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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강신욱 통계청장] 아동·노인·여성 등 세분화된 삶의 질 측정 필요
중세시대에 아동은 따로 독자적인 인격체로 인식되지 않은 그냥 ‘축소된 어른’, ‘작은 어른’이었다.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저서 ‘아동의 탄생’에서 순진무구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서 아동의 개념은 17세기 이후 근대에 들어서 성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동은 근대에 등장한 새로운 인류인 셈이다. 아동이 어른들의 사회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한 시기를 오랫동안 보내게 된 것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학교교육’이라는 과정이 확립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 이후부터였다.

그럼에도 19세기 산업혁명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영국이 이룬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는 아동노동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근대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10대 초중반에 군입대를 해 전장에 투입되는 일도 흔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전 세계에서 아동노동과 빈곤아동 등의 문제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1989년에 UN은 18세 미만 아동의 모든 권리를 담은 국제적인 약속인 UN아동권리협약을 만들었다. 이 협약에는 아동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가 담겨 있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했다.

우리나라 아동의 삶은 현재 행복할까. 보건복지부, 교육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이 합동으로 최근 발표한 ‘2018년 아동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6.57점이다. 5년 전인 2013년 6.10점보다 소폭 상승했지만 OECD 회원국 평균(7.6점)보다는 아직 많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부모와 아동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48분에 불과했다. OECD평균인 2시간 30분에 비해 한참 적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이어지는 과도한 공부와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최근에는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스라밸’은 ‘스터디 라이프 밸런스’의 줄임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의 학생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바쁜 공부 속에서도 자신만의 개성과 꿈을 잃지 않고 자아존중감을 느끼면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싶다는 바람이 반영돼 있는 신조어다. 아동의 삶의 질은 저출산과 사교육 정책의 부수적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아동과 청소년의 삶의 질은 이후 본인의 성년기 삶의 질, 부모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의 교육적 성과와도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다.

OECD 역시 인생의 어린 시기에 벌어진 웰빙의 차이는 이후 성인기와 노년기에 더 큰 격차로 나타나고, 성인기 이후보다는 아동기에 정책적 개입의 여지가 더 넓고 그 효과도 월등히 높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달 관계부처 합동으로 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 확대를 포용국가 아동정책의 추진방향으로 설정하고 아동의 보호권ㆍ인권ㆍ참여권ㆍ건강권ㆍ놀이권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아동이 행복한 나라’가 포용국가의 초석이라는 비전을 정책으로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 하지만 소득에 비해 삶의 질과 행복 ㆍ수준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게 국내외적인 평가다. 우리 정부는 삶의 질 향상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정하고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실제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58개가 삶의 질과 연관돼 있다. 통계청도 2014년부터 한국형 삶의 질 지표를 개발해 발표해오고 있지만 이제는 정책 연계성을 높이기 위해 지표를 아동, 노인, 여성 등으로 더 세분화해야 한다. 올해는 아동과 청소년을, 2020~2021년은 성년과 노년의 삶의 질 지표를 별개로 작성하고, 시도별 지표도 작성할 계획이다. 더 세분화된 삶의 질 지표가 맞춤형 정책으로 이어져 우리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 수준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강신욱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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