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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김준형 의사 칼럼니스트]사람 잡아먹는 양(羊)
‘양은 원래 온순한 동물이지만, 이제는 사람을 먹어치운다.’ 토마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상을 좀 살펴봐야 한다.

중세시대 영국에서는 귀족이 대부분의 땅을 소유하고 소작농이 이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수확을 하면 땅주인과 소작농이 이윤을 나눠 가졌다. 그런데 15세기 말이 되자 양털로 천을 짜는 모직물 공업이 크게 발달했다. 양털 값은 폭등했다. 귀족들은 소작농들을 쫓아내고 자신의 땅에서 양을 키웠다. 그리고 양들이 도망치지 못 하게 울타리를 쳤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인클로저(enclosure, 울타리) 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양을 키우는 데는 목동 한 명과 영리한 개 몇 마리만 있으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귀족들은 큰돈을 벌었지만 많은 농민들은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또 농토를 없애고 목장을 만들다 보니 밀 값은 폭등했다. 일자리를 잃은 농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며 죽어갔다.

이런 모습을 보고 분노한 지식인이 있었다. 바로 토마스 모어였다. 그가 말한 ‘양이 사람을 먹어치운다’는 말은 목장을 만들어 양을 키우는 산업이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을 비판하면서 모어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사회를 유토피아라는 책에 담아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기대감이 뜨겁다. ‘기계는 단순 작업을 할 수 있을 뿐 창의적인 일은 할 수 없다’는 과거의 고정관념은 이세돌 기사와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무너졌다.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등의 기술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삶을 크게 바꿀 것이다. 이미 전 세계는 4차 산업 경쟁에 돌입했다. 이 경쟁에 승리하는 나라는 기술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게 될 것이고 경쟁에서 패배하는 국가는 기술적인 식민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 혁명 이후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이미 식당에서는 기계로 주문을 받고 직원을 줄이는 일이 진행 중이다. 공장에서는 인공지능이 공정을 컨트롤하고 로봇이 상품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식당에서 일하던,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소수의 인원만으로도 산업 현장이 유지되는 모습은 어쩌면 인클로저운동과 닮은 것이 아닌가? 우리는 500년 전 영국에서 있었던 불행을 다시 한 번 겪게 될 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4차 산업혁명이 ‘사람 잡아먹는 양’이 되어버릴 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 택시와 ‘타다’와의 갈등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택시 기사가 분신으로 목숨을 잃는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다. 택시기사들은 거액의 보상을 원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들의 소박한 삶과 행복을 지키려는 것뿐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문제 해결을 위해 벤처 1세대까지 나서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갈등이 해결되면 택시 기사들의 소박한 삶을 지켜줄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렇지는 못 할 것 같다. 지금 전 세계에서는 무인운전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언젠가는 거리에 ‘로보택시’(무인 자율주행 택시)가 다니는 날이 올 것이고 그날이 오면 택시기사도 타다 기사도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된다. 결국 새로운 일자리가 꾸준히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혹자는 제도적으로 로보택시를 제한하면 택시기사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할 뿐 어떤 제도도 세상의 큰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만약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서울 시내에는 아직도 인력거와 가마가 다니고 있을 것이다.

타다와 택시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4차 산업 혁명 이후에도 사람들이 일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그것만이 세상 사람들의 소박한 행복을 지켜 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 잡아먹는 양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

김준형 의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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