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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불타는(?) 애국심이 애먼 국내기업 애 태운다
요즘 일본 탓에 나라가 시끄럽다.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것도 괘씸한 일인데 경제보복이랍시고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 길까지 막았다. 반도체가 우리나라 수출의 5분의 1이나 차지하다보니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8.5%나 떨어진다는 비관적인 예측까지 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에 불이 붙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맹목적인 믿음’이 진실을 좇는 눈과 귀를 가리듯이 요즘 일본에 대한 뜨거운 분노는 과도한 ‘불매 운동’으로 증폭돼 애먼 기업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실제 일본 기업이 아닌데도 불매운동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공식 홈페이지에 ‘우리는 일본 기업이 아닙니다’라고 호소해도 ‘공허한 메아리’마저 없이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회사는 바로 편의점 세븐일레븐이다. 세븐일레븐은 일본 편의점 업계 1위인 회사이긴 하지만, 사실 모태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에 설립된 사우스랜드사다. 실제 고향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인 셈이다. 다만 1970년대 일본에 진출한 이후 급성장했고, 본사가 어려워지자 일본 슈퍼체인 이토요카도가 1991년 주식의 과반을 사들였다. 이후 2005년에는 나머지 지분을 모두 매입해 일본계로 분류됐다. 하지만 한국법인인 코리아세븐은 일본 세븐일레븐이 아니라 미국 세븐일레븐과 계약해 1989년에 설립됐고, 지금은 롯데지주가 지분 80%가량을 보유한 한국회사라는 게 세븐일레븐측 설명이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CU는 예전에 일본 훼미리마트 브랜드를 빌려 쓰다가 2012년 라이센스 계약이 종료되면서 한국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훼미리마트에서 CU로 이름을 변경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훼미리마트 적 기억을 되새겨 CU를 불매 대상에 올리고 있다.

다이소도 업체명을 일본 다이소에서 가져와 일본 브랜드로 오해받지만, 사실 아성HMP가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한 한국기업이다. 물론 일본 다이소가 2대 주주로 3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재무적 투자자에 불과하다는 게 다이소 측 설명이다. 합작 회사의 본사가 일본에 있다는 이유로 한일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불매 대상이 되는 건 사실 억울할 수 있다.

다국적 기업들 중에도 일본 회사라 오해받거나 일부 제품이 일본에서 개발돼 한국에 들여왔다는 이유로 불매대상에 포함되기도 한다. 한국코카콜라가 판매 중인 조지아커피, 토레타 등도 첫 개발은 일본코카콜라가 했지만, 이후 한국코카콜라가 국내 소비자의 입맛과 기호에 맞춰 재개발한 상품이다. 이에 브랜드 로열티 역시 한국코카콜라가 보유 중이다. 상호명에 ‘일본’이 들어가는 담배회사 JTI(Japan Tobacco International)코리아도 사실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JTI그룹 소속 기업이다.

사실 불매운동 참여 여부는 소비자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두고 우리가 곰곰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감정적인 대응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원인은 한일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지 못한 양국 정부의 무능함이다. 애꿎은 기업만 탓하는 것은 소비자에게도, 기업 당사자에게도, 시장에도 좋지 못하다.

국내기업이 일본기업으로 ‘오해’를 받아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불매운동 리스트에 올랐지만 그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다. 특히나 내수경기가 꺾이는 이 시점에서 불매운동에 따른 이들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훼손은 장기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양국 정부가 파워게임을 하느라 ‘이성’도 ‘현명함’도 버렸다고 해서 우리까지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다. 마음 속에서 불타 올랐던 ‘분노’를 잠재우고, 차가운 머리로 현실을 직시할 때다. 

신소연 소비자경제섹션 컨슈머팀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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