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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5월 농부·8월 신선

‘오월 농부 팔월 신선’. 뙤약볕 아래서 ‘발등에 오줌 쌀’ 정도로 분주하게 돌아가던 농사일이 그 고단함을 내려놓는 때가 음력 8월이다. “유월 저승을 지나면 팔월 신선이 돌아온다”며 고단함도 애써 잊었다.

그래서 추석은 ‘등거리(등만 덮을 만하게 걸쳐 입는 홑옷) 마를 날 없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다같이 어울려 즐기는 날이다. 하지만 말이 좋아 ‘팔월 신선’이다. 명절 분위기에 들썩였던 재래시장도, 대형마트도 등거리 마를 고단함을 내려 놓지 못한다.

급격한 세대 변화, 진공 청소기마냥 빨아들이는 e-커머스 시장의 팽창 등 시대변화를 거스를 장사는 없다. 온 국민을 집단 무기력감에 빠뜨릴 정도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 소비자들의 지갑은 얇아지고만 있다.

그래서 인지 지난 설까지만 해도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판촉행사를 벌였던 업체들은 올 추석에는 아예 행사 자체를 없애거나 축소하는 분위기다. 사람들이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데 굳이 판촉행사를 벌일 필요가 있냐는 생각에서다. 판촉비, 유통수수료 등으로 새는 돈을 아껴 수익성도 개선할 수 있다.

고단한 리스트에 빠진 게 하나 더 있다. 이 녀석은 상식적·합리적 의식의 선상에서만 보면 얼마든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여전히 맹위를 펼치고 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가 전국 189개 시·군·자치구에 공문을 보내 읍소하고 있지만, 이 녀석의 고단함은 간단치 않다. 의무휴업 얘기다.

공교롭게 올해 추석을 앞둔 바로 전주 일요일(9월 8일)이 의무휴업일이다. 적게는 추석 매출의 15%, 많게는 17%가 추석 전주 일요일에 발생한다. 난파선에 곧잘 비유되곤 하는 오프라인 대형마트로선 포기할 수 없는 날인 셈이다.

재래시장을 살리는 묘약처럼 포장되곤 하는 의무휴업이 약효가 전혀 없다는 건 상식이 됐다. 정치적인 이유로 용도폐기에 어물쩍거리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구시대적, 모순 많은 제도라해도 의무휴업 날짜는 추석당일로 바꾸는 유연함은 얼마든지 발휘할 수는 있다. “이거야 말로 기울어진 운동장 아닌가요? 그럼 온라인 쇼핑몰도 모두 문을 닫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라는 유통업체 관계자의 항변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잠시 2016년으로 돌아가보자. 그 때도 추석 전 일요일이 둘째주 의무휴업일이었다. 일요일에 장을 보지 못하다 보니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토요일에 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일부 지역에선 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간보다 주차하고, 차를 빼는 데만 곱절이 걸린 곳도 있을 정도였다. 소비자권이 박탈당할 때, 소비자들이 겪는 불편함은 이만저만한게 아니다.

또 하나. 전주 일요일에 문을 닫다 보니 업체들은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추석 당일 영업을 한다. 당일 영업은 최근 몇년 사이에 도진 병이다. 마트 직원들은 다 같이 어울려야 할 추석에 일터로 내몰린다.

소비자와 근로자, 기업 모두 불편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불편한 단어가 공론화되지 않게끔 불편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정치와 법이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이다. 그래야 등거리 마를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고 ‘팔월 신선’도 상상할 수 있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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