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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최고 여행작가 정란이 전한 국내여행 감동 “누가 일개 서생을 용납했나”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누가 천만 리 황무지를 개척하여 세상에 나 같은 일개 서생을 용납했나·”

정란(1725~1791)은 단원 김홍도, 문인이자 문신인 체제공 등과 교유하던 18세기 대표적인 여행작가이다. 특히 그는 산에 미쳤다.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태백산, 소백산, 제주도 등 전국을 다녔다. 백두산은 정상까지 올랐고, 금강산은 네 차례나 올랐다.

그는 1785년 유람의 대미를 장식하는 한라산에 올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땅은 곤륜산에서 형세가 일어났고(地自崑崙山起勢 지자곤륜산기세), 물은 성수해에서 신령하게 통했으리(水應星宿海通靈 수응성수해통령), 누가 천만 리 황무지를 개척하여(誰拓幽荒千萬里 수척유황천만리), 세상에 나 같은 일개 서생을 용납했나(世間容我一書生 세간용아일서생).”

우리는 흔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정란은 국내 경승지 여행의 감동을 제대로 형언한 듯 하다.

제주 금오름 왕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는 한국고전번역원의 대국민 힐링 한시 210번째 메시지에서 조선 최고의 여행자 정란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정란은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여행을 자랑하며 글과 그림을 받았다. 채제공, 이용휴, 강세황, 최북, 김홍도의 글과 그림 덕택에 정란의 존재는 잊혀지지 않았다.

명산 유람의 대미를 장식할 제주는 관원이나 유배객이 아니면 갈 일이 없는 오지였다. 바다를 건너는 것부터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게다가 정란의 나이는 이미 환갑을 넘겼다. 이경유와 그의 부친 이승연(李乘延)은 모두 글을 써 주며 정란을 격려했다.

이경유는 ‘창해시안(滄海詩眼)’에 이렇게 기록했다. “창해일사 정란은 사람됨이 기이하고 예스럽다. 노새 한 마리를 사서 이름난 산천을 유람하니 사람들이 모두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만은 기이한 선비로 인정했다.”

선비의 본업과 가족의 생계를 팽개치고 산을 쏘다니는 정란은 ‘미친 선비(狂士)’로 불렸다고 한다. 부지런히 공부해서 하루빨리 관직에 오르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목표였던 주위 선비들의 눈에는 다른 삶을 추구하는 정란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이 시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한 정란의 답변이다. 곤륜산은 백두산의 근원이며 성수해는 황하의 근원이다. 곤륜산 지맥은 백두산까지 이어지고, 황하의 물줄기는 동해까지 흘러온다. 세상은 넓다. 이처럼 넓은 세상에 나 같은 사람 하나쯤 있어도 상관없지 않은가. 이것이 정란의 항변이었다.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본 경험에서 나온 정란의 소신이었다고 장유승 교수는 분석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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