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총량규제 후 달라진 은행창구 풍경
“어디 쓰실거에요?”…직원들 실수요 가려내기 진땀저금리 노린‘ 가수요자’에 선의의 피해자 발생 우려
40대 직장인 A씨. 얼마 전 그는 아내가 운영하는 조그만 가게에 급전이 필요해 모 은행 영업점에서 신용대출 4000만원을 신청했다.
일부 은행들이 대출을 중단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평소 신용관리를 잘 해둔 터라 별 무리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달랐다. 영업점 직원은 “어디에 쓰시는 거예요? 용도가 불분명하면 승인이 안 떨어져요”라며 자금의 용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A씨는 순간 짜증이 났다. ‘아내 가게에 필요한 돈인데, 내가 대신 대출을 받는다’는 식의 구차한 설명을 하기 싫어 그는 결국 영업점을 나와버렸다.
주요 시중은행들이 사실상 가계대출 총량규제에 들어가면서 은행 영업점 풍경이 확 달라졌다. 고객들은 한층 강화된 대출심사에 당혹스러워하고, 영업점 직원들은 ‘실수요’를 가려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24일 “감독당국의 얘기처럼 실수요자를 선별해서 대출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하다보니 본점에 전화를 걸어 심하게 항의하는 고객들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모 은행 영업점 직원이 고객과 대출 상담을 하고 있다. 최근 은행 영업점에서는 자금의 용도를 꼬치꼬치 캐묻는 등 대출심사를 대폭 강화했다. |
다른 은행 관계자도 “예전에는 가계대출이라고 하면 주택구입과 전세자금 이외 나머지는 생활자금으로 분류했는데, 이제는 생활자금의 구체적인 내용이 입증되지 않으면 대출을 승인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저금리가 당분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루면서, 미리 자금을 확보해 좀 더 높은 수익을 좇는 ‘가수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쓰는 생계형 수요도 많지만, 금리가 낮다보니 가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 자금은 고수익을 노리고 대폭 하락한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은행은 신용대출의 경우 8000만원까지, 5억원 미만의 주택담보대출은 영업 지점장 전결로 처리하되 그 이상 되는 금액은 본부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고정금리 대출에 비거치식 분할상환 방식의 주택담보대출과 공무원대출 등 일부 신용대출만 열어놓고 있는 신한은행은 실수요 중심으로 대출을 해주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 이후에도 ‘대출 중단’ 방침을 철회하지 않았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은 이달말까지 잠정적으로 대출을 중단하지만 신용대출 중단 시한은 정해놓고 있지 않다”며 “앞으로 대출규모 추이를 지켜보면서 (대출 중단 해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창훈 기자/ chuns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