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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오픈 숨겨진 역사] 69년 한국오픈 출전자 척 루탄의 애틋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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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페블비치 대회에 출전하던 당시의 찰스 D. 루탄.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천안)=남화영 기자] 지금으로부터 48년 전 한국에서 파견 군인으로 근무하면서 골프를 즐기고 이제 막 성장하던 한국오픈에 참석했던 미국인 찰스 D. 루탄(Ruttan)의 이야기는 코오롱 한국오픈 60주년을 맞아 새롭게 조명할 만하다.

지난 4월 어느 날, 대한골프협회(KGA)로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미국에 사는 74세 노인이라고 밝힌 사연은 이러했다.

‘나는 74살의 찰스(척) D. 루탄입니다. 1969년에 아마추어로 한국오픈에 출전했지요. 당시 아마추어로는 2등으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시상식에서 아마추어 2등 트로피를 받았고요. 그건 지난 2011년에 미국 선수 리키 파울러가 코오롱한국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받았던 트로피의 작은 버전이었던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그 트로피는 텍사스 휴스턴에 살 때 홍수 피해를 입어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요청하건대 가능하다면 당시 받았던 트로피를 복제본이라도 받고 싶습니다. 그건 내겐 잊을 수 없는 놀라운 기억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오픈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이후 내 삶의 자랑스러운 기억입니다. 복제 트로피에 드는 비용은 얼마든 부담하겠습니다. 내 요청을 부디 심사숙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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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A의 옛 장부 속에서 찾아낸 찰스 D.루탄의 1969년 한국오픈 최종일 스코어.


사연을 접한 KGA는 그의 요청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옛 기록을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50여년에 가까운 옛 기록을 찾는다는 건 힘든 작업이다. 요즘처럼 쉽게 잊고 지워버리는 시기는 더욱 그렇다. 더욱이 당시 한국은 컴퓨터 집계 시스템도 도입되기 전이었다. 다행히 KGA는 초창기 대회 기록을 보관하고 있었다.

켜켜이 쌓여 오래된 장부 더미 속에서 화석같았던 69년의 한국오픈 마지막날 스코어 장부가 48년만에 세상으로 나왔다. 이 장부는 대회 3라운드까지 선두부터 나열되어 있었다. 당시 대만 선수 사영욱이 3라운드 선두로 출발해 우승했다. 그는 첫날 70타를 시작으로 72-73-71타를 치며 우승했다. 1961년, 1963년에 이어 통산 3승을 달성한 유일한 외국인이 바로 그였다.

3라운드까지는 박정웅이 2위, 이일안이 3위였다. 파이널 라운드에서 선두 사영욱은 71타를 쳐서 최종합계 2언더파 286타로 우승했다. 일본의 이사오 가츠야스가 2타차 288타를 쳐서 2위, 한장상이 289타로 3위, 이일안은 290타로 4위를 했다. 3라운드에서 6위였던 한장상은 마지막날 타수를 줄여 3위로 마친 것이다. 찰스 루탄은 첫날 80타를 쳤고, 이어서 78-82-80타로 4라운드 합계 320타를 기록했다. 챔피언 사영욱과는 무려 34타 차였다. 하지만 아마추어 부문에서는 2위로 집계됐다. 장부에도 그의 이름 뒤에 아마추어(a)표시가 빨간색 펜으로 새겨져 있었다. 루탄이 69년 제12회 한국오픈에 출전한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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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한장상과 아마추어 1위 신용남. 당시 아마추어도 상을 받았다.


KGA는 한국에서 출전한 골프대회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는 그의 정성을 특별하게 여겼다. 그리고는 한국오픈 주최사인 코오롱의 후원을 받아 그에게 복제품을 무상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루탄의 흥미로운 사연은 기자에게까지 전달되었고, 루탄은 48년 전의 기억 한 자락을 찾아서 자신의 골프 인생을 회고하는 글을 보내주었다. 1969년 한국오픈은 6월5일부터 8일까지 지금의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있던 서울 컨트리클럽에서 열렸다.

‘나의 1960년대 골프를 회고해서 보냅니다. 당시 한국에서의 대회는 트로피를 받았던 좋은 기억 외에는 많은 것들이 가물가물할 따름입니다. 이후 골프는 내 삶에 중요한 의미여서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골프채(당시에는 감나무로 만든 퍼시먼 드라이버를 만들었는데) 회사도 운영했지요. 1993년에는 독일의 베른하르드 랑어가 우리 회사의 텍산(Texan) 드라이버를 들고 나가 마스터스를 우승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1969년의 한국 골프는 지금처럼 그렇게 폭발적이지 않았죠. 오늘날 한국 골프 선수들은 세계적이지만요. 이제 내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매일 나와 같은 늙은이는 주변 사람들 누구에게나 골프를 치고, 사람을 사귀고, 인생을 즐기라고 얘기합니다. 골프가 아니었다면 나는 현재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니까요.

척 루탄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11살에 모친으로부터 골프를 배웠다. 고등학교 때는 노던캘리포니아 고교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치코에 있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서 4년간 선수로 활동했다. 1963년에는 미대학골프(NCAA) 디비젼2에서 단체 준우승을 했다. 1966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페블비치에서 열린 캘리포니아주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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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루탄이 최근 미국 PGA투어 선수 브렌트 스네데커와 라운드 후 찍은 기념 사진.


그해 여름 대회를 마친 루탄은 군에 입대했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1967년에는 오빌 무디가 근무하던 후드TX에 배속되었다. 무디는 한국오픈 2,3회와 2회 KPGA선수권에서 우승한 실력자 골퍼였다. 무디와의 실전 라운드는 한 번 해봤다. ‘재미삼아 콜라병 위에 볼을 올려놓고는 그걸 칠 정도로 파워풀 했다’고 기억한다.

1968년에 중위 계급을 단 루탄은 미8군 사령부로 근무처를 옮겼고, G2 용산기지에 소속되었다. 당시 용산에는 미8군을 위한 골프장(현재의 용산 가족공원 부지)이 있었는데 루탄은 거기서 코스 레코드 63타를 깨더니만 이듬해 1969년에 한국오픈에도 출전했다. 그 대회는 사영욱이 2언더파로 우승했다.

군복무를 마친 루탄은 본국으로 돌아가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변호사로 지내면서 지역 골프대회에 출전하곤 했다. 1980년대 후반에 펌프킨리지GC의 공동 운영자로 참여했다. 거기서 타이거 우즈는 아마추어골프대회를 3번 연속 우승했다. 1993년에는 우즈가 USGA주니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웨이블리CC에서 운영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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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경 NFL 축구 선수들과 함께 페블비치에서 라운드 한 루탄(맨 오른쪽).


지금 루탄은 테네시주 네시빌에 살고 있으며 테네시골프재단의 위원으로 있다. 한국오픈에 출전해서 트로피를 받은 것이 그의 골프 인생에서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금도 건강이 좋아 테네시주골프재단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를 위한 퍼스트티 재단과 장애인들을 위한 골프 교육 재단에서 봉사하고 있다.

이상은 루탄이 적어 보내온 그의 골프 인생 이야기다. 그의 인생에서 한국오픈은 인생의 황금시절에 참여했던 타국에서의 황홀한 추억이기도 했다. 6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오픈은 세월의 반경이 큰 만큼 이역만리 미국의 한 골퍼의 인생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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