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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경이 만난 인물] “은행의 의무, 투자자의 책임…‘균형’이 K-금융 시대 연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
은행 자산관리서비스
사회안전망 역할할수
탈나니 하지마라 말고
잘하게 채찍질을 해야
금융시스템 유지 위해
전례가 관례되면 안돼

[헤럴드경제= 대담 홍길용 금융부장. 정리=홍석희·서정은 기자]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에 안타까운 수업료를 내고 있다”

지난 25일 만난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라임과 옵티머스 등 금융투자와 관련된 각종 사고들이 잇따라 터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년 초 3번째 임기 취임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할 일을 가슴이 많이 담고 있는 얼굴이었다. 이젠 자신과 SC제일은행을 넘어 41년간 몸담아 온 은행권 전체를 걱정할 ‘짬밥’이 된 듯 했다.

박 행장은 1979년 제일은행에 입행해 PB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리테일금융총괄본부 부행장 등을 거쳐 2015년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이미 연임했고, 내년부터 세 번째 임기에 들어간다. 외환위기로 은행권 1위이던 옛 제일은행이 무너지는 것도 봤다. 하지만 이번 금융권의 각종 펀드 사고는 박 행장에겐 ‘강건너 불’일 수도 있다. SC제일은행은 엄격한 내부 통제 덕분에 문제가 된 펀드 상품들을 단 하나도 팔지 않았다.

“우리(SC제일은행)가 빠졌다고 반사이익을 누리며 잘난 척 하면 안된다. 라임이나 옵티머스 사태는, 특정 분야만의 일 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 터지니까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들 알게 됐다. 안전망의 부족분을 상당부분 흡수할수있게 만드는게 금융의 역할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가 SC제일은행에 준 교훈이 적지 않음도 고백했다.

“스탠다드차터드(SC)는 150년 160년씩 했던 방식이다. 처음엔 우리도 불평 많이했다. 금융 상품도 잘 팔릴 때 내놔야되는데, 늘 출시가 늦었다. 어떻게 장사하냐고, 뒷북만 치면 어쩌냐고 아우성이었다. 다툼이 있었다. 상품을 팔기도 어렵고, 고객을 붙잡기도 어렵다고 그룹을 원망까지 하더라. 나도 젊은 직원이면 그랬을 듯 싶다. 그런데 큰 거 터지는 것 보니까 이게 맞는거다. 덜 정제된 상품을 돈 벌이 하겠다고 후딱 만들어 팔고 그러면 안된다는 걸 절감하게 됐다. 금융은 보수적이어야된다”

어떻게 하면 SC제일은행 처럼 탈 안나게 할 수 있는 지 물었다. 박 행장의 답변은 간단했다

“제도적으로 안전한 상품이 제공되도록 거름망이 잘 작동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편하게 접근해 안심하고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파는 사람, 즉 은행원들의 수준이 높아야 고객과 최적점을 찾아 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은행의 역할, 지점의 역할이 앞으로도 계속 중요할 것으로 확신했다. 최근 확산되는 디지털 금융혁신에도 미래 은행이 생존할 이유라고도 했다.

“우리 전략이 점포를 상당수 유지하는 방향이다. 기업금융과 자산관리에는 오프라인 채널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디지털이 할 수 있는건 소매영역의 일부다. 기업금융도 일부만한다. 자산관리도 마찬가지다. 결국 고객이 담당 직원이나 세무전문가 만나야한다. 디지털로는 다 못한다. 그래서, 이 영역들은 은행이 갖고 갈 수 있다. 아무리 디지털 혁신돼도 은행이 제대로만 하면 안망한다”

SC제일은행이 출시한 생애 자산관리 서비스 ‘프리미어 에이지(Premier Age)’ 역시 점포를 통한 자산관리 사업이다. 다만 예전처럼 각 은행이 전국 방방 곡곡에 지점을 두는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데는 동의한다. 효율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한 변화라는 입장이다.

“과도기적으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쟁력 약화를 막으려면 결국 시장에 맡겨야 한다. 이젠 모두가 적응해야한다. ‘테스형 세상이 왜이래’하고 한탄만 할 게 아니다. 요새 60대도 디지털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지점 줄인 돈의 일부를 금융교육에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다 떠먹여 줄 순 없어도 물가에까지는 안내할 수는 있다. 금융권 퇴직한 분들 활용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소비 창출과 은퇴 후 대비 둘 다 가능하다”

41년 은행 경력의 박 행장도 무서운 게 있는 지 궁금했다. 혹시 빅테크의 ‘금융침공’이냐고 물었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세상이 변해서 못 피한다. K금융을 키우는 기폭제로 보고 상생모델을 찾는 게 낫다. 카카오는 잘 될 것으로 생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 네이버, 토스 등도 무섭게 성장할걸로 본다. 그래도 기존 은행이 제대로만 하면 괜찮다. 기존 은행들이 맏형이니까 양보는 하겠지만, 정책적 균형이 중요하다. 금융은 규제산업이다. 공정한 심판이 필요하다”

‘규제’ 얘기가 나오자 박 행장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 이후 강화된 금융상품 관련 규제 때문이다. 규제는 ‘사고를 친’ 몇몇 은행 뿐 아니라, 은행권 전체에 적용된다.

“단기대책은 잘됐다. 그렇게 해야한다. 이젠 길게 봐야 한다. 급하게 불 껐으니, 무리가 생길 수 있다. 조절을 좀 해야 한다. 문제가 터졌다고 아예 접근 자체를 막아 사고를 안나게 하는 방향은 옳지 않아 보인다. 은행이 투자상품이나 신탁을 안팔면 소비자에게 불리하다”

내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의 유연함을 기대했다.

“방향은 맞다. 다만 처음 시행하니 조정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투자책임 원칙도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최근 사모펀드 사태를 겪으며 많은 보상과 배상이 이뤄졌고, 이런저런 논란도 있었다. 금융회사에 엄한 제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투자자들도 자기책임을 감수하는 문화가 명확해져야한다. 그렇지않으면 모럴헤저드가 생긴다. 불합리하게 물어주는 돈은 결국 다른 고객, 주주, 정부의 비용이다. 전례가 관례가 돼선 곤란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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