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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겸의 MLB 클립] 더스티 베이커의 21번째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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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시절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


2013년 9월. 신시내티는 정규리그의 마지막 5경기를 모두 패했다. 막판까지 지구 우승을 꿈꿨던 그들은 와일드카드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어 심기일전하고 맞이한 와일드카드 단판승부에서도 그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피츠버그에 완패하고 말았다. 마지막 6경기를 내리 패한 신시내티의 시즌은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당시 팀을 이끌던 더스티 베이커(66) 감독의 모습도 더 이상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2년 뒤. 베이커는 워싱턴 감독으로 돌아왔다. 정규시즌 종료와 함께 맷 윌리암스 감독을 경질한 워싱턴 구단은 월드시리즈 종료 후 이틀 만에 베이커 감독을 선임하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감독 선임을 둘러싼 잡음을 없애고, 지난해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일찌감치 태세전환에 돌입한 것이었다.

베이커 감독은 통산 1,671승을 거두며 역대 최다승 감독 순위에서 17위에 올라있는 명장이다. 현역 감독 중에는 1,702승의 브루스 보치(샌프란시스코) 다음으로 2위에 해당한다. 통산 6번의 지구 우승과 7번의 포스트시즌을 일궈냈으며, 1993년 샌프란시스코 감독 당시 거둔 103승은 1958년 뉴욕에서의 연고지 이전 후 팀 프랜차이즈 한 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이다.

워싱턴의 당초 목표는 버드 블랙 전 샌디에이고 감독이었다. 하지만 계약 조건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협상은 결렬됐다. 지난해 6개의 디비전 중 가장 확실한 지구 우승 후보였음에도 추락을 거듭한 워싱턴으로선 당장의 성적이 중요했던 팀. 그런 의미에서 베이커는 블랙보다 워싱턴에 더욱 최적화된 인물로 평가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지난 과거가 입증한다. 199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감독직을 수행한 베이커는 103승을 거뒀다. 비록 1경기 차 뒤진 지구 2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전년도에 비해 31승이나 더 거둔 당시의 샌프란시스코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있어서도 손꼽히는 반전 시즌으로 기억되고 있다.

컵스에서의 첫 해인 2003년에는 팀을 5년 만에 첫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당시 내셔널리그 중부지구는 상대적으로 약체인 팀들이 모여 있던 지구. 하지만 전년도 67승에서 88승 팀으로 끌어올린 베이커 감독의 공을 간과할 순 없었다(물론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공’과 함께 마크 프라이어, 케리 우드의 혹사 논란이라는 ‘과’도 분명한 시간이었다).

세 번째 팀인 신시내티에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2008년 지휘봉을 잡은 당시의 신시내티는 긴 암흑기에 빠져있던 상황. 2001년부터 한 시즌도 5할 승률을 기록하지 못했으며, 마지막 포스트시즌 진출은 1995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빠르게 팀을 추스른 베이커는 3년 만인 2010시즌 팀을 지구 우승으로 이끌었고, 신시내티에서의 마지막 4년간 세 차례 팀을 가을 야구에 진출시켰다.

베이커 감독은 현재 워싱턴의 팀 상황에도 적절히 부합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베이커는 토니 라루사와 같은 치밀한 전략가는 결코 아니다. 대신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며, 팀 분위기를 하나로 어우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경기 전 본인이 직접 나서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2013시즌 신시내티에서 베이커 감독과 함께 한 추신수 역시 흑인 감독인 그와 동양인으로서의 고충에 대해 많은 교감을 나눴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지난해 워싱턴을 몰아닥친 부상 악령만 없다면 올해도 워싱턴의 전력은 지구 우승 후보로 놓기에 손색이 없다. 다만 지난 시즌 파펠본과 하퍼의 주먹다짐을 비롯해 워싱턴의 클럽하우스 분위기가 좋지 못했던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는 선수단 장악에 실패한 맷 윌리암스 감독의 경질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베이커는 선수단 관리에 정평이 나 있는 덕장이다. 팀 케미스트리.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항목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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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 감독은 워싱턴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 수 있을까


베이커에게도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역대 감독으로서 1,500승 이상을 거둔 21명 중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이는 진 마우치와 베이커까지 단 두 명뿐이다. 통산 포스트시즌 승률 역시 .458에 불과해 정규시즌의 .526에 한참 못 미친다. 그래서 항상 그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단기전에 약한 감독’이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절인 2002년 LA 에인절스와 만난 월드시리즈에서 베이커 감독은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섰다. 6차전 역시 7회초까지 5-0으로 앞서며 우승 반지를 눈앞에 두는 듯 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7회와 8회 각각 3점씩을 내주며 역전패했고, 6차전 대역전패의 여파는 7차전까지 이어지며 고개를 떨궈야 했다.

결국 6차전에서 베이커 감독이 단행한 세 번의 투수교체가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이 치명적이었다. 당시의 6차전은 지금은 에인절스의 상징이 된 ‘랠리 몽키’의 서곡이었으며, 베이커 감독에게 ‘단기전 해법‘이라는 숙제를 안겨 준 상징적인 경기가 됐다. 베이커는 이듬해인 2003년 시카고 컵스였기에 더욱 주목을 받은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3승 2패 상황에서 맞이한 6차전 7회까지 3-0 리드를 지키지 못했고, 다시 한 번 7차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0년엔 역대 포스트시즌 첫 번째 원정 2연승 뒤 홈 3연패라는 치욕을 맛봤다. 시간이 흘러도 베이커는 가을 야구의 해법을 찾지 못했고, 단기전에 약한 감독이라는 꼬리표는 더욱 굳건히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지난해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정규시즌에서 팀을 본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베이커의 첫 번째 임무다. 이는 베이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다음 임무는 당연히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워싱턴으로선 스트라스버그와 하퍼가 함께 뛰는 지금이 우승 반지를 얻을 수 있는 최적기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베이커가 지금까지 가장 곤혹스러워했던 일이다. 어느덧 66세의 고령이 된 그에겐 결코 시간이 많지 않다.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향후 지금의 워싱턴과 같은 강한 전력의 팀을 맡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근의 공식이나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정해진 공식은 없다. 잔인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것은 결과로 평가될 뿐이다. 과연 베이커는 감독으로서 지난 스무 번의 시즌에서 풀지 못한 숙제의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의 스물한 번째 도전이 가까워지고 있다. [헤럴드스포츠 = 김중겸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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