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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헬조선의 시대, 스포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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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표지.


# 기자 출신의 전업소설가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는 제법 잘 읽힌다. 속도감 있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여주인공 계나가 두 번이나 한국을 떠나는 심정에 이의를 달기가 힘들다. 작가가 직접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사실은 문제점을 고치자고, 그래서 한국을 떠나지 말자고 쓴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내포된 취지보다는 현실이 더 못됐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계나가 첫 번째 호주로 떠날 때 ‘피를 철철 흘리면서 국경을 넘었다’는 대목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 이 소설 때문인지, 아니면 그 때문에 이런 소설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지옥 같은 한국’이라는 뜻으로 젊은층이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에, 하위 50%의 자산이 2%에 불과하다니 우리 주변엔 ‘계나’가 흘러넘치는지도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편향된 역사교과서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학사관에 사로잡히고, ‘헬조선’을 내뱉는다고 ‘지적질’이다. 그런데 국정교과서로 국사를 공부한 ‘타타라타’도 계나에게 감정이입이 되니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 스포츠는 어떨까?스포츠 취재경력이 얼추 20년쯤 되니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계나’처럼 한 마디는 할 수 있을 듯싶다. 가장 기초종목이라는 육상을 보자. 2011년부터 언론보도부터가 코미디가 같았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사상 처음으로 개최국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고,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는 안방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세계육상선수권(베이징)에서도 최악의 성적에 그쳤다. 남자마라톤의 황영조-이봉주, 높이뛰기의 이진택, 중거리의 이진일, 창던지기의 이영선 등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시아는 물론 세계무대에서도 경쟁력이 있던 선수들을 언급하지 않아도 지금 한국 육상은 최악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교묘하게 ‘기록은 풍작’ 혹은 ‘3년 연속 톱10(경보)’ 등의 구차스러운 수식어로 한국육상의 자위행위를 도울 뿐이었다. 제대로 된 비판마저 사라진 것이 더 슬프다.

# 다른 종목은 좋을까? 유남규, 현정화, 유승민 등을 내세워 중국과 세계정상을 다투던 탁구는 이제 아시아 3위도 장담할 수 없다. 복싱은 아마와 프로 모두 단군 이래 최악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빙상과 수영?김연아의 피겨신화는 이미 과거지사가 됐고, 도핑에 걸린 박태환의 재기 몸부림은 안타깝기만 하다. 아직 후계자는 보이지 않는다. 빙상의 자랑 쇼트트랙도 시장점유율이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러시아로 가 포효한 안현수를 보라). 우생순의 여자핸드볼도 이제는 세계정상이 아닌 ‘강호’ 정도로 격하됐고, 유도 레슬링 등 투기종목도 점차 예전의 영화에서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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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끝날까? 아니면 다시 한 번 감동의 물살을 가를까? 도핑파문에 휩싸인 박태환의 모습.


# 인기 프로스포츠도 ‘헬조선’의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겨울철 최고 인기스포츠라는 농구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아예 올림픽 본선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툭하면 4강 밖으로 밀려난다. 84 LA올림픽 은메달에 빛나는 여자농구도 국제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남녀배구도 피크를 지난 듯 보인다. 그나마 올림픽과 WBC에서 자존심을 곧추 세운 최고 인기스포츠 야구, 그리고 아직은 2002년 후광 덕에 아시아의 대표선수를 자임하는 축구가 있지만 그 속은 갈수록 부실해지고 있다.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의 최익성 대표는 “주니어 선수 100명 중에 고작 3명만 프로 선수가 된다. 중도에 야구를 그만둔 선수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야구가 이 정도이니 다른 스포츠는 말할 나위가 없다. 툭하면 경기조작이나 불법 도박으로 선수와 감독이 잡혀들어가니 이미지도 많이 실추됐다. 그나마 여자 골프의 선전이 눈부신데, 사실 골프는 부정적 시선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헬조선’의 반증이 아니라 근거로 사용된다는 맹점이 있다(이 와중에도 남자골프는 최악).

# 좋다. 엘리트스포츠만이 한 나라의 스포츠문화를 대변하는 척도가 아니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국제대회 성적보다는 생활체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이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생활체육은 튼튼한가?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산하 청소년기초체력센터의 조승진 원장은 “30년 동안 체대입시생을 가르쳐왔는데 수험생들의 기초체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체대에 진학하려는 남학생이 턱걸이를 단 한 개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니 일반 학생은 오죽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그나마 지자체를 중심으로 생활체육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많이 활성화됐다고? 가만히 관찰하시라. 그건 유아나 중장년, 노년층에 집중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층은 체육을 즐길 시간도, 여건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출산율 저하로 자녀가 한두 명인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운동을 잘 시키지 않으려는 세태가 원인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지긋지긋한 입시지옥도 그 배경이 될 수 있다. 또 신문산업이 위축되면서(우리 주변에서 스포츠신문이 사라지면서) 양질의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도 탄식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보다 출산율 저하를 먼저 겪은 선진국은 학창시절 선수가 아니었던 사람이 없다. 일본만 해도 학교 체육은 한 사람이 하나의 특기를 가지는 ‘일인일기’ 정책이 기본이다. 전문성에서 한국의 스포츠 관련 기사는 외국의 스포츠 보도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사례도 참 많다. 그러니 망가진 한국 스포츠는 어쩌면 헬조선의 다름 이름일 수도 있다. 부디 높으신 분들이 헬조선을 치유할 때 스포츠도 좀 함께 다뤄줬으면 한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ilnamhan]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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