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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가 사람들] 저는 스타일리스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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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풀하우스2'에서 스타일리스트 역을 맡은 배우 황정음. (사진=SBS플러스)

[헤럴드경제 문화팀 =장영준 기자] '방송가 사람들'은 방송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과 함께 하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여러분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기존 기사 형식에서 벗어나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편집자주-

저는 스타일리스트 입니다. 벌써 10년이네요. 이 일 시작한지도. 제가 생각해도 신기해요. 이 힘든 일을 이렇게 오래하고 있다는 게. 밤낮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일하다보니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바쁘게 지내다보니 내가 처음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지도 잊고 있었네요. 그때가 벌써 10년 전입니다.

고향은 광주였어요. 그때 제 나이가 20살 정도 됐을 겁니다. 시장을 걷고 있었어요. 이제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서. 마침 대학도 휴학 중이어서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지내고 있었죠. 그러다 우연히 한 메이크업 아카데미 간판이 눈에 들어왔어요. 뭔가에 이끌리듯 안으로 들어갔죠. 그랬더니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마냥 저에게 달려들어 이런 저런 설명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더라고요. 정신이 없었어요.

아카데미는 그냥 학원이예요. 메이크업 같은 것들을 가르쳐주는데 솔직히 현장에서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건 없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요. 아시겠지만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이유는 하나의 진출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예요. 그렇게라도 인연을 만들어가야 관련 업계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그 전까지만해도 제가 스타일리스트가 될 거라는 생각은 1도 한 적이 없었어요. 진짜로요.

그렇게 학원에만 천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 것 같아요. 학원비가 만만치 않거든요. 몇개월 과정에 얼마 이런 식으로 가격이 책정돼 있는데 그 밖에도 부수적인 비용들이 많이 들어가요. 다행히 그때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식당이 잘돼서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만약 그럴 사정도 되지 않았다면 아마 저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지는 상상도 못하겠네요.

어쨌든 학원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아무런 연고도 없이 무작정 상경했죠. 그때부터 본격적인 혼자만의 생활이 시작됐어요. 처음 한동안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멍만 때리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간 회사가 바로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어느 대형 기획사였습니다. 차마 어딘지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제가 그곳에 들어간 건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그곳에서 3년정도 일했는데 회사 규모가 크다보니 정말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내 생활 하나 없이 일만하다보니 학원에서는 배우지 못한 진짜 실무들을 배울 수 있었죠.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던 어느 날 현장에서 함께 일하며 친해진 다른 스타일리스트들과 술 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전해들었어요. 팀을 잘 만나 내 시간을 즐기면서 일을 한다는 말이었죠. 그래서 결국 그 대형 기획사에서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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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의 스타일리스트 역을 맡은 배우 김보미. (사진=SBS 방송 화면 캡처)

그렇게 버티고 버티며 일하다보니 지금은 어느새 팀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습니다. 밑에서 일하는 직원도 두 명이나 있죠. 솔직히 월급은 많이 주지 못합니다. 열정페이라고 욕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4대보험도 들어주고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합니다. 저희가 버는 돈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그래요. 처음에는 제가 월급을 받지 못한 적도 있어요. 월급을 받기만 하다 주는 입장이 돼 보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제 능력 부족을 탓할 수도 있지만 이쪽 업계가 유독 돈을 깎으려는 경향들이 강해요. 예를 들어 원래 받아야 할 돈이 300(만원)이라면 일을 의뢰한 쪽에서 200에 하자고 하죠. 그러면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250을 요구합니다. 결국 그렇게 깎이고 깎이면서 남는 돈도 없이 일할 때도 많아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버티기가 점점 힘들어지죠. 이런 일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일비재합니다.

요즘 스타일리스트 하겠다는 친구들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합니다. "혹시 집에 돈 좀 있니?"라고. 그만큼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게 바로 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이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말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만만한 일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못 되니까요. 열정만으로 하기에는 참 힘든 일입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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