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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전드 오브 풋볼] 질식수비로 세계축구를 평정한 2006 월드컵의 이탈리아 수비 3인방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김유미 기자]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축구를 떠받치는 힘은 탄탄한 수비 조직력, 즉 ‘카테나치오’로 불리는 빗장수비다. 그리고 특유의 승리주의와 1-0 축구는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주리 군단은 총 4번의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1934년 자국 대회과 1938년 프랑스 대회를 연달아 제패한 뒤, 1982년 스페인에서 3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후 16강에서 고배를 마셨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제외하면 모두 본선 8강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우승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런 이탈리아를 다시 세계 최강으로 만든 건 유벤투스 지휘봉을 내려놓고 대표팀에 부임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었다. 유벤투스 외에도 인터밀란, 나폴리 등 이탈리아의 여러 팀을 이끌었던 리피 감독은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월드컵에 출전했고, 마침내 고국에 네 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안겼다. 공수에서 두루 강했던 이탈리아는 독일에 이어 득점 2위를 기록했고, 조별예선부터 결승까지 총 7경기에서 단 2실점만을 허용했다. 이번 레전드 오브 풋볼에서는 질식수비를 선보였던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수비진 3인방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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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노장이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잔루이지 부폰은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골키퍼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 [사진=UEFA 홈페이지]


잔루이지 부폰 - 명실상부 최고의 골키퍼

언제까지고 아주리 군단의 골문을 지킬 것만 같은 남자, 잔루이지 부폰이 첫 번째 주인공이다. 2006년, 국가대표 데뷔 10년차 부폰의 A매치 출장 기록은 70경기를 향하고 있었다. 소속팀 유벤투스에서 본인의 프로 커리어 11번째 시즌을 막 마친 시기이기도 했다. 그의 나이 20대 후반. 축구선수로서 황금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7승 2무 1패로 순조로운 출발을 알린 이탈리아는 월드컵 본선에서 가나, 미국, 체코와 함께 ‘죽음의 조’로 불린 E조에 편성됐다. 예선 첫 경기에서는 가나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뒀다. 미국과의 맞대결에서는 크리스티안 자카르도의 자책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수비진의 활약은 높이 살 만했다. 체코와의 조별예선 마지막 라운드는 잔루이지 부폰과 페트르 체흐라는 정상급 수문장들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이 경기에서 체코는 득점을 올리지 못했고, 이탈리아는 마르코 마테라치, 필리포 인자기의 득점으로 2-0 완승을 거두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 상대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였다. 당시 좋은 스쿼드를 보유했던 호주를 상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호주 역시 수비적인 스타일을 구사했고, 이탈리아는 후반 추가 시간 파비오 그로소가 얻은 극적인 페널티킥을 프란체스코 토티가 성공시켜 8강에 진출했다. 이 경기에서 부폰은 MOM에 선정되기도 했다. 8강에서는 안드리 셰브첸코의 우크라이나를 만났다. 셰브첸코의 슈팅이 번번이 부폰에게 막힌 반면 이탈리아는 선전했다. 전반 6분 만에 잔루카 잠브로타가 선제골을 뽑아냈고, 루카 토니의 멀티골로 3-0으로 완승했다.

4강에서는 숙적이자 개최국인 독일과 맞붙었다. 당시 독일에는 루카스 포돌스키, 미하엘 발락, 미로슬라프 클로제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수비를 앞에 둔 독일의 공격은 속수무책이었다.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그로소와 안데산드로 델 피에로가 연장 후반 종료를 코앞에 두고 2점을 추가해 경기는 이탈리아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스코어 2-0. 부폰의 대회 다섯 번째 클린시트였다.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는 프랑스를 만났다. 프랑스에는 티에리 앙리, 지네딘 지단, 프랑크 리베리 등 세계적인 공격진이 있었다. 선제골은 프랑스의 차지였다. 전반 7분 지단이 페널티골을 성공시키며 앞서갔다. 이탈리아는 전반 19분 마테라치의 동점골로 균형을 맞췄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부폰은 지단의 결정적인 헤더 슈팅을 선방하면서 경기를 승부차기로 이끌었다. 이탈리아는 5명의 키커가 모두 페널티슛을 성공한 반면, 프랑스에서는 실축 1개가 나왔다.

7경기에서 2실점을 기록한 부폰은 미국과의 조별예선에서 내준 자책골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 골만을 허용한 셈이다. 5번의 클린시트, 40번의 세이브, 경기 평균 0.3 실점을 넘지 않는 높은 선방률을 기록한 그는 야신상을 거머쥐었다. FIFA에서 선정한 베스트 11에 선정됨은 물론이고, 골키퍼로는 드물게 발롱도르 2위에 올랐다.

부폰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 1라운드에 입은 부상으로 일찍 대회를 마감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유로 2008, 2012, 2016까지 모두 나서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특히 유로 2012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그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목표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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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루카 잠브로타는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이탈리아의 측면을 지배했다. [사진=UEFA 홈페이지]


잔루카 잠브로타 - 만능의 측면 지배자

두 번째 주인공은 풀백으로 활약한 잔루카 잠브로타다. 이탈리아 코모 출신의 잠브로타는 세리에B의 코모에서 데뷔했다. 팀이 3부 리그로 강등당한 2년차부터 출전 기회를 잡기 시작했고 96-97시즌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다. 코모에서 세 시즌을 보낸 뒤 바리로 이적해 더욱 주가를 올렸고, 두 시즌 뒤 곧바로 이탈리아 최고 클럽인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수비수였지만 공격적인 플레이와 러닝 크로스 능력을 갖춘 잠브로타는 유벤투스에서 기량을 꽃피웠다. 유벤투스에는 훗날 대표 팀에서도 호흡을 맞추게 되는 릴리앙 튀랑이라는 단짝을 만나 최강의 풀백 라인을 이뤘다. 이들은 2001년 부임한 리피 감독과 함께 01-02, 02-03시즌 유벤투스의 두 시즌 연속 세리에A 우승을 이끌었다. 잠브로타는 유벤투스에 7시즌을 몸담았고 00-01시즌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컵대회 포함 40경기 이상을 소화했다. 또 변화하는 팀 사정에 맞추어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A매치 데뷔는 1999년이었다. 유로 2000을 시작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주요 메이저 대회에 모두 출전해 A매치 통산 98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유로 2000에서는 네덜란드와의 4강에서 전반 34분 만에 퇴장을 당하면서 팀에 위기를 안기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카테나치오의 든든한 일원으로 활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그로소와 함께 양쪽 풀백을 맡아 우승을 견인했고, 8강 우크라이나 전에서는 선제골을 터트리는 활약으로 경기 MOM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벤투스와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독일 월드컵 직후 칼치오폴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팀 전체가 위기를 맞았다. 선수단의 높은 연봉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유벤투스는 주전들을 속속 내보냈고 잠브로타도 여기에 속했다. 당시 레알마드리드, 첼시, AC밀란 등 빅클럽들의 이적 제의가 있었고 잠브로타는 팀 동료 튀랑과 함께 06-07시즌 바르셀로나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이며 점차 하락세를 탔다. 07-08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났는데, 당시 맨투맨 마크 상대였던 박지성에게 크게 흔들리면서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여기에 가정사 등의 이유로 스페인에서 두 시즌을 보낸 뒤 다시 고국팀인 AC밀란으로 돌아갔다.

AC밀란에서는 네 시즌을 보냈다. 처음 두 시즌은 무난한 활약을 펼쳤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주전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13-14시즌에는 스위스 리그의 키아소로 이적했고 2014년 5월 은퇴를 발표했다. 곧바로 키아소의 감독을 맡았지만 1년 만에 경질 당했다. 지난 해 6월에는 인도 슈퍼리그 델리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2006년 월드컵 우승 당시 대표 팀 동료였던 시모네 바로네와 함께 팀을 지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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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아주리 군단의 캡틴으로 팀을 이끌었던 파비오 칸나바로. [사진=UEFA 홈페이지]


파비오 칸나바로 - 부동의 센터백, 베를린의 장벽

마지막 주인공은 이 시대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며 수비수 유일의 발롱도르 수상자인 파비오 칸나바로다. 칸나바로는 나폴리에서 데뷔했고, 매 경기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95-96 시즌 나폴리에서 세리에A 7공주 중 한 팀인 파르마로 이적해 튀랑과 센터백으로 호흡을 맞추며 98-99시즌 코파 이탈리아와 UEFA컵 우승을 견인했다. 뚫기 힘든 수비진을 갖췄던 이때 파르마의 골키퍼는 바로 부폰이었다.

파르마에서 6시즌을 보낸 칸나바로는 02-03시즌 인터밀란으로 이적했고, 04-05시즌에는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유벤투스에서도 칸나바로는 튀랑과 함께 뛰었고, 좌우 풀백으로는 조나단 제비나, 잠브로타, 골문에는 부폰이 있었다.

2002년 아주리 군단의 캡틴이 된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주장 완장을 달고,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동료들과 우승을 차지했다. 독일과의 4강전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베를린의 장벽’이라는 별명을 낳기도 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칸나바로는 2006년 수비수로는 유일무이하게 발롱도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때 발롱도르 2위가 부폰, 3위가 앙리였다.

월드컵 직후 터진 칼치오폴리 사건(이탈리아 축구조작사건)으로 칸나바로는 레알마드리드로 팀을 옮긴다. 세 시즌을 뛰었는데 이전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09-10시즌 다시 유벤투스로 복귀했는데 한 차례 강등과 승격을 겪은 유벤투스의 성적은 중상위권 수준이었다. 칸나바로의 기량도 예전과는 달랐다. 결국 한 시즌 뒤 유벤투스를 떠났고 UAE의 알 아흘리, 인도의 실리구리 등을 거친 뒤 은퇴를 선언했다.

칸나바로는 현역에서 물러난 뒤 알 아흘리 수석 코치, 중국 슈퍼리그의 광저우 에버그란데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나스르 감독을 역임했다. 지난 해 여름에는 중국 2부 리그의 톈진 콴잔 사령탑을 맡았고 70% 넘는 승률을 거두며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다음 시즌에는 슈퍼리그에서 그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질식수비로 세계축구를 평정한 2006 독일 월드컵 이탈리아 수비진 3인방 대해서는 ‘축덕들이 만드는 팟캐스트 해축야화 49화’를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해축야화는 매주 금요일에 1부가, 토요일에 2부가 업로드 되며, 팟캐스트 어플 ‘팟빵’을 통해 들을 수 있다.

* 레전드 오브 풋볼은 축구 팟캐스트 ‘해축야화’의 한 코너입니다. 아래 URL을 클릭하면 바로 방송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0698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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