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헤럴드포럼] 한국판 뉴딜, 투자확대와 규제개혁 병행해야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한국판 뉴딜’이 윤곽을 드러냈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에 휴먼 뉴딜을 더해 오는 2025년까지 총 76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55만개를 만들겠다고 한다. 한국판 뉴딜은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을 넘어 ‘선도형 경제기반을 구축해 나가기 위한 전략’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국판 뉴딜은 필요하고, 정부 재정을 동원한 대규모 투자도 환영할 만하다. 내용상 새로운 게 없다지만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기존에 발표했던 국토균형발전사업이나 생활형 사회간접자본(SOC) 및 노후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실제로 가시화되리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당장의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투자 확대가 중요하다. 특히 민간의 투자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는 정부의 재정투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선도형 경제기반 구축’은 재정투자 확대만으로는 어렵다. 실행과 속도보다는 전략이나 목표와 방향성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규제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목표와 방향, 경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경쟁자와 확연한 차이가 나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서 실행해야 한다. 번번이 규제를 기반으로 한 기득권 집단의 이해관계에 막혀서 혁신이 좌절된다면 ‘선도형 경제’는 요원하다.

한국판 뉴딜에 건설투자가 대거 포함된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건설산업을 선진화할 수 없다. 구조조정과 규제개혁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좀비기업 양산과 부정·부패 및 비효율성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건설산업에서도 규제개혁은 본격적인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규제가 더 강화되기도 한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소방시설공사 분리 발주가 그런 사례다.

글로벌 건설산업의 발주제도는 통합 발주가 대세다. 시공은 말할 것도 없고, 설계와 시공, 시공과 운영 및 유지관리를 통합해서 발주하기도 한다. 시공자가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는 방식도 널리 활용되고, 사업 초기에 발주자와 설계자·시공자·하도급자 등이 모두 참여하는 ‘통합 프로젝트 발주 방식(IPD)’도 종종 활용된다.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오랫동안 설계는 설계사가, 시공만 건설사가 담당해왔다. 시공도 전기나 정보통신공사는 반드시 토목공사나 건축공사와 같은 다른 업종 공사와 분리 발주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소방시설공사도 분리해서 발주해야 한다는 규제가 신설된 것이다. 이에 따라 수요자인 건축주는 1건의 건축공사를 발주할 때 전기공사, 정보통신공사에다 소방시설공사까지 제각각 따로 발주해서 따로 계약 체결하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적인 건설사업관리가 제대로 되기 어렵다. 공사 기간의 준수나 품질 확보는 물론 안전사고나 하자 책임의 원인 규명이 곤란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전기, 통신, 소방시설공사의 분리 발주를 정당화하는 주장도 있다. 품질과 안전확보에 필요하고, 하도급자를 원도급자로 격상시켜 보호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분리발주를 해야만 품질과 안전확보가 가능한지는 의문스럽다. 오히려 더 취약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하도급자 보호를 위한 규제는 지금도 대단히 많다. 모든 하도급자를 원도급자로 만들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4차 산업혁명은 융합과 통합을 특징으로 한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와 시공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설계 따로 시공 따로, 시공도 업종별로 제각각 분리발주를 강제해서는 융합과 통합을 기대할 수 없다. 가뜩이나 건설업종이 수십개로 파편화돼 있는데 발주조차 통합 발주가 아니라 분리 발주가 확대되면 비효율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선도형 경제 기반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투자 확대와 더불어 규제도 퇴행적이 아니라 선도적인 내용으로 변모해야 한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