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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백(白)과 흑(黑)

백과 흑의 대치는 가파르기만 하다.

서점 매대에 나란히 놓여 ‘적과의 동침’을 하는 두 권의 책. 책 이름은 따로 있지만 백서와 흑서라는 명칭이 익숙하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검증이 필요하지만 판매부수만 본다면 ‘흑의 완승’으로 보인다. 당장 제목싸움에서 승부가 갈린 듯 보인다. 흑서는 ‘한반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반대쪽 백서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으로 ‘조국 사태로 본 정치검찰과 언론’이 부제다. 제목이 다소 자극적인 흑서에 견줘 백서는 논문 같은 느낌이다. 책을 잘 읽지 않은 요즘, 두께도 흑서는 300쪽을 조금 넘는데, 백서는 600쪽에 가깝다. 논문 같은 백서에 비해 흑서는 진중권, 서민 교수 등 촌철살인의 재사들의 대담집이다. 어느 쪽이 눈길을 끌지는 답이 정해져 있어 보인다. 실제로 흑서는 몇 차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반면 백서는 반짝 관심을 받고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고 베스트셀러라고 해 봤자, 과거처럼 100만부 정도는 쉽게 팔려 낙양의 지가를 올리던 시절이 아니다. 흑서도 아직 10만부를 넘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권을 사서 탐독해 볼 생각이었지만 서점에 서서 잠시 읽고 그만두었다. ‘친조국’ 대 ‘반조국’으로 내전을 방불케 했던, 몇 달 동안 들었던 얘기의 재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혹시 조국 전 법무장관을 옹호했지만 흑서를 읽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거꾸로 반조국 전선에서 목소리를 외쳤던 사람 중 백서를 흔쾌히 구입한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구매자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오류 가능성보다 결국 내 생각이 맞았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확인하려고 샀을 것이다. 당연히 상대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조국 전 장관 후임인 추미애 법무장관도 전임 장관 못지않게 끊임없이 논란을 양산하고 있다. 추 장관이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과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측근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을 놓고 여론은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었다. 수사지휘권 발동이 ‘잘한 일’이란 응답과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 둘다 46.4%를 기록했다. 여론이 팽팽할 수 있어도 소수점 첫 자리까지 똑같은, 팽팽한 균형이 두렵기까지 하다. 조국·추미애 장관을 두고 내전이란 표현이 무색지 않을 정도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조국 전 법무장관 청문회에서 ‘언행 불일치’라며 민주당내에서 드물게 쓴 소리를 냈고 공수처 법안에 기권표를 던졌던 금태섭 전 의원이 전격 탈당했다. ‘윤석열 청문회’라고 해야 할 대검에 대한 국감도 흑과 백 대립의 연장선상이다.

흑과 백이 아닌 회색인들이 살아갈 회색지대가 사라지고 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색이 있다. 흑과 백은 극단이다. 흑과 백은 서로 정반대 지점이어서 서로가 성을 쌓고, 선명성을 앞세워 상대를 공격하기에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완충지대가 없는 세상은 결국 역동과 유연을 잃고 사라진다. 내편과 네편, 일도양단, 흑과 백만 있는 세상은 위태롭다. 흑과 백, 명분보다는 실사구시를 추구하고 타협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회색주의자들이 늘어나야 한다. 흑백이 아닌 다채로운 생각들이 자주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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