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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문 쓰고 답하고…‘사하맨션’ 사회문제 오답노트”
조남주 작가 신작 기자간담회
범죄자·밀입국자·노인·장애인…
소외된 사람들의 비참한 삶 포커스
‘82년생 김지영’ 일으킨 사회적 파장
소설 쓰기 작업의 자신감 얻는 계기


조남주 작가는 자신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게 먼저인 작가인 것 같다”며, “이번 작품은 소설을 써왔던 시기 동안 가졌던 관심사나 질문들, 여성들의 문제, 낙태, 육아, 교육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민음사 제공]

지구상에 사람이 사는 곳 중 가장 추운 지역은 러시아의 사하공화국이다. 추울 때는 영하 70도, 더울 때 기온은 영상 30도로 무려 기온차가 100도가 난다. 그런 곳에 지구에서 가장 비싼 자원, 다이아몬드가 대량 매장돼 있다. 살기 힘든 곳이지만 보물을 감추고 있는 땅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우리사회 젠더 감수성을 일깨운 작가 조남주의 신작 장편소설 ‘사하맨션’은 바로 이 사하공화국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사하맨션에 사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회로 편입되지 못한 소외당한 이들이다. 거기엔 밀입국자, 노인, 여성, 아이, 장애인들이 주로 산다.

조남주 작가는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주류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의 얘기를 쓰고 싶었다”며, 2012년 처음 소설을 구상한 때부터 7년간 써오면서 가졌던, 우리사회가 잘못 풀어나가고 있다는 의문이나 공포, 반성이 들었을 때 던졌던 질문들을 담아냈다고 밝혔다.

‘사하맨션’은 밀리언셀러 ‘82년생 김지영’보다 앞서 구상한 작품이다. 조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이 주제를 잡고 자료조사 거친 뒤 인물을 맞춰나간, 밑그림을 그려놓고 구석구석 색칠해나간 소설이라면, ‘사하맨션’은 계획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면서 덧칠하고 지우고 하는 식으로 쓴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문제에 대해 질문을 적고 작가 자신의 방식으로 풀이를 다시 해본 일종의 ‘오답노트’라는 것이다.

‘사하맨션’은 평범한 어촌이 지자체의 파산으로 기업에게 인수, 기묘한 도시국가가 된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디스토피아를 주로 다루는 SF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안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거주하는 사하맨션은 국가 시스템 밖에 놓여있다.

‘타운’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도시국가는 두 개의 계층으로 나눠져 있다. 자본이나 기술, 전문지식을 갖춘 이들 L과 주민자격은 없지만 범죄이력이 없어 사회의 힘들고 더러운 일을 주로 하는 L2다. ‘사하’로 불리는 L2들은 2년마다 자격심사와 모욕적인 건강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타운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부유하고 삶의 질이 높은 나라로 얘기되지만 개인의 자유는 통제된다. 쉽게 들어갈 수도 없는 저들만의 나라에서 철거직전의 사하맨션은 이상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소설은 거기에 모여든 비참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조명한다.

엄마의 추락사를 자살로 둔갑시킨 사장을 죽인 도경과 그 누나, 남매처럼 10년 전 국경을 넘었다는 관리실 영감, 본국에서 낙태 시술을 하다 사고가 발생해 도망쳐 나온 꽃님이 할머니,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눈이 없는 사라 등 어쩔 수 없이 범죄자가 돼 이 도시로 숨어든 이들이다.

방치된 채 자족적으로 살아가는 사하맨션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도 사람냄새를 풍기며 자족적인 공동체를 꾸려가는데, 작가는 90년대초까지 존재했던 홍콩의 한 마을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했다.

사회에서 버림받고 연약하고 저항하지 못하는 인물들이지만 작가는 이들의 힘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삶을 꾸리고, 큰 투쟁으로 크게 세상을 바꾸진 않지만 조금씩 자기 자리를 바꿔가고 다른 사람들이 나아가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사람들”이라며, “눈 앞에 당장은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은 “읽히는 재미 보다 어떤 얘기를 전할 것인가에 치중한 소설을 쓰는 것같다”고 소개했다.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질문을 갖고 있는지 그게 궁금하고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 같다.”

이번 소설에도 낙태와 육아, 교육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들어 있다. 특히 사하맨션 안에서 아이를 돌봐주고 작지 않은 역할을 하는 할머니 얘기는 우리 사회 안에서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보육의 역할을 떠맡은 노인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대한 인식을 일깨운다.

조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과 관련, 소설쓰기의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작가라는 부담감 보다 ‘소설이란 게 역할을 할 수 있구나’ 자신감이 생긴 계기가 됐다. ‘아무도 읽지 않아’,‘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주고 사회변화와 함께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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