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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채은의 독이 든 사과] 승부조작보다 더 무서운 경기조작
몇 년 전부터 국내 프로스포츠 리그는 끊임없이 승부조작 의혹으로 스포츠맨십이 뿌리부터 흔들리며 몸살을 앓고 있다.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 이들의 행동으로 스포츠팬들의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농구의 예를 들어보자. 지난 4월 KGC인삼공사의 전창진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전 감독은 사채업자로부터 3억원을 빌려 불법 스포츠도박에 배팅하고 자신이 지휘하던 팀의 승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프로농구의 승부조작 의혹이 발생하는 경기는 주로 2, 3월에 집중된다. 이 때는 정규리그를 마무리하고, 플레이오프 진출팀이 확정되는 시기로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주전선수들이 아닌 후보선수들이 나와 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감독 입장에서도 팬들에게 평소와 다른 플레이를 보여주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사실 문제의 핵심은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들의 배팅형태에 있다. 국민체육공단이 운영하는 ‘스포츠토토’의 경우 경기당 승패와 득점차 정도에만 배팅할 수 있다. 반면,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서는 쿼터별 승부, 총득점 포인트, 선수간 대결, 심지어 첫 3점슛의 성공여부 등 정말 다양한 형태의 배팅이 가능하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그것으로 내기가 가능하다면 도박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리그 운영이나 경기 전체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 경기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즉, 팬들이나 관계자의 저항 없으니 적발도 그만큼 더 어렵다. 그래서 ‘승부조작’이 아니라 ‘경기조작’으로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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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스포츠도박 근절을 위해 스포츠토토가 만든 캠페인 포스터.


경기조작은 교묘하게 이뤄진다. 그러니 꼭 2,3월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승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영역에서 불법스포츠도박이 이뤄질 수 있다. 어느 사이트에서 어떤 게임으로 불법베팅의 마수를 뻗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전창진 감독도 양팀의 점수차를 대상으로 한 불법토토에 베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만일 보다 교묘한 방법으로 했다면 발각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야구의 경우 선발투수의 첫 번째 투구가 볼이냐, 스트라이크냐를 놓고 불법도박이 이뤄지기도 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경기조작과 불법 스포츠도박은 불가분의 관계다. 스포츠 배팅을 즐기는 유저들은 많은 반면 이들의 니즈(욕구)를 충족하는 시장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예컨대 스포츠토토는 해외축구리그에 대한 배팅이 가능하지만 정작 발권은 오후 10시에 마감되어 정작 해외축구 경기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제대로 배팅을 즐길 수 없다. 불법사이트에서는 후반 스코어 등 경기진행 도중에도 베팅이 가능하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단속 걸리면 대체사이트를 다시 만들고, 또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아주 미시적인 경기조작을 시도하니 이런 문제는 사실상 발본색원이 힘들다. 법적 규제를 통해 불법 시장을 근절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용어부터 ‘승부조작’이 아닌 ‘경기조작’으로 적확하게 표현하면서, 이에 대한 사법당국과 해당종목 종사자들이 철저하게 감시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또 이와 함께 정부의 허가 아래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스포츠토토가 유저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 상품성을 끌어올리는 것도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해외의 경우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사행산업을 양성화하고 오히려 발전시키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확실한 것은 불법스포츠도박의 근절 위한 당근과 채찍,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은 아직 멀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보도하는 언론조차도 승부조작과 경기조작을 구분하지 않고, 혼동해서 쓰니 말이다. [컴파스·인포가이드코리아 대표]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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