 바로 백현만(64년생,경희대)입니다. 이 선수를 발탁해 키운 지도자도 바로 김 관장입니다.

또한 9연승(5KO승)을 달리던 유망주 국순일(원진)에게 치명적인 1패를 안기고 세계챔피언을 역임한 김봉준을 판정으로 잡았던 투타임 한국챔피언 임하식(63년생,장수)과 ‘동양의 쿠에바스’ 박정오(태양)를 꺽은 투타임 웰터급 동양챔피언 윤석현(72년생, 예산), 여기에 권만득과 정용범(이상 동국대), 김지훈(한국체대) 등 김진길 관장이 키운 훌륭한 복서는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얼마전 유명우 챔프가 부천시 원미구에 버팔로 복싱짐을 오픈하고 후진양성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죠. 프로모션과 함께 직접 선수를 육성한다고 하기에 더욱 더 기대가 큽니다. 김 관장은 “나의 50년 복싱 인생에서 유명우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잊지 못할 소중한 선수”라며 애제자에 대한 속깊은 사랑의 속내를 내비쳤죠. 앞으로도 한국 복싱에서 김진길 관장 같은 우수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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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명우 챔프의 버팔로복싱짐 개관식에서 포지를 취한 임종대, 최예석, 유명우, 안내기(좌측부터).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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