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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엔 ‘본캐’…천무 스테파니 킴 발레무대
걸그룹 천상지희 출신 발레리나
첫 창작발레 ‘레미제라블’ 코제트役
섬세한 감정 연기…24일 무대에
“내게 발레는 심폐소생이예요”
부상·공백 딛고 LA발레단 합격
한국유일 ‘메소드 티칭’ 자격증도
“‘부캐’ 가수·배우로도 팬 만날것”
걸그룹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출신 발레리나 스테파니가 세계 최초 창작 발레 ''레미제라블''에서 코제트 역을 맡아 관객과 만나고 있다. 스테파니는 “발레는 내게 심폐소생이었다”며 각별한 애정을 전했다. [댄스씨어터샤하르 제공]

‘춤’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찔한 킬힐에 불편한 무대 의상을 입고 과격한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독보적’인 매무새였다. 손끝, 발끝으로 이어지는 ‘우아함’도 잃지 않았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지만 그의 이름은 지난 15년의 역사가 됐다. ‘하늘의 춤’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담은 이름 ‘천무 스테파니’. “그 이름이 저를 수면위로 올라오게 해줬어요.” 2005년 그룹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로 데뷔한 스테파니 킴(33)의 30대는 15년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을 그려가고 있다.

요즘 그는 일주일에 6일씩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스테파니의 ‘본캐’인 발레리나로서 무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한양대학교 연습실에서 만난 스테파니는 댄스씨어터샤하르의 지우영 안무감독이 선보이는 세계 최초 창작 발레 ‘레미제라블’(24일 공연, 노원문화예술회관)의 리허설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코제트 역할을 맡아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무대에 서며 발레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요. 코로나19로 공연이 연기와 재개를 반복하다 보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두가 지친 상황이지만 그래도 무대에 오르는 이 과정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신이 나서 하고 있어요.”

사실 부담도 만만치 않다. “제게 발레는 잘해야 본전이거든요.” 다섯 살에 처음 토슈즈를 신었다. 국제 콩쿠르를 휩쓸며 상을 받았고, 한국어가 미숙했던 때에 검정고시를 보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발레리나로 명성이 높아 2011년부터 현재까지 LA시의 문화대사로 활동 중인 정통파이지만, 대중의 시선에 스테파니는 무용수가 아닌 연예인으로 먼저 다가온다.

“발레리나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색안경을 쓴 시선도 여전히 많아요. 가수가 무슨 발레냐는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항상 최대한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어요.(웃음)”

이번 작품에선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유일한 여주인공이라는 무게도 짊어졌다. 이미 연극 뮤지컬 영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을 발레로 선보인다는 점도 적잖은 부담이었다. “발레는 뮤지컬과 달리 화려한 무대 세팅이 없어요. 이 빈 공간을 무용수가 채워줘야 하고, 스토리가 있는 발레에선 감정까지 오롯이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아요.” 최근 몇 년 사이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오가며 쌓아온 연기 경험은 몸으로 희노애락을 전달해온 발레리나에게 자양분이 되고 있다. 감정의 표현 방식과 깊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용수는 배우가 아니기에 연기를 겸하는게 쉽지 않는데, 무대에서의 연기 경험들이 피와 살이 됐어요.”

리허설을 하는 날이면 하루에 7~8시간씩 토슈즈를 신는다. 넉 달째 모든 감정을 쏟아내며 연습에 매진하면서도 스테파니에게선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5년이 그랬다. 가수로, 배우로, 발레리나로 달려온 시간 동안 스테파니에겐 그리 긴 휴식은 없었다. TV 화면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스테파니의 상징 같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쉬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건 좋아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열정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탄탄대로만 걸었거나, 절망도 좌절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 건너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철저한 트레이닝을 받고 가수로 데뷔해 보낸 긴 시간을 스테파니는 “버라이어티한 인생이었다”고 돌아본다. “시력이 나빠지면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너무 많이 써서 복구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예기치 못한 부상에 쓰러진 적도 있었다. 2008년 천상지희 일본 콘서트를 준비하던 중 찾아온 허리 부상은 공백기를 불러왔다.

“그 때 부상으로 8개월을 누워 있었어요. 참 많이 배웠어요. 하루에 11시간씩 춤을 췄는데, 그렇게 하면 뭐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에서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를 몰라 이렇게 누워있었으니까요. 에너지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던 때였어요.”

부상과 함께 온 슬럼프를 겪었으나, 발목을 잡히진 않았다. 다시 토슈즈를 신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오디션으로 LA발레단(2009~2011)에 당당히 합격한 것도, 지금의 메이저리그 출신 남자친구(브래디 앤더슨)를 처음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발레리나로의 긴 인생을 그리며 ‘메소드 티칭’ 자격증도 땄다. 한국에선 스테파니가 유일하게 가진 라이선스다. “발레리나는 수명이 짧아요. 열다섯, 열여섯이 가장 중요한 나이이고, 플레이어로 마흔을 넘기기는 힘들어요. 후배들이 더 오래 건강하게 발레를 할 수 있도록 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제가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이라 생각해요.”

스테파니의 마라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치지 않는 체력엔 운동선수로 평생을 지낸 남자친구가 큰 역할을 한다. “워낙에 포기를 모르는 성격과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져서인지 배우는 점이 많아요.” 요즘 트렌드에 맞게 다양하게 가진 ‘부캐’들도 놓지 않을 계획이다. 때로는 가수로, 때로는 배우로, 여전히 발레리나로 스테파니를 기다리는 팬들과도 꾸준히 만날 예정이다.

“스스로 제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도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인생의 많은 기회들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노래를 했기에 발레를 항상 그리워했고, 발레를 하면서 컨디션을 되찾고 강약을 조절할 수 있었어요. 제게 발레는 심폐소생이었어요. 때론 힘들 수도 있고, 마음과는 다른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런 일들에 매달리진 않으려고 해요. 그동안 해온 것들이 하나의 시너지를 만들 수 있도록 계속 쌓아가려고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버팀목이 돼보려고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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