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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가 만든 풍경…골프장은 인산인해, 그린피는 천정부지
캐디피 카트피 그린피 올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부킹
“경기침체로 가벼워질 주머니 상황 대비해야” 경고도
골프장들이 몰려드는 골퍼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사태로 점점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골퍼들이 늘어나면 상황은 변할 수도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헤럴드경제=김성진 기자] # 40대 직장인 정 모씨는 지난 주 강원도 모 골프장의 부킹을 알아보고 있었다. 마침 오전 6시37분 티오프시간이 하나 비어 어플 인증번호를 받고 있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티타임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날이 더워지면 평일 낮 부킹은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서울에서 어지간한 거리의 골프장 부킹은 하늘의 별따기라며 혀를 내둘렀다.

#사업을 하는 50대 이모 씨는 아내와 함께 골프를 함께 즐기는 취미를 갖고 있다. 부부골퍼들이 많이 있는 밴드 여러 곳에 가입해 함께 라운드를 잡기도 하고, 조인 게시글이 올라오면 선택해서 필드에 가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 한 조인 글에 참석의사를 밝혔는데 당일날 게시자가 '나는 못가니 다른 사람하고 쳐라'고 연락이 왔고, 불편한 심정으로 나가야했다고. 나중에 해당 골프장이 부킹브로커에게 시간대를 블록판매하고 브로커가 여기에 이윤을 붙여 다시 판다는 내용을 듣고는 더욱 불쾌한 심정이었다.

골프시즌이 한창이다. 필드 라운드를 하려는 골퍼들은 치열한 부킹전쟁에 내몰렸다. 대학이나 학원 인기과목 온라인 수강신청이나 아이돌의 콘서트표 구매 경쟁 저리가라다.

코로나시대에 유일한 ‘호황업종’이 있다면 아마 골프장이 아닐까 싶을 만큼 지금 주말골퍼들의 필드부킹은 어려운 상황이다. 골프시즌이 한창인 때라고도는 해도 올초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아직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다 지난달부터 30도를 웃도는 이른 무더위까지 겹쳐 ‘부킹난’이 이렇게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국내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둔감했던 미국이나 유럽도 감염을 우려해 골프장 운영을 중단시키는 지역이 늘고 있는데 한국은 예외다.

재택근무가 늘고, 회식이나 단체모임은 줄어들면서 바깥활동이 급감해 에너지를 필드에서 분출하려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골프는 그나마 캐디 포함 5명의 소규모 인원만 접촉한다는 점도 골퍼들의 경계심을 허문 것으로 보인다.

골프연습장도 마찬가지다. 강남의 한 유명 골프연습장에서는 내장객이 늘면서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회원을 너무 많이 받은 거 아니냐’며 항의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20~30대 골프인구가 스크린골프의 영향으로 늘어난데다, 해외로 빠져나가던 골프투어 이용객들이 하늘길이 막히면서 국내 골프장으로 몰린 것도 부킹대란에 일조했다.

골프시즌을 맞아 필드를 찾으려는 골퍼들이 늘어나면서 부킹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국내 최대여행사인 하나투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해외골프투어를 떠난 사람은 8300명이다. 이는 지난해 3만3000명, 2018년 3만4000명에 비하면 현저하게 감소한 수치다. 여행사 상품을 택하지 않고 떠나는 소규모 개별 골프투어여행객들이 제외된 통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유턴 골퍼들의 숫자는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들은 금전적, 시간적 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국내 골프장을 이용하는 횟수도 일반 주말골퍼보다 많은 계층이다.

회원제는 상황이 다르지만, 온라인으로 예약을 받는 대부분의 퍼블릭골프장은 원하는 티타임을 예약하려는 골퍼들간의 속도경쟁이 뜨겁다. 1만원 할인을 해준다며 회원가입을 요구하는 퍼블릭골프장들은 과거 평일 팀수를 채우기 위해 그린피 할인을 알리는 문자공세를 펴며 구애를 했지만, 지금은 전세가 역전됐다. 주말은 당연히 풀부킹이고, 평일도 서울에서 2시간 언저리 이내의 골프장은 빈 자리가 없다. 그나마 저렴했던 야간라운드나, 이른 새벽, 평일 낮도 마찬가지다.

업무상 골프를 칠 일이 많다는 직장인 박 모(50)씨는 “보통 퍼블릭 골프장 예약은 3주~1달 전부터 가능한데 요즘은 약속이 잡히면 미리 골프장에 전화해 인터넷 예약 언제 오픈되냐고 물어본 뒤 오픈 당일 0시 1분에 예약한다. 술 한잔 하고 깜박했다가 아침에 들어가면 이미 매진”이라면서 부킹난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인터넷 예약사이트인 엑스골프의 예약률을 살펴보면 지난 1월 1만3709건이던 예약이 계속 증가했고, 지난 5월에는 5만9599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격 골프시즌인 6월부터는 골프장들이 수요가 충분해 예약사이트에 티타임을 잘 주지 않는다.

이때문에 수십만명이 사용하는 골프부킹 어플들이 예전에는 빈 시간을 골라잡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지만, 지금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캐디피와 카트피가 각각 13만 원과 9만 원으로 1만원씩 올린 골프장들이 급증하면서 비용부담도 늘었지만, 골프를 치려는 골퍼들의 수요가 급증하다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감수하고 부킹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골프장들은 '대목'을 맞아 비인기 시간대의 그린피도 할인폭을 줄이거나 제값을 받고 있다. 그래도 수요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강원 충청권 골프장들은 대부분 할인판매하던 낮시간도 가격을 올리며 몰려드는 골퍼들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나마 저렴한 골프장을 찾는 이들에게는 호남권의 사우스링스영암, 무안CC 등 그린피 10만원 초반대인 골프장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당일 코스로 다녀오기에는 먼 거리가 부담스럽다.

수도권의 한 인기 퍼블릭골프장 관계자는 “3, 4월까지만 해도 예약을 했다가 취소하는 이용객들이 적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며 “아직까지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단체로 식사를 하는 경우는 예전에 비해 줄었지만 부킹은 거의 빈 시간대가 없다”고 설명했다.

골프장들은 최근의 '코로나특수'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이런 상황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에는 몸을 사린다. 소규모 자영업을 비롯해 철강 조선 정유 등 수출길이 막힌 산업 전반이 코로나로 침체되고 매출절벽에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잘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도와 지방의 퍼블릭 골프장은 취재요청을 정중히 사양하기도 했다.

골프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공급보다 많은 상황에서 골프장의 코로나특수는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기침체로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있어 이런 상황은 머잖아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그렇지않아도 골프장들이 캐디피, 카트피를 약속이나 한듯 올린데다 10만 원대 초중반이었던 그린피가 10만 원대 후반, 혹은 20만 원대까지 치솟으면서 평범한 주말 골퍼들이 라운드 한번 하려면 25만~30만원 가까운 비용을 써야하는 실정이다. 이전에는 평일 낮시간대 등을 이용해 젊은 골퍼들이나 주머니가 가벼운 골퍼들도 월 1,2회 정도 필드를 나가는게 큰 부담이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두번 갈 라운드를 한번으로 줄이거나, 수도권 대신 멀더라도 지방으로 행선지를 바꿀 수도 있다. 스크린골프장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서천범 레저연구소장은 “코로나 사태 이후 골프장 이용료가 크게 인상되고 있지만 국내경기의 침체로 주머니가 가벼워진 골퍼들이 값싸고 좋은 골프장을 선호하고 있다”며 “특히 수도권, 강원권, 충청권 골프장의 이용료가 많이 올라가면서 상대적으로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이용료 싼 호남권 골프장들이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금 골프장, 특히 말로는 퍼블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도 고가의 그린피를 받고 있는 골프장들이 골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항상 논란이 되는 카트피도 골프장이 많은 팀을 받기 위해 사용하는 시스템이면서도 사용비용을 골퍼들에게 전가시킨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 그것도 1만 원을 올린 상황이다.

당장 입에 달다고 그린피 올리고, 부킹예약 업무 번거롭다고 브로커에 도매로 넘기는 골프장들이 늘어난다면 불만이 늘어난 골퍼들이 외면할 수 있다. 당장 해외여행이 풀리기 시작하면 상당수의 골퍼들이 국내 필드 대신 저렴한 해외골프장을 찾을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더 이상 황금을 얻을 수 없다. ‘대중들이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며 회원제에서 퍼블릭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회원제보다 비싼 퍼블릭까지 등장하는 것이 일부 골프장들의 민낯이다. 퍼블릭으로 전환하면 세금이 줄어드니 그린피를 낮춰 골퍼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던 말은 이제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기를 보내는 골프장들. 골프장은 적고 칠 사람은 많다고 수익증대에만 올인한다면 달갑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2000년대 초반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골프장들이 리먼 사태 이후 맞이했던 암흑기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withyj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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