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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순 그피핀시문학상 “산 자의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의 얘기”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시상식장에 1000여명의 청중이 있었는데 전부 백인이고 번역자와 저만 아시아인이어서 이름을 불렀을 때 현실이 아닌가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집 ‘죽음의 자서전’으로 이달 초 캐나다의 권위있는 그리핀 시 문학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수상한 김혜순(65) 시인은 아시아인 그것도 여성이 상을 받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최종 후보에게 주는 1만달러를 받고, 축제를 즐기기 위해 시상식장에 참석했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시 부문 단일 문학상으로는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그리핀시문학상은 노벨문학상을 비롯, 모든 문학상을 통틀어서도 열 손가락안에 든다. 심사위원들은 전년도에 영어로 출간된 5,600권의 시집을 모두 읽고 작품을 고른다.

이번 시집은 김 시인과 17년간 함께 작업해온 번역가인 최돈미 시인이 번역했다.

김 시인의 수상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과 함께 세계시장에서 한국문학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기존 한국문학은 남성작가, 거대담론 중심으로 해외에 소개돼 왔으나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한국 여성작가의 작품은 여성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언어행위로 아시아 여성, 나아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는다는 얘기다.

‘죽음의 자서전’은 세월호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는데, 김 시인은 “이 시집은 죽은 자의 죽음을 쓴 게 아니라 산 자로서 죽음과 같은 상황에 처해졌을 때, 지인이 혹은 사회적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을 쓴 산 자의 죽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상황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들이고 그런 시적 감수성이 심사위원들의 감수성에 닿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유를 자평했다.

김 시인은 영어 번역판을 작업하면서 번역가와 많은 소통을 했다며, 문장의 구조 뿐 만아니라 시를 읽은 느낌과 각자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얘기하면서 시가 어떤 현실의 층위에서 쓰여졌는지 공유했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 안식 학기 동안 최 시인과 영국과 덴마크, 노르웨이 등에서 함께 시 낭독회를 가지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김 시인은 여성성, 여성으로서의 글쓰기를 오래 사유해온 작가다. 김 시인은 “여성 시인들의 시에서 큰 자아를 내세우는 관념과 사물을 동일시하는 은유 보다 시 안에서 여성 스스로가 움직이고 액션하는 걸 느꼈다”며, 여성시인의 글쓰기의 특징을 설명했다. 그런 깨달음 속에서 그의 시에는 ‘시(詩)하다’‘여성하다’‘새하다’는 식의 수행하는 시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김 시인은 “은유의 폭력적 힘, 시선을 거부하는 의미로 ‘하다’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이번 그리핀시문학상 수상이 여성문학, 한국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특히 비싼 입장료를 내고 많은 관객들이 낭독회에 와서 시를 듣고 갔다며, 우리도 시를 듣는 극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올해 등단 40주년을 맞은 시인은 “당면한 오늘을 바라보고 당면한 현실에서 사유하기 때문에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며, “옛날 쓴 시는 시간 속에 파묻고 간다”고 40주년을 맞은 소감을 밝혔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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