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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정의 현장에서] ‘극일’ 혹은 ‘극여당’

‘제2의 독립운동’, ‘신흥무관학교’, ‘경제임시정부.’ 사흘 전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협의회에서 쓰인 단어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을 방불케 했다. 당대표회의실 벽면에 걸려진 ‘오늘의 대한민국은 다릅니다. 다시는 지지 않습니다’라는 백드롭은 비장함을 더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일본경제보복 사태를 ‘경제한일전’이라고 칭하며 일본에 대한 대응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정청협의회에서 “지난날 신흥무관학교가 수많은 독립운동의 핵심 인재를 키워낸 것과 같이 수많은 다중·다양한 기술무관학교들이 들불처럼 중흥하도록 경제적, 재정적,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국회는 ‘경제 임시정부’를 자임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6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회의실에는 ''한일 경제전쟁 여야가 따로 없습니다!'' 글귀가 적힌 회의장 배경막이 새로 걸렸다. [연합]

여당이 꺼낸 대응책의 수위는 한층 더 높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폐기론이 제기된 데 이어 최재성 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위원장은 방사능 위험을 이유로 일본 여행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과위원회의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신동근 의원은 같은 이유로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당정 협의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 지도부가 강경론을 이끌고 가는 사이 민주당 의원들도 극일 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의원들은 ‘일본의 경제침략, 국민과 함께 이겨냅니다!’라는 문구의 손팻말을 들고 찍은 ‘인증샷’을 공유하는 인증샷 릴레이를 준비 중이다. 광복절을 일주일여 앞둔 시점에서 여당의 극일 운동은 이같이 최고조로 달하고 있다.

민주당의 극일 여론전에 브레이크는 없는 모양새다. 민주당 의원들 그 누구도 이같은 감정 여론몰이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은 없다. 대다수는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 이후 상승하고 있는 민주당의 지지율에 고무되어 있을 뿐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의 상황은 딴 판이다. 한국당은 ‘극일’이 아닌 ‘극여당’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당은 연일 정부 무능론을 꺼내들며 각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경제정책 대전환 없이는 극일이 없다며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꼽고 있다. 그러나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 외엔 구체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정부가 수수방관한 끝에 한일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고 그 결과 우리 국민과 기업이 볼모로 잡힌 형국”이라며 정부 탓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중에 나온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총선전략 보고서 등을 종합해 볼 때 한일갈등 극대화에는 이 정부의 정략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의심 아닌가 싶다”라며 비난의 화살을 민주당에 향했다.

그 사이 송언석 한국당 의원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개인청구권이 포함됐다고 본다”며 아베 정권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지만 이에 대해 그 누구도 수습하지 않았다. 내부를 돌아보기보단 그저 밖에서 비난하기 바쁠 뿐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한국당은 구체적인 정책이나 대안보단 ‘각 세우기’라는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 정치권은 일본의 전례없는 경제보복 조치 앞에서 이 같이 ‘극일’과 ‘극여당’으로 나뉘어 있다. 정치권의 감정 여론전과 정쟁에 국민들은 그저 실망감만 느낄 뿐이다. 서울 중구청이 6일 도심 한복판에 일본 보이콧을 알리는 배너를 걸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내렸다. 이 사례만 봐도 정부 차원의 감정 여론전에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쉽게 알 수 있다.

국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해있다. 이는 감정 여론몰이나 정쟁의 목소리로 덜어지는 불안감이 아니다. 정부의 냉철한 대책과 여야의 초당적인 협력만이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 정치권이 당 지지율 숫자에 혈안이 된 모습을 보이기보단 냉철한 대책과 성숙한 정치 문화로 무장해야 할 시점이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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