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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정의 장체야 놀자] 장애는 치료가 아닌 또 다른 인생의 시작 - 패럴림픽을 만든 의사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고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에 대해 전국 15개대학 의학도들은 지난 10월 3일 “고 백남기씨 사인은 외인사임이 명백하다”는 성명서를 냈다. 809명의 의학도들은 “장차 대한민국의 의료를 책임질 의학도들이 침묵한다면 환자와 양심을 외면하게끔 만든 권력의 칼날이 언젠가 저희를 향할 것이라며 서울대 의과대학 학생들과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은 같은 취지로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란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동문 365명은 ‘후배들의 부름에 응답합니다’라는 성명서에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해 사망했으며 외인사”라고 밝혔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의사의 사명감을 가지고 성명서를 낸 의료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의사는 환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또 의사의 신념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장애인스포츠에 꼭 알아야 하는 ‘패럴림픽의 아버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을 보면서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며 의사의 소신으로 패럴림픽을 만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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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809명이 낸 성명서. [사진=페이스북 서울대학교 성명서를 지지하는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생모임]



루드비히 구트만 박사

1899년 루드비히 구트만은 독일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탄광에서 척수 부상 환자들이 잘못된 치료로 숨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척수 장애 환자들은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어 피부에 욕창이 생기거나 소변 유도관 때문에 방광염이 생겨 내장 염증으로 숨지기 일수였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척수 부상 환자들이 조만간 숨질 것으로 판단하고 진정제를 놓는 것 외에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다. 욕창이 생겨도 척수 장애인들이 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의료진들이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25살(1944년) 의사가 된 루드비히 구트만 박사의 병원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환자들은 몇 달씩 침대에 누워 있기 일쑤였고, 살이 썩거나 오줌 냄새가 나는 환자들이 부지기수였다. 여전히 의료진들은 그들을 외면했다.

구트만 박사는 독일에서 유대인 출신 신경외과 의사로 활동하던 중 히틀러가 집권하게 되자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여기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많은 군인들이 죽고 다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구트만 박사는 영국 에일즈베리의 스토크 멘더빌 병원에 국립척수손상센터를 설립하고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에게 환자들을 밤에도 2시간마다 돌아 눕히도록 하고, 환자 자신들에게도 움직이고 상체 근육을 단련시키거나 운동하게 했다. 처음에는 간호사들은 물론, 환자들에게 반발과 원성을 샀다. 이때 구트만 박사는 휠체어를 탄 척수 장애 환자들이 병원 마당에서 지팡이를 거꾸로 들고 고무원반 치기 하는 것을 보고 환자들을 보고 깨달았다.

“아! 경기 정신이 남아 있구나. 스포츠와 접목해보자”

그래서 구트만 박사는 환자들에게 활쏘기, 창던지기 등 경기를 하게 했다. 그런 결과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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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트비히 구트만 박사(왼쪽). 오른쪽은 1948년 척수장애인 선수단과 함께 한 기념 촬영. 왼쪽에서 네 번째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구트만 박사. [사진=주한영국문화원]


스토크 멘더빌 경기대회

구트만 박사는 환자들이 단순히 운동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회를 만들었다. 1948년 척수장애인을 위한 경기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하였고, 1952년부터 국제척수장애인경기대회로 발전시켰다. 마침내 국제스토크맨드빌경기연맹(ISMGF)이 설립된 것이다. 이 대회는 7월 말에 스토크맨드빌 병원의 운동장에서 매년 개최하다, 4년마다 올림픽대회가 열리는 나라에서 개최할 것을 결정하였다. 따라서 스토크맨더빌 밖에서의 최초의 장애인올림픽이 로마에서 올림픽의 해인 1960년에 개최됐다. 23개국을 대표해 400명의 남녀장애인 선수들이 로마올림픽 스타디움에 모여 패럴림픽의 첫 획을 그었다. 이 대회는 이탈리아 대통령 영부인인 돈나칼라 그론키 여사가 개회를 선언하며 비장애인들에게 관심을 모았다.

당시 이 대회에 개인자격으로 참석한 로마 교황 요한바오로1세는 구트만 박사에게 "당신이야말로 장애인의 쿠베르탱(올림픽 창시자)입니다"라 며 감격어린 천사를 보냈다.

구트만 박사는 국제 장애인스포츠 조직의 국제스토크맨드빌경기연맹(척수장애)외에 나머지 장애영역(절단, 시각, 뇌성마비)을 국제장애우경기연맹(ISOD)으로 통합하여 1976년 토론토패럴림픽대회에는 절단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1980년 안헴패럴림픽대회에는 뇌성마비장애인을 참여시키는 등 패럴림픽을 모든 장애인들의 축제로 발전시켰다.

안경과 콧수염이 잘 어울리는 노신사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구트만 박사는 1980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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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트만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2016 리우 패럴림픽도 성공적으로 열렸다.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패럴림픽은 올림픽에 비해 여러 측면에서 많이 떨어진다. 하지만 티켓은 예상외로 많이 팔린다. 장애를 딛고 펼치는 스포츠 감동 드라마를 응원하기 위해 많은 세계인이 경기장을 찾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트만 박사는 첫 하반신 마비 환자의 만남에서 평생을 기억하며 장애인스포츠를 만들었다. 재활치료는 레크레이션과 스포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장기치료를 힘들어 하는 환자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스포츠의 재미를 가미한 것이다.

구트만 박사는 장애를 입은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고민하고 그들의 삶을 위해 노력했다. 장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변화를 만들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본능을 버리고 ‘함께 하는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도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없는지 주위를 살펴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헤럴드스포츠=곽수정 객원기자 nicecandi@naver.com]

*'장체야 놀자'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칼럼을 지향합니다. 곽수정 씨는 성남시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언론정보 석사학위를 받은 장애인스포츠 전문가입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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