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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최고의 뉴스메이커 아놀드 파머가 골프사에 남긴 족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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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에서 연설하던 아놀드 파머.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올해 골프계에 가장 큰 뉴스를 가져온 인물은 살아있는 선수가 아니라 지난 9월26일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아놀드 파머였다.

미국의 케이블 방송인 <골프채널>은 지난주 '올해의 뉴스메이커 톱10'을 발표하면서 아놀드 파머를 가장 앞에 놓았다. 이 매체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골퍼이자 골프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다’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뉴스메이커 2위에는 리우 올림픽, 3위에 도널드 트럼프, 4위 조던 스피스, 9위는 타이거 우즈였다. 미래의 권력인 대통령보다, 골프황제보다 높은 뉴스가치를 지닌 인물이 파머였다.

파머가 현대 골프에 남긴 족적은 크고 방대하다. 가장 먼저 꼽히는 건 선수 매니지먼트를 사업으로 만든 일이다. 파머 이전까지 선수와 팬과 대회와 업체는 별도였다. 하지만 파머로 인해 선수를 활용하면 스포츠도 돈이 된다는 게 증명됐다. 변호사인 마크 맥코맥이 그의 스타성을 포착했다. 맥코맥은 스포츠마케팅 회사 IMG를 설립하고 파머를 인간적이고 믿음직한 이웃 남자 이미지로 구축해냈다. 이후 파머는 캐딜락, 롤렉스 등 광고에 단골 출연했다. 아이스티와 레모네이드를 섞은 음료수 ‘아놀드 파머’는 연 3억 캔 이상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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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에서 아놀드 파머 4승, 게리 플레이어 3승, 잭 니클라우스 6승을 했으나 마스터스와 관련된 일화는 파머가 많다.


마스터스에서 11번부터 13번 홀까지 3개 홀은 ‘아멘(Amen) 코너’로 불린다. 파머는 1958년에 마스터스에서 첫승을 거두면서 이 말을 탄생시켰다. 3라운드 이후 비가 내려 코스는 질척거렸고, 경기위원회는 볼이 땅에 박히면 무벌타 드롭을 허용했다. 파머가 파3 12번 홀에서 한 샷이 그린 위 언덕의 흙에 박혔지만 그 상황을 모른 파머는 벌타를 더해 5타를 적어야 했다. 선두에 한 타 차로 추격하는 상황에서 파머는 13번 홀에서 이글을 잡아낸다. 15번 홀에 이르렀을 때 그가 했던 드롭이 무벌타로 인정받자 파머는 부지불식간에 “아멘”을 외쳤다. 이후로 세 개 홀이 아멘 코너가 기사로 소개되었다.

파머의 팬클럽인 ‘아니의 군대(Arnie's Army)’도 마스터스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대회 흥행을 위해 골프장은 주변 군부대 군인에게는 제복만 입으면 공짜로 입장시켰다. TV에 갤러리가 많은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공짜로 대회장에 들어온 군인들은 골프를 잘 몰랐다. 그래서 가장 잘하는 선수를 따라다닌 것이 디펜딩 챔피언인 파머였다. 그는 58년 우승을 시작으로 마스터스에서 2년 간격으로 64년까지 4번 우승했고, 경기를 따라다니는 군인은 매년 늘어났다. 나중에는 일반 갤러리도 그의 경기를 따르는 추종자가 되면서 아니의 군대로 발전했다.

1860년에 시작된 디오픈 역시 아놀드 파머에 의해 부흥할 수 있었다. 1960년 디오픈 101주년을 맞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열린 대회에 파머가 출전한 게 계기다. 파머는 그해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연달아 우승하면서 남아있는 메이저를 정복할 목표로 죽어있던 디오픈을 찾은 것이었다. 그때까지 영국과 아일랜드만의 지역 대회이던 디오픈은 파머가 출전하자 메이저로 관심을 받았다. 파머는 그해 한 타 차이로 우승을 내주었지만 이듬해 2년 연속 우승하면서 디오픈 우승컵 클라렛저그를 들어올렸다.

파머의 메이저 우승은 총 7번이다. 55년 캐나다오픈에서 PGA투어 첫 승을 거둔 이래 파머는 20년 동안 꾸준히 승전보를 들려주었는데, 극적인 우승일 때가 많았다. 심지어 패했을 때조차 아슬아슬해서 그의 경기는 항상 관심거리였다. 우승이 없는 메이저인 PGA챔피언십도 64, 68, 70년에 2위만 세 번을 했다. US오픈 우승은 한 번이지만 연장전에서 세 번이나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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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파머는 올랜도에 만든 자신의 골프장 베이힐에서 아놀드파머인비테이셔널을 매년 개최했다.


파머는 점잖빼던 골프를 변모시켰다. 파워와 과감함으로 대회장을 마치 스포츠 경기장으로 변모시켰다. 입에 담배를 물고, 셔츠자락은 삐져나오고, 장갑을 꽉 끼고, 바지를 추켜올려 성큼성큼 걷는 모습으로 별명은 ‘왕(the King)’이었다. 은퇴한 뒤로는 올랜도에 자신의 이름을 딴 PGA투어 아놀드파머인비테이셔널이 열리는 베이힐을 만들었고, 전 세계 25개국에 300곳 이상의 골프장을 만들었다. 파머는 어렸을 적의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던 꿈을 이뤄 55년간 2만시간 비행 기록까지 남겼다. 그가 말년에 살던 펜실베이니아 라트로브의 공항은 ‘아놀드 파머 리저널’ 공항이 되었다. 영웅은 죽어서 전 세계에 이름을 남겼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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