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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돌아간 ‘상계동 슈바이처’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무료진료를 해왔던 ‘이 시대 마지막 왕진의사’, ‘상계동 슈바이처’ 김경희 은명내과 원장이 지난 22일 향년 101세로 별세했다. 세브란스의전(연세대 의대 전신) 출신인 김 원장은 해방 전 보육원 아이들을 치료하고 광복 후 일본 및 만주 등지에서 귀국한 무의탁 동포들의 무료진료하면서 봉사의 길을 시작했다.

1984년 상계동에 ‘은명내과’라는 의원을 열고 신림동, 청계천, 상계동 등 당시 달동네라 불리던 곳에서 도시빈민을 위한 무료 진료, 무의탁 노인과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심부름 서비스, 가정환경이 불우한 청소년을 위한 장학사업 등을 실천해 왔다. 전국민의료보험 제도가 정착되기 전인 1989년까지 진료비로 1000원만 받는 ‘천원 진료’ 는 유명하다.

동네에서 빵집을 했던 아들 등 4자녀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고 자립을 권하면서 1996년 4월에는 경기도 하남시와 상계동 등 7필지 6만 5000여평의 토지 등 약 53억여원 규모의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의료원과 모교를 위해 기부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또 다른 인물은 ‘바보의사’로 불렸던 장기려 박사가 있다. 1932년 경성의전(서울의대 전신)을 졸업한 장 박사는 고향인 평양에서 의사로 근무하다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하고 부산에 터를 잡는다. 이후 부산의 한 교회 창고에서 무료진료를 시작으로 봉사를 시작해 복음병원(고신의료원 전신)을 탄생시키고 평생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인술을 베푸는 의사로 살았다. 병원비를 내지 못해 발이 묶인 환자에게 몰래 도망가라고 병원 문을 열어줬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장 박사는 1959년 국내 최초로 간에서 암세포를 잘라내는 수술과 이후 간 대량 절제 수술에 처음으로 성공하는 등 외과계에 공헌한 바도 크다. 1968년에는 정부보다 10년 앞서 의료보험의 모태로 평가받는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결성하여 우리나라 의료보험을 앞당기는 데 선각자가 됐다. 장 박사는 말년에 고신의료원 10층의 24평 남짓한 사택에 거주하며 가진 것 없이 검소한 삶을 살았다.

현시대를 살면서 권위와 명성을 제대로 베푸는 의사는 또 있다. 국내 대형병원 빅4 중 하나인 삼성의료원장을 지내고 2018년 창원으로 내려가 보건소장을 맡아 3년째 일하고 있는 이종철(72) 창원보건소장이다. 권위를 버리면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는 진리를 이 소장은 보여주고 있다.

이 소장은 부임 당시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보건소의 공공의료 기능을 더욱 확대해 주민 건강증진과 보건복지 향상에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창원보건소는 최근 경남 최초의 최첨단 치매예방 로봇 ‘실벗’과 뇌 활성화 인지학습훈련 장비와 가상현실(VR) 장비 등을 도입해 IT 치매안심센터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지역의료기관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서울의 대형병원 못지않은 최첨단의 의료프로그램을 할 수있다는 방증이다.

꼭 오지를 가서 봉사를 하고 가진 것을 다 털어서 사회에 기부한다고 해서 그 시대의 귀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 대신 내가 가지게 된 특별한 재능을 사회로 돌려준다는 그 정신이 숭고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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