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는 MB 정부가 추진했던 공기업 민영화의 ‘아이콘’이었다. 김쌍수 한전 사장. LG전자 부회장 재임 시절, 그는 사양산업으로 치부됐던 LG 에어컨과 TV 등 백색가전을 세계 최고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으며 회생시켰다. 그가 연봉 20억원대의 LG 고문을 포기하고 연봉 2억원(성과급 포함)에 불과한 한전 사장으로 온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선한 시도로 환영받았던 ‘민간 CEO 경영 실험’ 3년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한전은 내리 3년 적자를 봤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 적자가 6조1000억원이다. 스타 CEO의 불명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그는 소액 주주 14명으로부터 2조8000억원을 회사에 배상하라는 주주대표소송을 당했다.
김 사장은 임기 만료를 이틀 앞둔 25일 기자들과 만나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주주들이 제소한 이상 식물사장이 된 셈인데 개인적 양심으로도, 조직원이나 주주를 생각해서도 자리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년간 열심히 일한 결과가 피소라니…. 답답할 만도 하다. 그를 피소 지경으로 몰고 간 것은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요금이다. 유가는 고공 행진 중인데, 요금 인상률이 연료비 상승 폭을 따라가지 못했다. 지난 8월 1일 4.9% 전기요금 인상 결정 당시에도 한전이 애초 요구했던 전기요금 인상 폭은 17~18%였다. 물가가 고공 행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요금이라도 눌러야 한다는 논리에 밀려 한전의 요구는 아예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등유 가격은 93%, 경유 가격은 121% 올랐는데, 전기요금은 14.5%밖에 오르지 않아 원가의 90.3%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는 “공기업이라도 비즈니스를 하는 상장회사는 민간 회사로 보고 (운영상) 독립권을 줘야 한다”면서 “하지만 아직도 정부는 공기업을 ‘정부 예산 받아쓰는 기관’으로 보고 적자가 나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은 지분의 51%를 정부가 가지고 있다. 24%는 외국인이, 나머지는 일반 소액 주주다.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또 다른 한전 관계자의 입을 통해 나왔다. “아무리 민간에서 창의성이 있는 스타 CEO를 영입하면 뭐 하겠느냐”며 “정부의 의사 결정 틀 안에서 굴러가는 행태가 반복되는 한 공기업 민영화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박지웅 기자/goa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