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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농구계 '의자놀이'와 누명
#소설가 고(故) 최인호가 암투병 직전 완간한 소설 <유림>의 시작은 조광조다. ‘하늘에 이르는 길: 조광조, 하늘 아래 지극한 도를 구하다’라는 웅장한 부제가 붙은 1권은 최고의 실권자에서 하루 아침에 대역 죄인으로 몰려 비참한 죽임을 당하는 조광조의 삶을 절절하게 담고 있다.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으로 유명한 조광조는 어떤 비리나 과오를 저질러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니다. 반대 정치 세력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목숨까지 잃은 것이다. 선조임금 때 복권됐으니 그의 누명과 억울함은 역사가 이미 판단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극적이니 ‘누명’ 하면 그가 떠오른다. 하기야 역사 속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은 이가 어디 한둘일까? 이순신의 백의종군이 그렇고, 알프레드 드레퓌스도 그렇다. 심지어 예수의 십자가 고난도 ‘사람’의 관점에서는 다 누명 때문이다.

#미국 현대 문학의 시초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은 “거짓이 세상을 반 바퀴 돌 때 쯤에야 진실이 신발을 신는다(A lie can travel half way around the world while the truth is putting on its shoes)”고 일갈했다. ‘사실이 아닌 일로 이름을 더럽히는 억울한 평판’인 누명의 못된 위력을 경계한 것이다. 이 말이 고향인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자주 인용되는 듯싶다. 한 정치인은 이를 아예 자신의 책 제목으로 삼기도 했다. 먹고 살기가 점점 각박해지는 요즘 우리네 주변에서도 어린 아이들부터 직장인, 노년층까지 이 누명은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그 피해자는 ‘이불 킥’을 넘어 심할 경우 삶이 피폐하도록 고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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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파의 공격으로 하루아침에 권력실세에서 역적으로 전락해 죽임을 당한 조광조의 초상. 누명을 받은 그의 억울함이 소설 <유림>에 절절하게 나와 있다.


#생업은 스포츠계에도 존재한다. 선수들은 실력으로 살아남기 위해 땀을 쏟는다. 도태 하면 먹고 살기가 힘들어 진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택하면 직장인 들보다 더 격렬한 경쟁에 내몰린다. 프로팀 감독이라면 부와 명예가 따르지만 쫓겨 나면 유명한 실업자가 된다. 전직(轉職)의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고, 전현직의 편차가 일반인들 보다 심하니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시즌이 끝나가는 요즘 남녀프로농구계가 딱 이렇다.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의 감독 자리와 관련해 온갖 소문과 괴담이 난무한다. 공지영의 소설 <의자놀이>를 빗대면 빈 자리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인데 놀이 참석자는 수십 명에 달한다. 그러니 지도능력은 정작 뒷전이고, 혈연 지연 학연 등 온갖 인맥이 동원된다. 심지어 있지도 않은 사실을 추문으로 만들거나, 과거의 잘못을 확대재생산한다. 도박설, 여자문제, 폭행 등은 물론이고 가정사까지 들춰낸다. 서로 헐뜯고 싸우기에 바쁘니 이미 농구인들의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프로 구단을 운영하는 모기업 측의 태도도 영 볼썽사납다.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지도자를 찾다 보니 감독의 평균연령이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 이제 남자프로농구 감독은 40대 초반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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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소설 <의자놀이>. 보통사람들의 먹고살기도 힘들지만 요즘 프로스포츠에서도 감독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의자놀이'가 험하기만 하다.


#잘 나가는 프로농구팀의 감독이었던 지인과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났다. 필자가 출연한 새벽 라디오방송을 듣고 연락이 닿은 것이다. 10년 만에 본 얼굴은 아주 밝았다. 처음에는 프로선수를 거쳐 고등학교에서 지도자생활을 시작해 프로팀 감독까지 지냈으니 지금도 농구 일을 하는 줄 알았다. 아니 최소한 벌어놓은 돈으로 쉬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의자놀이’에 가세했으리라 추측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대형차를 운전했다. 새벽에 차를 몰다 보니 라디오 애청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선수시절 우직한 플레이와 성격으로 ‘지도자 재목’으로 불렸던 이 농구인 출신 버스기사는 아직도 ‘누명’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소주 한 잔 걸친 그의 말이 절절하기만 했다.

#“있지도 않은 선수 폭행시비에 휘말렸지요. 지금도 해당 선수 및 그 측근과의 대화, 주변 선수의 증언 등 증거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사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고, 죽고 싶을 만큼 억울했지만 결국 팀을 나왔지요. 당시 한 농구 선배는 전화로 위로하는 척 하면서 빨리 사표를 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가 내 자리로 치고 들어오려고 한 거였어요. 이후 농구 쪽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너무 억울해서 정신병원에 다녔고, 자살까지 생각했어요. 다행히 아내와 아이 때문에 이겨냈지요. 가족을 위해 등짐이라도 져야 하는 상황이 됐기에 지금은 운전을 해요. 넉넉하진 않지만 먹고살 만 해요. 한 가지 걱정은 아직도 인터넷에 제 이름을 치면 ‘폭행감독’ 이런 게 쫙 떠요. 저는 그렇다 쳐도 조금 있으면 딸 아이도 인터넷을 할 나이가 되는데 그게 걱정이에요.” 이쯤이면 위로하기가 힘들다. “일단 포털 측에 연락해서 관련 글의 삭제를 요청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무기력한 조언이 고작이었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ilnam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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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으로 대형차를 운전하고 있는 한 전직 프로농구감독은 '링 하나만 바라보고 평생을 살았는데 남은 것은 자살충동까지 유발하는 누명"이라고 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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