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건강한 밥상
할머니·할아버지가 기른 채소
중간 단계없이 소비자에 직접 배송
고양시 행주농가
영월 콩·영광 천일염으로 메주 만들어
가구별 1대1 장독대 분양도
광주시 한새봉 논두레
여러 가족이 함께 논·밭 일궈
자녀들에겐 교육의 장으로
한국인의 집에 텃밭은 빠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상에 올릴 채소는 그날그날 텃밭에서 뚝뚝 따다 씻고 다듬으면 그만이었다. 추려놓은 씨앗과 틈틈이 밭을 가꾸는 정성이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하지만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뒤덮은 도시에서 텃밭은 보기 힘들어진 지 오래다. 이제 식탁의 불안이 다시 텃밭가꾸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더 이상 가족의 건강이 위협받으며 불안만 안고 살 수는 없다. 도시민의 텃밭 찾기, 그 방법을 찾아봤다.
▶ ‘똑똑 알뜰’ 소비자에게 인기…꾸러미 사업=짐 꾸러미, 선물 꾸러미 할 때 그 꾸러미 맞다. 고향을 찾으면 부모님이 직접 가꾼 채소며 참기름이며 여러 가지 담아 정성껏 싸주시는 꾸러미를 떠올리면 된다. 전북 완주의 로컬푸드 영농조합법인 ‘건강한 밥상’은 꾸러미 사업으로 알뜰 소비자의 입소문을 탔다. 완주 지역 곳곳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수 재배한 농산물을 추려다가 박스로 싸서 소비자에게 배달 보내는 직거래 방식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소일거리로 직접 기른 채소나 과일은 양이 적다. 구판장에 가지고 나가 봐야 제값 받기가 어렵다. 자식에게 보내거나 이웃과 나눠 먹는 게 고작이었다. 건강한 밥상 꾸러미 사업단은 완주군 노인에게 일자리와 일정한 소득도 얻게 해주고, 소비자에게 믿을 만한 농산물을 중간 단계 없이 바로 팔아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소비자의 호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완주군 로컬푸드 영농조합법인 ‘건강한 밥상’은 완주 지역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꾼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해주고 있다. [사진자료=건강한 밥상] |
“작년 10월 114명 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3월 말인 지금 회원 수는 2500명으로 늘었습니다. 정기 발송 건수는 2200건이 넘습니다. 채소, 잡곡, 과일 등 4인 가족이 1주일가량 먹을 수 있는 11가지 농산물을 박스로 포장해 보내고 있습니다. 보통 시장에 가면 3만5000원이 넘는 가격의 농산물을 2만5000원에 받아볼 수 있다 보니 회원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중간에 소비자 의견을 받아 품목도 바꿔보고,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회원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올해 5000명 회원도 무난할 것 같습니다.”
조성진 건강한 밥상 총무이사의 설명이다. 회원 수가 더 늘면 소비자가 원하는 농산물을 직접 선택해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운영 방식도 개선할 계획이다. 아직은 사업 초기인 탓에 품목 수를 사업단이 정해서 보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농 인증 농가도 더 늘리고, 계약재배 방식으로 바꿔 필요한 농산물 양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실천 중이다.
경북 상주의 ‘봉강 친환경채소 꾸러미 사업단’ 등 비슷한 성격의 마을기업은 계속 늘고 있다.
▶먹을거리 만들기 체험까지=경기 고양의 ‘행주농가, 콩이 무르익는 마을’는 전통방식 그대로 만든 메주를 선보이고 있다. 강원도 영월에서 난 100% 국산 콩과 영광 천일염을 사용해 손맛을 자랑하는 새마을회 지도자들이 메주를 만들고 간장, 된장 등도 담갔다. 작년 10월부터 사업을 시작했는데 300만원 매출을 올렸다. 사업에 참여한 주민들의 반응도 좋았고 입소문을 탄 덕에 판매도 계속 늘고 있단다.
박석표 고양시 새마을회 팀장은 “내년 새마을회 지도자분들이 직접 가족에게 메주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가을에는 완성된 간장을 가져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펼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노력을 들이더라도 믿을 만한 식품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니어클럽’이라고 해서 노인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2군데 위탁 판매처도 마련했습니다. 가족에게 1대 1로 장독대를 분양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된장 주말농장, 주말 장독대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웃음).”
경기 고양시 새마을회가 위탁 받아 운영하고 있는 ‘행주농가, 콩이 무르익는 마을’. 믿을 수 있는 국산 재료로 된장, 간장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사진자료=행주농가, 콩이 무르익는 마을] |
광주의 ‘한새봉 논두레’는 체험 농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여러 가족이 함께 논을 일구고 텃밭도 가꾸고 있다. 자연을 가까이 할 기회가 없는 아이에게는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한다. ‘한새봉 자연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텃밭을 가꾸는 데 필요한 재료를 판매하는 텃밭 가게도 문을 열었다.
대전의 ‘세동 우리백세밀’도 안전한 먹을거리 만들기와 체험이 한데 어우러진 사업이다. 2008년 6가구로 출발해 지금은 사업 영역이 크게 넓어졌다. 친환경 방식으로 만든 밀을 밀가루, 국수, 찐빵 등으로 가공해 팔고 있다. 전통 농기구 체험장, 전통 누룩 만들기 사업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채소, 과일에서 곡물, 발효식품까지 다양한 먹을거리를 주제로 한 마을기업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중간 유통단계를 건너뛰고 믿을 만한 농산물과 먹을거리를 직접 구하려는 똑똑한 소비자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민의 텃밭 찾기는 이제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조현숙 기자 @oreilleneuve>
newear@heraldcorp.com
설마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이 지구를 돌고 돌아 한국까지 왔다. 몸에 해가 가지 않을 정도라고는 하지만 찝찝한 마음을 떨치기 어렵다. 벌써 해산물 인기가 뚝 떨어졌다는 소식도 들린다. 여기에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로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역시 불안하다.
가축병보다 무서운 게 물가다. 대형할인점을 찾아도 ‘할인’이란 이름이 무색하다. 건강을 생각해 유기농 제품을 사려고 하면 호박 한 개에, 두부 한 모에 3000원은 우습다. 만원 한 장 들고 나와도 가족 한 끼 반찬 마련하기가 빠듯하다. 얼마 전 만원이 넘는 배춧값으로 우리나라가 들썩하기도 했다. 언제부터 우리는 불안에 떨며, 가격에 떨며 먹을거리를 구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