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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술실에 ‘CCTV’ 필요할까…환자단체 “수술실 안전 위해 필요” vs 의료계 “인권 침해”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하루 만에 폐기
-환자단체 “CCTV는 수술실 내 환자 안전 위한 장치”
-의사단체 “실효성 없고 환자와 의료진 인권 침해만”


[한 대학병원 수술실 내 모습이 CCTV를 통해 녹화되고 있다. 손인규 기자]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 “작년에 수면으로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나중에 깼을 때 기분이 찝찝하더라고요. 솔직히 내가 마취되어 있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잖아요. 더구나 생명이 달린 중요한 수술이라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CCTV 녹화는 필요할 것 같아요. 어린이집에서도 CCTV 녹화는 일반화됐잖아요”(경기도 거주 주부 이모씨)

#. “수술할 때 옷을 모두 벗기고 내 맨살이 드러날텐데 그걸 영상으로 찍고 혹시라도 그 영상이 유출된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네요. 의료사고를 방지하는 효과도 없이 오히려 또 다른 부작용만 양산하는건 아닐까 싶은데요”(서울 거주 직장인 박모씨)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하는 방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환자단체는 수술실 안전을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CCTV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의사단체는 CCTV는 실효성도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환자와 수술실 내 의료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부작용만 나타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수술실에서 집도의가 아닌 간호조무사나 의료기기업체 직원 등 무자격자가 대리수술을 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경기도 한 산부인과에서 의료진이 신생아를 떨어뜨려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을 은폐하는 등 수술실 내 의료사고가 반복되면서 그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연)는 “수술실은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고 전신마취로 환자가 의식을 잃게 되면 그 안에서 발생한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무자격자 대리수술에 참여한 사람들 또한 모두 공범이기 때문에 내부자 제보도 거의 불가능하다”며 “무자격자 대리수술을 근절하고 환자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방안 이외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환연은 수술실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주장하며 지난 해 11월부터 올 해 4월까지 100일 동안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기도 했다. 이에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을 대표로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공동발의했던 10명의 의원 중 5명이 의견을 철회하면서 이 법안은 하루 만에 폐기됐다. 국회의 법안을 발의하기 위한 최소 기준은 10명 이상이다. 10명 중 1명만 의견을 철회해도 해당 법률 개정안은 폐기된다.

안기종 환연 대표는 “법안이 발의되고 하루 만에 폐기됐기 때문에 박탈감이 더 크다”며 “수술실 CCTV는 응급실 CCTV처럼 환자의 안전과 함께 의료진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장치”라고 말했다.

반면 의사단체는 CCTV로는 무자격자의 대리수술 등을 걸러낼 수 없다고 반대했다. 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병협) 정책이사는 “얼굴과 몸을 마스크와 수술복으로 가린 상황에서 누가 의사이고 의료기기업체 직원인지 알기는 어렵다”며 “CCTV는 오히려 수술실 내 근무자인 의료인들의 인권만을 침해할 것이고 혹시나 영상이 유출이라도 된다면 영상에 찍힌 환자의 고통은 누구도 책임지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안기종 대표는 “수술실 CCTV 위치 등은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환자단체가 주장하는건 수술실 입구 쪽에 설치해 의료진이 아닌 무자격자가 함부로 수술실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더구나 CCTV 영상은 동의한 환자에 한해서만 녹화를 진행하고 열람도 의료사고 발생과 같은 아주 특별한 상황에만 허락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영상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폐기하는 것이 법안 내용”이라고 말했다.

의사단체는 CCTV를 설치하게 되면 의료진의 의료 행위가 보다 소극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고도 주장했다. 정 이사는 “CCTV를 통해 감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수술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며 “더구나 의료진이 고위험 수술을 회피하는 등 진료와 수술에 소극적으로 될 수 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결국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안기종 대표는 “지금도 위급한 수술에 대해서는 수술 전 환자나 보호자에게 사전 동의를 받고 있다”며 “수술실은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져야 할 공간이지 의사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고 말했다.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법안이 하루 만에 폐기되면서 환연은 오는 30일 국회에서 수술실 CCTV 설치 필요성과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는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의사단체는 이런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앞으로도 난항이 예상된다.

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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