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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현장에 답 있다…33년 공직맨의 자본시장 도전기
운용자산 13조 대한지방행정공제회 한경호 이사장…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 공동투자 체결 막전막후

한경호 대한지방행정공제회 이사장은 “가족들을 위해 한푼의 돈도 헛되게 쓰지 않는 일반 공무원의 마음으로 13조원의 자산을 운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업적을 세우려는 욕심을 버리고 전문가들을 믿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그의 투자 철학이다. 정희조 기자/checho@

“이쪽 업계에선 절 이단아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단지 우리 회원들의 회비, 국민 세금을 운용하는 현장을 직접 찾아 갔을 뿐인데 말이죠. 당연한 것 아닌가요?”

한경호(56) 대한지방행정공제회 이사장은 겸연쩍은 듯 엷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가무잡잡한 피부, 콤비 차림의 양복, 낡았지만 정갈한 구두. 옷차림은 검소해도 그가 좌우하는 돈은 결코 검소하지 않다. 운용자산이 무려 13조 1000억원(5월 말 기준)이다.

“벌써 취임 9개월이 지났다”는 말에 그는 “엊그제 같은데 그렇게 많이 흘렀냐”고 되물었다.

한 이사장은 지난해 9월 경상남도 행정부지사 직을 떠나 제 12대 행정공제회 이사장 자리에 취임했다.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 공동투자, 최대 성과”=지난 5월 행정공제회는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과 공동투자(JV)를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자연스레 인터뷰는 체결 막전막후로 시작됐다. 한 이사장 스스로도 이번 체결을 취임 후 가장 보람있는 성과로 꼽고 있다.

그는 “흔히 MOU라고 하면 실효성도 없는 약속을 하고 악수 사진을 촬영하는 요식행위 격이 많지만, 이번 MOU는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번 MOU를 통해 행정공제회는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과 총 8800억원 규모 투자를 5대 5 비율로 진행하게 된다. 미국 연기금 2위 수준의 자산 규모(260조원)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기금과 공동투자에 나서는 건 국내는 물론, 아시아 연기금 중에서도 첫 사례다.

통상 연기금이나 공제회가 해외투자에 참여할 때 출자금을 내는 형태로 이뤄진다. 쉽게 말해 돈만 맡긴다. 하지만 이번에 행정공제회는 캘퍼스와 함께 직접 투자처를 발굴한다.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연기금과 동등한 입장에서 투자한다는 뜻이다.

한 이사장은 “새로운 투자 모델을 제시하게 된 것”이라며 “다른 연기금보다 해외투자, 대체투자에 일찍 뛰어들어 이름을 널리 알렸 때문에 이 같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7년 36.2%에 불과했던 행정공제회의 해외투자 비중은 지난해 41%로 올라섰고 올해는 49.1%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대체투자의 경우 2017년 54.7%에서 2019년 58.4%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는 “글로벌 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대다수 연기금들이 수익률 방어에만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이럴 때 일수록 경기가 반등할 때 고수익을 낼 딜을 찾아야 한다”면서 “이같은 딜은 꾸준한 신뢰관계를 맺은 전략적 파트너를 만들어두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행정공제회는 하반기 이번과 같은 형태의 공동투자를 진행할 카운터파트를 만들기 위해 유럽과 일본의 유수 연기금과 접촉하고 있다.


▶운용사 직접 모두 방문…업계가 깜짝=“돈을 맡긴 고객이 직접 그 돈을 운용하는 상황을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내마음 처럼 돈을 굴리지 않는다”는 것이 한 이사장의 지론이다.

한 이사장은 최근 미국 출장길에서도 공제회의 해외 대체투자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PCCP, USAA, CBRE 등 굴지의 대체투자 운용사를 모두 방문했다. 각사 CEO(최고 경영자)와 CIO(최고투자책임자)를 만나 운용현황을 직접 파악했다.

규모 10조원의 PCCP는 이번 공동투자 자산을 운용하기로 했고 USAA는 미국 연방정부 직원과 군인을 대상으로 약 300조원을 운용하는 특수보험회사다. CBRE 역시 글로벌 최대규모의 부동산 투자회사로 꼽힌다. 이처럼 쟁쟁한 운용사 임원이 직접 투자자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일은 드문 경우다. 그만큼 행정공제회의 자산 운용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취임 초 국내 자산운용사를 모두 돌며 인사를 다닌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10조원이 넘는 돈을 굴려 자본시장에서는 ‘갑 중의 갑’으로 통하는 공제회 수장이 자산운용사를 먼저 찾아가는 것 자체가 ‘파격’이다. 한 곳에만 그치지 않고 빠짐없이 직접 운용사를 모두 돌았다.

파격적이란 평가에 한 이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행정공제회의 운용자산이 어디서 나옵니까? 28만 지방행정공무원이 한푼 두푼 모아 낸 회비에서 나온 것이고 결국은 국민 세금 아닙니까. 집사가 주인의 자산을 지키고 불리기 위해서는 어디든 그 현장을 찾아가서 머리를 굽신거리기도 하고 아쉬운 소리도 해야 마땅한 일이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평생 공직생활 유산, 현장 또 현장=현장을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은 반평생을 바친 공직생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한 이사장은 기술고시 출신이다.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 농대를 나왔고, 1985년 기술고시 농업직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놨다. 본인의 인생을 “역마살이 끼었다”고 자평할 정도로 여러 부처를 돌아다녔다.

한번도 자신이 원하는 부처로 인사발령이 난 적이 없다는 그는 “ ‘나에게 왜 이리 시련이 많을까’ 고민도 많고 한때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결국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항상 현장을 누비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행정공제회 수장이 되니 그의 이력은 이사장으로서의 값진 경쟁력이 됐다.

한 이사장은 “소방방재청부터 지방자치발전위원회까지 두루 거치면서 안 겪은 업무가 없다”며 “누구보다 지방행정공무원들의 업무 특성과 고충, 고민을 잘 알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처우와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경남도 행정부지사 시절 주말마다 3~4시간의 이동을 마다 않고 행정현장을 돌며 주민들의 애로 사항을 직접 듣던 그는 취임 후 직원들의 의식과 행태를 보다 적극적으로 바꾸는데 온 힘을 쏟았다. 연공서열에 따라 1~2급 직원만 임명되던 팀장 자리에 성과에 따라 3급 직원 3명을 발탁 인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어느 조직이나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들을 설득하다 안 되면 충격요법을 쓸 수 밖에 없다”며 “자본 시장은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무한경쟁의 장인데 준공무원 신분이라고 목에 힘만 주고 있으면 다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채찍만 휘두른 건 아니다. 취임 직후 공제회 정원을 확대하려고 김부겸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을 2번이나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행정공제회가 출범할 당시 직원 규모가 119명이었다. 자산규모가 8000억원대였던 시절이다. 매년 퇴직자 자리를 채울 3~4명 정도만 뽑던 행정공제회는 최근 13명 신규 직원을 채용했다.

한 이사장은 “20년 동안 자산규모가 16배가 늘었는데 정원은 127명으로 사실상 뒷걸음 쳤다는 얘기를 듣자 장관도 수긍할 수 밖에 없더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한 이사장은 행정공제회가 공무원 사회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기여할 크고 작은 방안들을 찾고 있다. 공제회관 뒷편의 쉼터 공간을 정비해 인근 주민에게 개방하기도 하고 서울 시내 경상계열 대학생들에게 여름 방학 동안 인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 이사장은 “공직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지혜를 모두 쏟아 행정공제회가 회원에게 사랑받고 해외투자를 통해 국가적 위상을 드높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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