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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그나마 오신환의 재발견
윈스턴 처칠 같이 격조 있으면서도 강렬히 귓전을 때리는 명연설은 당초 기대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의 감동의 졸업식 연설 같은 수준은 더더욱 바라지 않았다. 그냥 왜 민생이 힘들어졌는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으로 희망은 있는지 정당대표의 입을 통해 조금은 알고 싶었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을까. 단 한톨의 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지난주 여의도를 달궜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다. 순전히 ‘개인적 평가’이기에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차례대로 국회 단상에 올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의 기회를 가졌다. 40분이 주어지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20석이 넘는 정당이 국민을 향해 국정 아젠다를 제시하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당 정책의 선명성을 부각할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다. 소수 정당은 공식적으로 대표연설을 가질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보면 엄청난 특권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여당과 제1 야당은 이런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했다. 정책이나 미래비전 제시는 없고, 상대방에 대한 힐난과 공격으로만 얼룩졌다.

이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공존의 정치’를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공존 방향이 없어 공감을 얻기에 부족했다. 그저 ‘공자님 말씀’처럼 들렸다. 국회 파행을 둘러싼 원인 진단에도 집권당 리더십에 대한 성찰과 반성보다는 자유한국당에 화살을 돌리는 것으로 일관했다. 정책적으로도 알맹이가 없다보니 집권당 원내사령탑의 무게감은 생각보다 떨어졌다.

‘나다르크’라는 별칭을 이어가기로 작심을 했는지 나 원내대표는 아예 ‘독설 잔치’를 한판 벌였다. 문재인 정부를 ‘신독재’로 규정하면서 연설문을 쓴소리로만 도배했다. ‘독재’라는 단어를 10번 썼다. 비판이야 자유지만, 문제는 독설에 치중하다보니 ‘경제’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정부 경제실정에 대한 제1 야당의 예리한 견제구를 잔뜩 기대했는데, 귓전엔 악담만이 들려왔다. 80여일간의 ‘식물국회’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도 없었다. 한마디로 낙제점 수준의 연설이었다.

오신환 원내대표 연설은 그나마 나았다는 점이 다행이다. 적절한 비판과 대안제시 노력은 3자중 돋보였다. 구체적인 비전 실현 부분에선 다소 아쉬웠지만 말이다.

오 원내대표가 연설한 이날은 여의도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자유한국당 의원과의 점심 자리였다. 그 의원이 앉자마자꺼낸 얘기가 바로 교섭단체 대표연설이었다. “아까 오 원내대표 연설을 봤는데, 오신환 다시 봤어요. 과하지 않되 할 말은 다 하던데요. 3당 원내대표 연설 중 최고였어요. 제가 오 대표에 칭찬을 드렸고, 그 연설을 프린트까지 했잖아요?”

“그럼 나경원 원내대표보다 더 연설이 좋았다는 뜻이네요”라고 묻자 “하하하”라며 웃어 넘긴다.

오랜기간의 ‘파업’을 끝낸 국회가 곧 대정부질문과 추경 심사 등의 굵직한 현안을 소화한다. 본격적으로 민생으로 갈 기회다. 지난주 교섭단체 연설같은 삿대질정치를 벗고 생산정치로 가길 바란다. 계속 싸울거면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라는 영광의 타이틀 먼저 반납하라. 

김영상 정치섹션 에디터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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