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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록의 월드 베스트 코스 기행 4] 워터빌, 불꽃 같은 선수와 고향 같은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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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을 따라 흐르는 워터빌 16번 홀.


위대한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과 전설 같은 삶을 살다 간 골프 선수 페인 스튜어트, 그리고 1968년 코스 재개장을 이끈 존 머카시의 자취와 열정과 추억이 얽힌 고향같은 링크스가 워터빌(Waterville)이다.

워터빌골프링크스는 아일랜드 킬라니(Killarney)에 있는 케리(Kerry)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접근성이 용이하지 못해 항상 헬기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는 골프장이다.

실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골프장 투어는 헬기가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자연 그대로의 입지 조건에서 골프장을 만들어 좋은 입지의 바닷가 골프장은 시내에서 다소 멀고, 또 인구가 적어 굳이 넓은 길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동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위도가 높은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는 여름에 서머 타임을 적용하기 때문에 저녁 9시 반까지 라운드가 가능하다. 북쪽의 인버네스 호수까지 간다면 10시에도 티오프할 수 있다. 하루에 3라운드도 충분한 시간이다. 상대적으로 휴가가 짧은 한국의 골프 여행객에겐 이동 수단으로 헬기 사용도 좋다. 현지에서는 소형 제트기 등을 이용한 많은 ‘골프 헬기’를 운영하고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하늘에서 골프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것도 감동이며 큰 장점이다.

케리 공항에서 워터빌로 가려면 유명한 킬라니국립공원을 지나야 한다.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 바다, 호수 등 아름다운 경관으로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 인구 밀도가 낮아 드문드문 집이 있을 뿐, 그저 자연 속에 간직된 때 묻지 않은 경치가 여유로 가득하다. 골프장이 있는 동네가 유명한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과 그 가족이 가장 좋아했던 휴양지였다. 마을 중심에 그의 조각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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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빌의 상징적인 캡틴 페인 스튜어트 동상.


채플린, 머카시, 페인 스튜어트의 자취
골프가 아일랜드에 퍼지는데 영국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은, 영국 수비대가 가는 곳에는 빠짐없이 골프장이 생겼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워터빌은 1880년대 대서양 횡단 케이블을 설치하러 온 영국 기술자와 노동자에 의해 탄생했다. 1950년대 발달된 통신 기술과 장비가 나오고 그곳에 더 이상 기술자가 머물지 않게 되자 이용객이 줄면서 골프장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그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을 발견하고 땅을 매입해 세계적인 명품 골프장으로 만들 결심을 한 것은 아일랜드 태생의 미국인 존 머카시(John A. Mulcahy)였다. 1968년의 일이었다.

머카시는 당시 아일랜드 최고의 링크스 코스 골프 설계가였던 에디 하켓(Eddie Hackett)과 마스터즈 우승자 클로드 하먼(Claude Harmon)에게 코스 설계를 의뢰했고, 5년이 지난 73년 현재의 클럽하우스와 함께 완공해 개장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그의 흉상이 클럽하우스 안에 있고, 존의 유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유골도 이곳에 묻혀 있다.

워터빌은 87년에 다시 아일랜드계 미국인에게 매각됐고, 2003년 미국 파인밸리(Pine Valley)를 리노베이션한 톰 파지오(Tom Fazio)에 의해 현대적으로 개조되었다. 파지오는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스로 워터빌, 파인밸리, 그리고 오거스타내셔널을 꼽았다. 누군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혼자서 아주 조용한 시간이 필요할 때 워터빌에 있을 것’이라 말할 것이다.

워터빌은 유명한 대회를 유치한 기록은 없다. 대회 유치의 필수 조건인 갤러리 공간과 숙박 시설 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스의 선수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98년 브리티시오픈 일주일 전에 타이거 우즈, 어니 엘스, 페인 스튜어트와 짐 퓨릭이 한 조를 만들어 연습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중 페인 스튜어트는 US오픈 챔피언이 된 후 워터빌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았다. 특히 그는 펍(Pub)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도 부르고 하프를 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카운터로 들어가 주문을 받고 서빙도 했었다. 그의 캐디가 ‘주문을 받았으면 돈을 받아야지’하고 외쳤더니 ‘모두 내가 쏜다’고 했다니 얼마나 즐거운 한 때였을지 짐작이 간다.

워터빌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워터빌의 시장이 되고 싶다’던 페인 스튜어트는 ‘시장보다 워터빌 골프장의 캡틴이 더 대단하니 그걸 하라’는 제안을 수락해 워터빌의 명예 캡틴이 됐다. 하지만 갑작스런 비행기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러자 골프장은 클럽하우스 앞에 실제 크기의 동상을 마련해 그를 추억했다. 스튜어트가 워터빌을 좋아했던 이유는 아마도 이곳이 그가 태어나고 자란 미주리주의 스프링필드와 흡사한 분위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인 스프링필드도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훌륭한 낚시터가 많고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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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 홀 그린 뒤로는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삼각주 모래가 자연스레 빚은 코스
워터빌은 클럽챔피언의 이름을 올려놓은 화려한 보드는 없어도 클럽하우스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얘기를 숨기고 있는 듯하다. 코스 입구로 들어설 때는 탄성이 쏟아지지는 않지만 넓게 펼쳐진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 암갈색 모래가 태고부터 강을 타고 내려와 삼각주가 되고 해풍이 모래를 날려 언덕이 되고, 그래서 마치 세찬 바람이라도 불어 파도가 넘치면 그 모래가 사라질 듯 위태롭기까지 하다. 산에서부터 이어온 흑갈색 모래는 엄마 품같은 따뜻함을 준다.

강 너머 멀리 보이는 산 사이로 드문드문 박혀 있는 집들이 정겹다. 굴뚝에서 간혹 하얀 연기가 피어나기도 한다. 저녁이 되어 서쪽 바다로부터 노을이라도 번지는 날이면 피어 오른 연기가 마치 시인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시를 연상시킨다.

‘남도 삼백리, 타는 저녁 노을, 번지는 연기 그리고 술 익는 마을….’ 바다와 강이 만나는 삼각주에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온 모래가 쌓여 언덕이 되고, 그 모래언덕 위를 링크스에 자라는 잔디가 채워져 코스가 만들어졌다. 자연과의 동화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다. 그리고 멀리 강물이 흘러 들어오는 곳에서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이 누워 있으니, 마치 오래 전 내가 이곳에 있었던 것 같던 친근감으로 가득하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에 석탄 성분이라도 있는지 바다와 강이 만나는 백사장은 회색을 띤 짙은 암갈색이다.

라운드를 시작하는 1번 홀의 이름이 ‘라스트 이지(Last Easy)’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어렵기에 그런 표현을 썼을까’ 생각하니 라운드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다지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4 홀 중 하나에 넣어도 아까움이 없다’고 꼽고 싶은 417야드 3번 홀은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 있다. 썰물로 인해 백사장 아니, 흑갈색 모랫바닥이 옅은 물길을 남기고 속살을 드러낸다. 그린은 우측 약간 도그레그이고 그 옅은 강의 암갈색 백사장은 인간이 밟지 않은 미지의 세계인 듯 청정함을 간직했다. 얕게 흐르는 강물도 모래 색깔과 동화되어 암갈색을 띈다. 그린을 나오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강과 산으로 이어진 파노라마를 다시 본다. 입대를 위해 고향집과 마을을 두고 떠나는 느낌이다.

4번 홀(파3 162야드)을 홀아웃 하면서 그린 오른쪽 강물과 나란하게 암갈색으로 변한 백사장을 보면 가슴이 시릴 정도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강 너머 언덕 마을에 펼쳐진 군데군데 가옥들은 소들의 느린 몸짓과 함께 세상의 모든 걱정을 털어버릴 것 같은 평온한 안식처로 바뀐다. 물론 라운드 하는 날씨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겠지만, 여느 링크스가 가지는 터프함보다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골프장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북동쪽 산허리에 퍼져있는 집들로부터 퍼져나오는 굴뚝 연기가 자꾸 고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아마도 페인 스튜어트는 이런 엄마 품 같은 워터빌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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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를 딴 머카시의 피크라 불리는 17번 홀.


산, 강, 바다가 주는 파노라마
워터빌이 자랑하는 곳은 16~18번의 대서양과 연결된 백사장을 타고 들어오는 마지막 3홀이다. 우선, 16번 홀에서는 반드시 챔피언 티에 올라가 전체를 살펴봐야 한다. 항아리 벙커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티 박스를 보고 거꾸로 쳐낸 아픔, 퍼팅이 경사를 타고 그린 밖으로 굴러 나간 고통, 스코어카드를 보며 찡그린 인상, 깊은 러프를 전전하며 발목까지 차오른 물기가 주는 불쾌감이 한 방에 사라지는 곳이 바로 이홀 티 박스다. 유유히 흘러 내려온 강물이 저 멀리 대서양의 푸른 바닷물과 만나 포말이 되어 하나 되는 곳, 그리고 홀을 따라 펼쳐진 백사장이 더없이 상쾌한 넓은 마음을 갖게 한다.

17번(파3 194야드) 홀의 이름은 ‘머카시스 픽(Mulcahy’s Peak)’이다. 추측컨대 골프장을 재건했던 머카시가 가장 좋아했던 홀이었을 것 같다. 그의 유골은 여기에 묻혀 있다. 이 홀도 챔피언 티에 올라가 전체를 조망해보시라. 티 박스와 그린 사이 깊은 언덕 수렁으로 이어진 러프가 심리적으로 부담을 준다. 바다로부터 부는 바람은 더 큰 부담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홀이다. 엘리베이티드 그린 좌측으로 흐르는 그라스 벙커에 볼이 빨려 들어갈 수 있는데, 그곳에서 로프트가 큰 클럽으로 띄우려 하다가 뒤땅을 내기 십상이다.

자신감이 필요한 18번(파5, 594야드) 홀은 우측으로 볼이 휘어지지 않도록 심지를 굳게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마냥 좌측을 노릴 수도 없다. 좌측은 깊은 러프로 이어지고 그 러프 아래 페어웨이와 맞닿은 곳에 깊은 벙커가 2개 있는데, 아마도 OB를 염려해 좌측을 노리는 비겁한 골퍼를 응징하려는 디자이너의 장난 같다. 그러니 넉넉하게 3온을 권한다. 워낙 거리가 길고 그린 주위에 마지막 승부 홀답게 숨은 벙커도 많다. 특히 그린 좌측으로 흐르는 곳에 빗물을 모으듯 볼을 모으는 벙커가 2개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라운드를 끝내면 긴 여운이 남는다. 보기 드물게 산, 강, 바다가 겹쳐지는 파노라마가 주는 감동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아마도 그 인상은 아주 깊은 곳에 간직될 것 같다. 라운드를 마치고 페인 스튜어트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가 찾았던 추억의 펍으로 달려가 아일랜드의 자랑인 기네스를 마시면서 나도 역시 카운터로 뛰어가 ‘워터빌의 시장이 되겠다’라고 외치면 반응이 어떨까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워터빌을 사랑하는 마음은 페인 스튜어트 못지 않은데…’ 생각하고는 마을 한가운데 서 있다는 찰리 채플린 동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문의 : www.watervillegolfclub.ie ++353 (0) 669 474 102
위치 : 아일랜드 워터빌카운티 킬라니 케리, 케리공항에서 80킬로미터, 1시간 20분 소요.
규모 : 18홀(파73, 7311야드), 1889년 개장. 2003년 리모델링
설계 : 클로드 하먼, 에디 하켓, 톰 파지오
특징 : 캐디, 카트 가능. 미국 제외 세계 100대 코스 23위

글을 쓴 김상록 씨는 전 세계 수많은 베스트 코스를 라운드 한 구력 26년 핸디캡 6인 골퍼다. 영국과 싱가포르를 번갈아 거주하는 김 씨는 쿠알라룸푸르 트로피카나 회원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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