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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정의 장체야 놀자] ‘빙판위의 메시’ - 아이스슬레이지하키 국가대표 정승환

지난 24일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던 아이스슬레이지하키(이하 아이스 하키) 선수이자, 평창동계패럴림픽 홍보대사인 일명 ‘빙메(빙상위의 메시)’ 정승환(31)이 문자를 한 통 보내왔다. ‘27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아이스하키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방금 병원 진료를 받았는데 귀에 염증이 생겨 수술을 해야 한다네요. 장시간의 비행과 이탈리아 대회 참가, 2018년 평창동계패럴림픽 이벤트 대회인 강릉세계선수권까지 일정이 있어 수술을 미루어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면 귀에 염증 문제가 심각해지겠지만 잘 참아봐야죠. 선수생활 13년 동안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생긴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부상을 애써 담담하게 전했다.

아이스슬레이지하키? 생소하게 느낄 분들이 많을 것이다. 비장애인이 하는 아이스하키도 비인기종목으로 대중의 관심이 적은데, 장애인종목은 말할 필요가 없다.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정식종목이기도 한 아이스슬레이지하키(Ice Sledge Hockey)는 하반신 장애인이나 발목이하 장애가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아이스하키를 변형한 경기다. 선수들은 대부분 일반 아이스하키의 보호 장비를 사용하며, 스케이트를 대신하여 양날이 달린 썰매를 사용한다. 썰매의 높이는 양날 사이로 퍽(puck)이 통과할 수 있는 높이로 제작되어야 하며, 스틱의 한쪽 끝에는 썰매의 추진을 위한 픽(pick)이, 다른 한쪽에는 퍽을 칠 수 있는 블레이드(blade)가 달린 폴(poles)이 각각 달려있다.

썰매하키는 일반 아이스하키경기처럼 각 팀은 골키퍼 이외에 5명의 선수가 경기를 한다. 아이스하키처럼 매우 격렬하고 스피드하지만, 노르웨이를 비롯한 여러 나라 대표팀에는 여자선수도 포함돼 있다. 패럴림픽 경우, 썰매하키는 1994년 대회때 처음 선을 보였고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수준급 경기를 펼친다. 아울러 대중에게 인기와 재미를 더해주는 경기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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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 동계패럴림픽에서 미국의 니코로만과 접전을 펼치고 있는 정승환(왼쪽).


나는 정승환이다

정승환은 5살 때, 집 앞 상수도관 공사현장 파이프에 깔려 우측무릎 이하를 절단하는 사고를 겪었다. 어린 시절 시골 섬에 살면서 대학교 입학 전까지 장애인 스포츠를 알지 못했다. 한국복지대학교에 입학(2004년)하면서 사회생활에 나섰다. 정승환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이종경, 장종호 하키선수를 만나 ‘파라아이스하키(2006년 창단)’ 팀을 알게 됐다. 주말마다 취미로 하키를 시작했고 그 인연으로 대학교 졸업 후 강원도청 소속인 파라아이스하키팀에 들어갔다.

“장애인이란 걸 인정하거나 들어내고 싶지 않았던 내가, 이제는 당당히 파라아이스하키 선수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른 장애인들에게 권유까지 하게 되었어요. 운동 후 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죠. 스스로 자신감을 찾을 수 있고, 더 이상 장애를 비관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정승환은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의 2남 1녀 중 막내이다. 가족은 늘 정승환을 믿어주는 든든한 후원자이다. 어머니는 그가 처음 운동을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승환이가 다치지 않고 경기를 잘 끝내길 바랍니다.” 다칠까봐 매일 기도를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막내아들 자랑에 바쁘다. 그래서 정승환은 더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산다. ‘부끄럽지 않게 살자’라는 철학으로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며 팀과 주변을 위해 노력하는 썰매하키의 히어로다.

“제 꿈은 평창 동계패럴림픽의 금메달이었지요.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네요. 하키를 배우던 시절 캐나다팀의 동영상을 보며 따라하고 지금도 캐나다 팀플레이를 좋아해요. 아직까지 한국이 이겨보지 못한 팀은 미국과 캐나다 두 팀입니다. 이 팀들을 라이벌로 생각하며 후배들에게 기술을 지도하고 국제 경험을 바탕으로 즐겁게 하키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어요. 평창에서 두 나라를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승환은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클수록 즐기려는 마음을 갖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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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일본전지 훈련 중 강원g1 다큐방송이 정승환(오른쪽)을 인터뷰하고 있다.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홍보대사


아직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과 평창동계패럴림픽이 동반으로 열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있다. 동계패럴림픽은 설상과 빙상으로 나뉜다. 설상은 장애인 알파인스키, 장애인 바이애슬론,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장애인 스노보드로 구성돼 있다. 빙상에서 열리는 장애인 아이스하키(썰매하키)와 휠체어컬링을 더하면 총 6개 종목이다. 썰매하키는 과거 비장애인들도 썰매를 타면 경기 참여가 가능했다. 그러나 썰매의 특성상 다리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종목으로 성장했고, 동계패럴림픽 경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 되었다.

한국 썰매하키 팀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2008년 IPC 월드챔피언십 B-pool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후 2009년 패럴림픽 윈터 월드컵 우승, 2010년 밴쿠버 장애인동계올림픽 최종예선 3전 전승의 호성적을 냈다. 2012년 IPC 월드챔피언십 A-pool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 동계패럴림픽에서는 아쉽게 이탈리아에 패해 4강 진출에 탈락했다.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는 첫 메달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승환은 2009년 체코 세계선수권(A-pool), 2012년 노르웨이 세계선수권(A-pool), 2015년 스웨덴 세계선수권(B-pool)에서 공격수 최우수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는 “키가 작고 드리블을 많이 하는 포지션이라서 더 날렵하게 공격을 할 수 있었어요. 국가대표로서 부끄럽지 않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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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환이 평창조직위에서 보내온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개인 SNS에 올리기 위한 사진이다.


팀의 승리를 위해


선수활동을 하면서 모두가 슬럼프를 겪는다. 정승환도 예외는 아니다. 시합을 앞두고 어떻게 운동하느냐에 따라, 코칭스텝의 변화에 팀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정승환은 동료와 함께 해결책을 찾는다. 그에게 팀은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며 기다려주고 도와주는 존재다. 썰매하키는 단체경기로 개인플레이가 아무리 뛰어나도 팀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없다.


국가대표 훈련은 합숙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승환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 규칙적인 합숙은 힘이 든다. 정승환은 “너무 오래 붙어있다 보면 훈련보다 힘든 건 사람과 사람이죠. 최대한 서로 이해해주고 노력해요. 휴식은 각자 좋아하는 것을 해요. 팀에서도 서로의 자유가 필요하죠”라며 공동체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르웨이 세계선수권(2012년) 대회 2주 전 왼쪽 손가락이 부러져 참가하지 못할 상황이었어요. 감독님이 1주일 정도 지켜보더니 저의 간절한 눈빛을 보셨는지 ‘하키 하고 싶지 않냐?’며 대회 참가를 배려해주었죠. 스틱을 잡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지만 아픈 내색 없이 꾹 참고 끝까지 경기를 뛰었던 기억이 나네요. 덕분에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요.” 당연히 이 대회는 정승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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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아이스슬레이지하키 일본 나가노컵에서 금메달을 따낸 한국팀.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정승환이다.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는 썰매하키의 ‘주목할 선수(ONES TO WATCH) 10인’에 정승환을 꼽았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정승환은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장애인이 체육을 하는 모습을 동정으로 바라보지 않고 체육인으로 응원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으면서 국제적으로 우수한 기량을 선수들이 참 많다. 평창 동계패럴림픽을 앞두고, 오는 3, 4월에는 패럴림픽 테스트 이벤트 경기가 줄지어 열린다. 기회가 되면 꼭 관람하기를 권한다. 그것이 평창 동계패럴림픽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되는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헤럴드스포츠=곽수정 객원기자 nicecandi@naver.com]

*'장체야 놀자'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칼럼을 지향합니다. 곽수정 씨는 성남시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언론정보 석사학위를 받은 장애인스포츠 전문가입니다. 장애인스포츠와 관련된 제보를 기다립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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