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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매치] ‘마당을 나온 암탉’ VS ‘언더독’ 추악한 인간의 민낯을 고발하다
매주 신작들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비슷한 소재에 제작진, 배우들까지 같은 경우 그런 분위기가 더욱 감지된다. 비슷하다고 해서 모두 모방했다고 볼 필요는 없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요리하는지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 ‘빅매치’에선 어딘가 비슷한 두 작품을 비교해 진짜 매력을 찾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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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남우정 기자] 사람답지 못한 이들을 말할 때 흔히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생각을 전환해 보면 짐승의 입장도 억울하겠다 싶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는 이유로 그런 비하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최근 유기견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내세운 영화 ‘언더독’이 개봉했다. 언더독은 ‘약자’를 의미한다. 제목 그대로 ‘언더독’은 인간세상에서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견생들을 조명한다. 동물들의 섭리와 규율이 오히려 인간세계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 작품은 7년전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센세이션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마당을 나온 암탉’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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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이 주인공, 그 안에 담긴 공통적 메시지

7년 전 오성윤 감독이 공개했던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은 당시 22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한 획을 그었다. 닭장에 갇혀 살며 매일 알만 낳던 암탉 잎싹이가 마당을 나온 후의 모험담을 담은 이 작품은 자연의 섭리는 물론 인간 세계로 빗대어 볼 수 있는 스토리로 호평을 얻었다.

오성윤 감독은 그리고 또 한 번 동물을 주인공으로 인간의 삶을 꼬집었다. ‘언더독’은 하루아침에 벌미을 받은 강아지 뭉치가 개성 강한 거리의 견공들과 함께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위대한 모험을 담은 작품으로 반려동물 1000만 시대의 민낯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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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 속에서 인간은 영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살피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 안에서 동물들의 삶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마당을 나온 암탉’과 ‘언더독’은 동물이 직접 선택하는 삶을 주목한다. 닭장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던 잎싹이는 마당을 나온 뒤 스스로 자신의 아이도 아닌 오리인 초록이를 품는 선택을 한다. ‘언더독’에서 인간들에게 버림받았던 개들은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찾아 떠난다. 이 모든 것이 동물들 스스로 선택한 삶이다. 오윤성 감독은 동물의 주체적 견생을 조명했다.

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박철민의 존재감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수달 달수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박철민은 ‘언더독’에선 짱이 역을 맡았다. 달수와 짱이는 두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다. 다소 심각할 수도 있는 분위기를 완화 시켜주는 것도 박철민의 몫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영화는 재미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 역할을 박철민의 목소리가 톡톡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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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독’, 직설적이라서 더 날카롭다

동물들의 삶을 다루는 것 같지만 표현법은 다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잎싹이의 선택과 초록이의 성장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자신이 낳은 새끼가 아님에도 초록이를 품은 잎싹이의 모습은 입양 가족의 현실을 담고 있고 마치 사춘기를 겪는 듯한 초록이의 모습은 청소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언더독’은 돌려 말하지 않는다. 문제점을 확실하게 꼬집고 자각하게 만든다. ‘언더독’은 떠돌이 개들의 삶을 통해서 무법자나 다름없는 인간을 저격한다. 뭉치는 일명 개공장에서 태어나 매매된 강아지다. 뭉치의 엄마는 개공장에서 애만 낳다가 죽음 후에야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작고 어릴 땐 귀엽다는 이유로 뭉치를 구매했던 주인은 뭉치의 크기가 커지자 아무렇지 않게 유기한다. 개가 짖지 못하게 하는 목걸이를 풀어주고 맘껏 뛰어 놀라면서 “이게 얘한텐 더 나을거야”라고 말한다. 사료 한봉지와 함께 죄책감을 덜어낸다.

떠돌이 개들은 개사냥꾼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한다. 잡히면 다시 개공장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마취총으로만 포획할 수 있지만 실탄을 장착하는 인간의 무지막지함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과정에서 로드킬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현실을 꼬집기도 한다. ‘언더독’은 마냥 즐기면서만 보기엔 힘든 작품이다. 인간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면서 씁쓸함을 안긴다.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듣는 인간들이 많아서일까. 그런 이들을 위해 가끔은 ‘언더독’같은 표현이 필요하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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